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모국어 선생님들 회의가 15분 정도 늦게 끝난 날이었다. 교실로 향하는 복도는 꽤 긴데, 멀리서도 아직 문 앞에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교실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할 아이들이 다 나와있는 걸 보니 문이 잠긴 듯하여 서둘러 뛰어가니 몇 명은 이미 바닥에 털퍼덕 앉아있고 다른 아이들은 여기저기 기대어 서서 열심히 이야기 중이었다.
"무슨 일 있어?"
교실에도 안 들어가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제인에어와 요시모토 바나나의 여자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제인에어>를 다 읽고 <키친>을 읽고 있던 시기인데 그 둘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다며 아이들은 교실로 들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인에어>와 <키친>의 주인공인 미카케가 성장할 수 있던 원동력에 대한 토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문학 수업에서는 배운 내용을 토론한 후 짧은 Reflective writing을 쓰게 되어 있는데 Reflective writing을 위한 토론인지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그저 시대가 다른 두 소설의 여자 주인공들이 각자의 삶에 애착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마침 지나가던 교장 선생님께서 오늘 날씨가 선선하니 (그래도 30도를 웃도는 더위지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선선하게 느껴진다.) 놀이터 근처에서 수업하라며 아예 야외수업을 권하셨다. 이왕 복도에 앉아 수업 아닌 수업이 시작된 김에 모두들 좋다고 했고 우리는 놀이터에 마련된 조그만 정자에서 수다인지 토론인지 모를 시간을 보냈다.
북클럽을 시작하며 다시 그 복도로 소환되다.
평범한 중고등학생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복도에서 문학작품을 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무수한 날들을 고민했지만 딱히 머릿속을 관통하는 답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함께 책을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내가 선생으로 토론의 장을 마련하기만 했을 뿐 내가 책을 읽는 자리의 멤버가 된 적은 없는 듯하다.
한 학생이 그랬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같은 반 친구들에게 문자를 한다고. 예를 들어 미카케는 어떻게 슬픔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 친구들이 진지하게 고민을 해준다는 것이다. 그 문자를 받고 흔쾌히 그 고민에 동참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게 참 부러웠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북클럽 멤버들과 메신저를 통해 책에 대해 고민하는 게 참으로 자연스럽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함께 책을 읽어야만 공유할 수 있는 생각들이 있다. 그렇기에 이 아이들이 수업 종소리도 듣지 못한 채 책 얘기에 흠뻑 빠져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들의 이유를 내가 적어본다.
서점에서 <제인에어>와 <키친>을 보면 주인공들보다 학생들이 먼저 생각나는 이유는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고, 시간이 지나도 그 기억이 바래지 않고 더욱 선명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가끔 일이 있어 학교에 들를 때면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그 아이들이 생각난다. 함께 책을 읽는 이유를 알게 해 준 그 시간들이 참 고맙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