선생님이 아닌 조언자가 되어야 해

by namtip



제인에어라는 거대한 바다를 어떻게 항해해야 할까.


마더텅(Mother Tougue) 오리엔테이션은 기대와 달리 간소했다. 영어 수업 담당인 제프(Jeff) 선생님에게 총 9주 차 계획표를 건네받기만 하면 끝. 지난 학기 자료 한 장 건네받은 게 없어 아쉬움이 느껴지는 내 눈빛을 읽은 것일까, 제프가 덧붙여 말했다. "아마 학생들이 알아서 다 할 거예요. 하지만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메일 주세요. 티칭(Teaching)이 아닌 어드바이징(advising)을 하면 됩니다."


시간표를 보니 고등부 수업은 주 2회 3타임이 배정됐다. 화요일은 쉬는 시간 25분을 포함한 2타임 80분. 목요일에는 한 타임 40분. 두툼한 제인에어를 받아 들고 학교 벤치에 앉아 이제 나는 선생님이 아닌 조언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읊조렸다.


첫 수업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상 여섯 개가 직사각형으로 붙어있는데 벌써 교실이 꽉 찬 느낌이다. 아담해서 좋네.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겠다. 연습해둔 온화한 선생님의 표정으로 아이들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다섯 명의 학생들이 나를 보며 '하이'를 외친다. 선생님이 더우실까 봐 미리 에이컨을 틀어놨다는 아이들의 환대가 따뜻했다.


(책을 꺼내며 앞으로의 수업계획을 설명하는데 샬롯 브론테 시대의 여성상 부분에서 한 학생이 손을 든다.)

학생 1: 선생님은 평소에 여성의 권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세요?
나: 응? 여성의 권리?
학생 1: 샬롯 브론테가 이 소설을 썼을 때에는 여성의 지위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고 해요. 저는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며 읽어나가려고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나: (... 이렇게 훅 들어오기 있기 없기.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나에게 던져진 그 질문에 다른 학생이 대답한다.


학생 2: 그런데 알고 보면 여자들이 주장하는 권익신장 때문에 남자들이 오히려 불평등을 느낀다는 거 알아? 그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학생 1: 그래 그럴 수 있지. 우선 그럼 샬롯브론테가 이 소설을 쓴 19세기 영국이 어땠는지 좀 살펴봐야겠네.



나는 이 드라마 같은 대화를 아직까지도 꽤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샬롯브론테라면 이렇게 질문했을까. '독자여 이 대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1) 내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 수업계획서를 받은 적이 있는지 떠올려보니 그런 적 없었음.

2) 앞으로 어떻게 수업에 참여할지 친구들과 이런 논의를 해 본 일이 있었지 생각해보니 그런 적 없었음.


그렇다, 이런 경험이 고등학교 때까지 전혀 없었다. 교과서를 미리 받으면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목차도 보곤 했지만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수업 방향에 대해서 말해본 적이 있었던가. 고1 첫 시간에는 고1니까 힘들 거라는 엄포가 있었고, 고2는 이제 고3이니까 바로 수업을 시작했으며 고3은 말해 뭐 할까. 바로 문제지를 뒷사람에게 넘겨주고 조용히 문제를 풀었었지.


한마디로 문화쇼크를 받은 것이다. 내가 선생으로 앉아있는 게 맞나 생각하며 어벙벙하게 앉아 있는데 그제야 아이들이 또다시 나에게 질문을 해온 것을 알아차렸다.


아이들은 자신이 수업의 주인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제인에어라는 바다에 아이들이 풍덩하고 들어가서 헤엄을 칠 동안 나는 아이들이 나름의 유영을 잘할 수 있게 지켜봐 주면 되는 거였다. 그 거대한 바다를 보며 아이들은 이미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제프 선생님의 말이 이런 거였구나.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어푸어푸 세수를 한 후 다시 한번 제인에어를 들고 벤치에 앉아 해가 질 때까지 앉아있었다. 아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https://www.weekendnotes.com/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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