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태국 국경. 진통이 오면 가야 할 곳.
아이는 예상보다 3주 정도 빨리 나오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첫 손주의 탄생을 보러 라오스까지 오신 친정엄마는 배냇저고리를 만드시다 벌떡 일어나서 안절부절못하셨다.
10년 전 라오스에는 외국인들이 아이를 낳을 곳이 마땅치 않아 대부분 태국에 있는 국제병원에서 출산을 했다. 진통이 시작된 이상 우리도 라오스 국경을 지나 태국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우돈타니(Udon Thani) 지역의 국제병원까지 가야 한다.
태국으로 검진을 받으러 갈 때마다 항상 붐비던 그곳. 입국심사를 받는 도중 아이가 나오면 어떻게 하지? 탯줄은 누가 잘라주지? 온갖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아이는 입국심사를 하는 동안 뱃속에 있어주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남편의 긴장한 뒷모습을 보며 병원에 도착했다.
어찌 된 일인지 꼬박 하루를 넘게 진통을 했는데도 아이는 태어날 생각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오히려 진통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심박수가 느려졌다. 심박수를 측정하는 기계에서는 알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그 소리를 들으니 출산할 때 도움이 된다는 그 어떤 호흡법 따위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이를 처음 낳는 나도 긴박한 상황이란 건 단번에 알아챘다. 간호사들의 알 수 없는 태국어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영어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누군가 한국어로 통역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고, 시나리오에도 없던 수술 준비가 시작됐다.
마취가 되었어도 뭔가 몸에서 쑥 빠져나온 느낌은 알겠는데 울음소리가 안 들린다. 순간 수술실에 정적이 흘렀다. 그 찰나의 시간에 사방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때 울음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자그마한, 실타래처럼 가느다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다시 수술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간호사가 "뷰티풀 베이비"라며 그제야 보여준 아이는 보라색이었다. 온몸이 보라색으로 태어난 아이를 뒤로한 채 나는 수술실에서 병실로 옮겨졌다.
마취에서 깨어나던 순간 아이의 소식을 묻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너무 작고 보라색이었던 아이였기에 옆에 있던 남편에게 아이는 잘 있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아는지 모르는지 아님 모른 척하는 건지. 애써 다른 이야기를 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을 했다. 아이가 뱃속에서 나오는 동안 탯줄이 몸을 감아 힘들어했던 거라고. 잠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지만 금방 나와서 일반 신생아동으로 갔으니 일어나면 볼 수 있다고. 눈물이라도 나면 좋으련만, 뭔가 마음이 콱 막혀 눈물도 나지 않았다.
2022년 올해 10살이 된 첫째 생일. 남편이 문득 "첫째가 태어나 던 날 말이야" 하며 얘기를 꺼냈다. 그날 국경 경찰들에게 어설픈 라오스어로 “아내가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 우리는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남편에게 그 말을 듣고 나니 우리를 향해 "베이비"라고 외치며, 한쪽에서는 박수를 쳐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국경에서 진통을 하며 보았던 비엔티엔의 노을이 함께 기억났다.
노을처럼 예쁜 아이가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그날. 그날의 하늘이 이제야 선명해졌다.
사진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