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국제학교 한국어 문학 선생님이 되다

by namtip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 공채 면접에 갔을 때 짝짝이 구두를 신고 간 적이 있다. 그날 면접이 끝나고 엄마와 종로에서 만나 밥을 먹는데 엄마는 모양이 다른 구두를 신고 있는 나를 보며 웃느라 식사를 거의 못 하셨다.



라오스의 비엔티엔 국제학교(Vientian International school, 이하 VIS)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지원서를 잘 받았으니 인터뷰를 보러 오라고 한다. 짝짝이 구두의 트라우마가 있던 나는 신발을 잘 신었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후 뚝뚝(Tuk Tuk)을 타고 학교로 향했다.


뚝뚝(Tuk Tuk)의 뒷좌석에서 바람을 맞으며 인터뷰를 하러 가니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출처: iStock




VIS의 모국어 담당 줄리아(Julia)와의 인터뷰


내가 지원한 부서는 한국어 문학. 1층 복도 끝 Teacher's room에서 줄리아(Julia) 선생님이 나를 맞아주었다. 줄리아는 프랑스 출신으로 마더텅(Mother tongue) 선생님들의 총책임자다. 줄리아는 자신도 영어보다 프랑스어를 더 잘한다며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주었고 그렇게 생애 첫 1:1 영어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날씨 얘기, 학교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등등의 소소한 이야기 후)

줄리아: (갑자기) 봉쥬! 당신의 이력이 참 인상 깊었다. 먼저 질문하고 싶은 게 있다.

나: (얼떨결에 같이) 봉쥬! 어떤 질문인가?

줄리아: 당신은 문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 (이런 심오한 질문을 받다니) 문학은 세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통로다. 이를 통해 내가 누군지 알고 타인을 이해하는 마중물을 마련할 수 있다. (너무 뻔한 대답인가)

줄리아: 나도 같은 생각이다. 좋아하는 한국 문학 작품이나 작가는?

나: 윤동주를 좋아한다. 라오스에 올 때도 아빠에게 물려받은 오래된 시집을 들고 왔다.

줄리아: (갑자기 조그만 방 뒤에 산처럼 쌓인 책들 가운데 윤동주 시인의 책이 있다며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꽤 긴 시간이 지난 후 책을 집어 들었다.) 나도 윤동주에 대해 안다. 시인이라고 들었다. 다음 학기에 수업할 책이라 주문을 미리 해둔 것이 기억이 났다.

나: 윤동주를 아는 외국인은 처음 봤다.

줄리아: 언젠가 윤동주의 시를 해석해 줄 수 있나?

나: 물론

줄리아: 라디오 작가를 오래 했다고 들었다. 이 부분이 인상이 깊었다. 보내준 대본을 해석해줄 수 있는지?

나: 물론이다. (혹시 몰라 그동안 썼던 프로그램 오프닝과 대본 몇 개를 추려서 제출했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각자의 아침에 대해 말해달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함께 들을 음악들을 소개했다.

줄리아: 다른 것 보다 책을 읽고 학생들과 에세이를 써야 하는 자리기에 꾸준히 원고를 썼다는 걸 눈여겨보게 됐다.

줄리아: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사 양성 과정에서는 무엇을 배웠는지?

나: 외국인들이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치는 방법을 배웠다. 이들이 한국사회와 소통하고 우리의 문화를 알아가려면 한국어를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배우고 논의하는 자리였다.

줄리아: 영어를 주로 쓰는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만약 합격한다면 이 교수법을 잘 활용해주었으면 좋겠다. 인터뷰에 응해 주어서 고맙다.

나:고맙습니다.(한국말로 인사)


학교에서 요구한 건 사진도 자기소개서도 없는 Resume. 그리고 경력을 증명할 수 있는 몇 가지 서류가 다였다. 한국어로 하면 열 배쯤 더 똑똑하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영어 인터뷰가 끝이다. 한국어 문학 선생님을 뽑는 거니까 당연히 한국어 인터뷰를 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중고등부 선생님 중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휴. 줄리아의 사무실을 나서는데 이번만큼은 면접관이 나를 진심으로 궁금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어로 대답하느라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지만 이런 인터뷰를 내가 평생에 몇 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뿌듯했다.


내가 한국 문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지 물어봐주고 모국어가 아이들의 인생에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에 대해 의견도 교환했다. 자기소개 한 줄 제출하지 않았지만 줄리아는 내가 보낸 자료를 보고 깊이 생각하고 온 게 분명했다.


가져갈까 말까 고민하다 라오스까지 갖고 간 책. 아빠에게 물려받은 윤동주 시집을 학생들과 학교 선생님들에게 보여주었다.


윤동주를 알고 있었어! 그날 저녁 나는 남편에게 말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줄리아가 윤동주를 아는 건 대박사건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낡디 낡은 나의 시집을 만지작 거리며 수시로 이메일을 확인했다.




며칠 뒤 합격했다는 이메일이 도착했고 바로 그다음 주부터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p.s 그날 프랑스식 인사 비쥬(bisou)를 처음 해봤다.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의 모국어 수업이란?

IB 학교에서 공부하는 다양한 국가의 학생들은 대학입시 에세이에 영어뿐 아니라 자신의 모국어로도 에세이를 써서 제출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각 언어권의 문학을 가르치기 위한 모국어 담당 선생님이 있으며 정규 수업시간에 편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