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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 Sep 10. 2020

내가 왜 살고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이 고개를 들 때

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엄마네 집에서 책장을 구경하던 중 엄마가 추천을 해줘서 집에 가지고 온 책,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유명한 톨스토이 작품을 거의 처음 읽어본 듯하다. 책에는 짧은 단편 12편이 수록되어 있다. 톨스토이는 어렵고 현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표현을 쓰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도 아주 쉬운 언어로 쓰여있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읽기 좋은 책이었다.


톨스토이의 기독교적 삶의 태도를 많이 녹여낸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무교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톨스토이가 쓰는 '하나님', '하늘의 뜻'과 같은 표현들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한 개인이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 와 무관하게 어떻게 살아야 더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2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공통의 키워드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욕심내지 말고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라.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라. 
악에 악으로 대응하지 말고 이해와 사랑으로 감싸 안으라.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대자"였다. 한 남성이 약속을 어기고 인간사에 개입하게 되면서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진리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인 대자가 사람들의 평가에 의지하게 되면서 자신의 중심을 잃어버리는 모습이 지금의 나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 해답을 내 안에서 찾으려 하기보다는 계속 외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였기에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나에게 큰 울림을 남겨주었다. 


그는 생각해냈다. 그 농가의 아낙네가 걸레를 깨끗이 빨았을 때 비로소 테이블을 깨끗이 닦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이 자신의 걱정을 그치고, 자기의 마음을 맑게 할 때 타인의 마음도 맑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강도는 계속하여 말했다. 

"그리고 당신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내 마음은 움직였소"

거기서 그는 생각해냈다. 농민들이 받침대를 탄탄하게 고정시켰을 때 수레바퀴의 나무를 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이 자기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생활을 하느님 안에 탄탄히 고정시켰을 때 굽힐 줄 모르던 악한 고집도 꺾였던 것이다. 

강도는 다시 말했다. "그리고 당신이 나를 가엾게 여겨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을 때 내 마음은 얼음이 풀리듯 녹아버렸소." (...)

거기서 대자는 다시 깨달았다. 거간꾼들의 화톳불도 불기운이 강해졌을 때에야 비로소 생나무가 탔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이 뜨겁게 타올랐을 때 타인의 마음에도 불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 톨스토이, '대자' 中 - 


가끔 지인들이 고민상담 같은 걸 요청해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열심히 들어주고 고개 끄덕여주고 맞장구 쳐주지만 뭔가 한 단계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해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 물론 그것이 잔소리나 기분 나쁜 조언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지만 어떤 문제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은 발견해내기 어려운 지점들을 이야기해주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잘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이 소설에서 찾았다. 사실 내 안도 누군가에게 살이 될 수 있는 말을 해줄 정도로 영글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책을 읽어도 인상 깊은 구절 몇 줄을 써놓을 줄이나 알았지 그걸 내 식으로 소화시켜서 글이나 말로 풀어내는 연습을 하지 않았고, 그것은 책과 같은 콘텐츠를 소비할 때뿐만 아니라 내 삶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소한 경험이라도 스스로 발자취를 남길 때 그 깊이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그 깊이를 원한다면,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의미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기록하라.
세상을 꿰뚫어 볼 나만의 기준과 철학은 모든 것을 경험할 때가 아니라,
한 걸음을 걸어도 '깊은 발자국'을 남길 때 만들어지니까. 
- 김영하, <보다> 中 - 


김영하 작가의 말대로, 한 걸음을 걸어도 깊은 발자국을 남길 때 나의 깊이가 생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것의 소비나 경험이 별도의 기록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는 내 안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다소 나이브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안다. 내가 얼마나 기억력이 부족하고 단순한 사람인지. 그런 만큼 더 곱씹어보고 기록하고 사유하고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농가의 아낙네가 빨지 않은 걸레로 청소를 하니 집이 깨끗해지지 않아 계속 닦아야 했던 악순환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참을 수 없는 경험의 가벼움으로 증발되어버린 내 삶은 빨지 않은 걸레와 같았다. 그러니 누군가 고민을 말해왔을 때 나는 더러운 걸레로 탁자를 닦듯 계속 쓸데없는 말만 중언부언 뱉어낼 뿐이었던 것이다. 부끄럽지만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깊다고 말해주는 주변 사람들의 달콤한 말에 스스로를 속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젠체했다. 사실 내 안이 비어있음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속은 비어있는 채로 또 얼마나 내 것을 움켜쥐고 살았는지. 남에게 계속 퍼주면서 정작 본인 것은 챙기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답답해했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사냐고. 이 소설집에 나오는 거의 모든 주인공들과 우리 엄마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당장 내 주머니가 텅텅 빈 게 아니라면 남을 도와주고 보는 그런 사람. 톨스토이는 계속해서 말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 너를 위한 길이며 인생을 충만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라고. 따뜻한 마음과 행동들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라고. 


내가 약 30년간 살아오며 보고 경험했던 사회는 내 건 내가 챙겨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단박에 내 삶의 태도가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실천이 없는 독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안다. 그 첫걸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살피고 그 외에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연민과 감사함을 가지도록 노력해보려 한다. 엄마, 언니, 형부, 애인, 친구 등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불행하다는 것은 내가 불행한 것과 다름 아니며, 그들이 내 삶에서 사라진다면 내 삶의 큰 의미가 사라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다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나의 모든 서사를 남에게 이야기하지 않듯이 그들 역시 나에게 말하지 못한 수만 가지 이유들로 그 행동을 하게 된 것일 테다.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학은 아주 평범해 보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자세히 보게 해 줌으로써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스스로도 작품 제목에 '바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했다. 그 유명한 '바보이반' 말이다. 그가 강조하고 싶었던 삶의 태도가 사회적인 시선에서는 바보같이 보일 수 있음을 그도 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해서 그 바보들처럼 살라는 메시지를 전한 이유는, 사회적으로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와 권력 등을 모두 누려보고 난 뒤에 따라온 치열한 사유 끝에 얻은 자신만의 정답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는 그런 부를 쥐어본 적이 없지만 가져봤던 사람이 가져보니 그게 중한 것이 아니었더라 말하니 설득력이 있다. 어렴풋하게나마 저 터널 끝에서 빛을 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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