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신고] 저는 이런 걸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3월 말, 퇴사를 하고 이렇게 저렇게 지내다 보니 시간이 벌써 7월의 끝자락이 되었다.
그동안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이전 동료들의 회사 취업 소식이나 창업 소식을 들었다. 자기만의 길을 찾아 걸어가는 멋진 동료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나면 나는 어떻게 지내는지를 궁금해하길래 그간의 행적과 지금을 기록해 본다.
4월에는 이런저런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부모님의 품 안에서 아기새처럼 집밥을 얻어먹으며 심신의 평화를 얻기도 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흘러갔다. 이때도 굉장히 많은 동료들에게 위로를 받고 마음껏 늦잠도 자면서 보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기 위해 캘린더를 보니 누굴 만나는 일정으로 가득 찼있다. 아무래도 레이오프는 처음이라 정신이 많이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누워있다 정신 차리니 성큼 5월이 다가왔다.
5월의 큰 이벤트는 내 생일과 여행, DND 해커톤!
올해, 지금까지 가장 기뻤던 일 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반가운 연락이 찾아왔다. 대학교 학생회장 시절에 나를 많이 도와주고 가장 친하게 지냈던 언니가 몇 년 만에 연락을 보냈다! 연락이 끊겨서 슬펐던 인연이었는데 생일인 걸 보고 용기 내서 연락해 주었다고. 오래 연락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생일 케이크도 받고, 약속을 잡아 밥도 같이 먹었다. 오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헤어졌었지만 다시 만나서 어제 보고 헤어진 사이 같이 놀았다.
작년, 일본 여행을 같이 간 언니랑 또다시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다. 퇴사 전에 준비해 둔 일정이라 크게 신경 쓸 것 없이 즐기다 왔다. 열심히 쇼핑도 하고, 전시회도 갔다. 무려 10만 원짜리 장어덮밥을 먹어보기도 했다! 다른 날은 날씨가 다 좋았는데 유니버셜에 간 아침에만 비가 와서 살짝 추워서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아 쾌적하기도 했다. 닌텐도 마리오 월드랑, 해리포터 스튜디오도 가보고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대부분의 어트랙션을 탔다. 개인적으로 마리오 카트보다 해리포터에 있는 어트랙션이 더 재밌었다.
계획하지 않은 여행도 있었다. 망고시루를 먹기 위해 친구와 대전 1박 2일의 여행이었는데 정말, 단순히, 그냥 사람들이 열광하는 망고시루가 궁금하다는 이유로 망고를 싫어하는데도 가봤다. 에어비엔비로 숙소를 구하고, 대전역으로 내려가서 망고시루를 샀다. 3시쯤 부띠끄에 도착했는데 품절되어서 절망하고 있다가 다른 곳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얼른 롯데백화점으로 달려갔다. 롯데 백화점은 여유가 있어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긴 여정 끝에 얻은 망고 시루를 친구와 함께 먹었을 때, 내가 망고를 싫어한 게 아니라 맛없는 망고만 먹어왔다는 걸 깨달았다! 엄청 맛있어! 근데 달기도 달아서 단 맛을 잡아줄 매콤함으로 두부 두루치기와 닭꼬치도 먹고, 저녁에는 야간 등산하기 좋다는 보문산의 정상도 올랐다. 이 맛있는 걸 혼자 먹는 게 아쉬워서 언니한테도 전해주려고 망고시루를 들고 장장 4시간을 이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농구! 도 계속 나가서 다른 팀과 연습경기도 했다. 이번엔 골도 넣었고, 어시스트도 했다!
더불어 해커톤 진행! 해커톤 진행에 대해서는 별도로 글을 작성해 두었으니 간단하게 넘어가기!
6월에는 영어 학원을 다녔다. 평일 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3시간. 그리고 숙제도 있다. 어떤 영어 성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어가 약하니까 기본이라도 다시 다지자는 생각이었다. 집에만 있으면 뭣하나 싶기도 하고 이참에 영어공부나 해보라는 권유도 받아서 다음 날, 영어 학원에 갔다. 근데 진짜 너무 정말, 세상에서 가장 힘들었다. 아예 처음부터 기초라지만... 안 쓰던 머리를 써서 그런가 녹초가 되어 다른 걸 못하겠는 생각도 들었다. 영어 선생님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했다. 맷집을 기르는 중인 거고 이렇게 도전하고 출석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말해줘서 다 이해 못하고, 숙제도 못한 날도 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했다.
그러던 중, 아는 분이 창업을 한다고 연락을 받았다. 지금 쉬고 있는 내게 도움을 달라고 연락을 줘서 사이드프로젝트 하는 경험이나 쌓을까 해서 달려갔다. 디자이너 백그라운드가 있어 디자인부터, 어느 정도 된 기획을 체크하고 PRD로 정리하기도 했다. 서비스를 처음부터 만들다 보니 약관이나 로그인, 회원계정, 알림에 대한 정책이나 기획이 필요했는데 세상에, 나는 그걸 다 클래스 101에서 겪어봤다...!? 이런저런 경험을 공유하고 기획과 디자인을 같이했다. 오랜만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디자인을 하려니 피그마가 낯설기도 했다. 내가 알던 기능과 너무 달라졌는데...!? 하면서 디자이너를 다시금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올해 개인적으로 쓴 글을 정리해 보았다. A5 사이즈로 치면 100페이지가 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매일매일 쓰던 것도 아니고 시간이 남거나 글을 쓰고 싶어질 때 썼던 단편들이 모여서 그렇게 된 게 신기하기도 했다.
세간에 알려진 개복치는 툭하면 죽는 이미지다. 하지만 개복치는 그렇게 쉽게 죽지 않고 오히려 부딪힌다면 부딪힌 상대가 아플 정도로 단단한 외피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파도를 타고 둥둥 떠다닌다.
7월은 나도 그랬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영어 학원도 계속 다녀보고, 대외 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호기심에 대기업이 탐낸 맛집은 얼마나 맛있을지 궁금해서 천안 뚜주르 빵집을 가보고, 쏘카에서 진행한 PM 디너톡에 참가해 다른 PM들은 어떻게 일하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들었다. 둥둥 떠다니면 하고 싶은 걸 하고,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고 움직여보았다.
오랜만의 인연으로는 첫 직장 사수님에게도 밥을 얻어먹었다. 심지어 사수님이 대표님과 전화를 연결해줬다. 덕분에 대표님과도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냐, 이렇게 회사에서 만나 밖에서 만나는 인연으로 발전한 것도 귀하다면서 사수님과 내 인연이 길어지는 걸 응원해 주며 사수와 함께 비싼 밥을 먹으라고 법카를 윤허해 주셨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게 여러 실수를 함께 해결하고 다양한 경험을 나눠준 사수에게 종종 고맙다고 연락하다보니 이렇게 퇴사 후에도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경험을 글로 남기는 걸 좋아해서 해커톤 주최 후기를 남겼더니 큰 규모의 단체에서 자문 요청을 받기도 했다. 자문과 함께 DND를 궁금해해서 취지를 설명해 드리니 비영리단체의 순수한 의지와 뜻을 공감해 주셔서 뿌듯했다.
DND 활동으로는 본격적인 11기 활동이 시작되면서 수요일 밤 9시부터 11시까지 디스코드를 통해 참여 디자이너분에게 조별 진행 상황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고 있다. 디자인 피드백일 때도 있고, 기획과 리서치, 혹은 커리어와 포트폴리오 상담일때도 있다. 그러면서 지인 찬스를 써서 피그마 오픈 세션(강의)을 준비 중이다. DND 참여자분들이 바라는 세미나를 취합했을 때 가장 바라는 세미나이기도 하고, 귀한 인연으로 피그마를 아주 잘 다루는 분을 알고 있어서 온라인 세미나를 운영진들과 으쌰으쌰 준비 중이다.
농구를 계속하다 보니 (우연하게) 3점 슛도 넣어보았다. 키가 작아서 슛이 자주 막히며 약했다. 3점 슛은 내 인생에 있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되는구나 소소하게 깨달았다.
6월부터 시작한 창업 활동의 도움도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얼추 기획과 디자인이 끝나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역시 서비스가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즐겁다.
그러다 감기에 호되게 걸렸다. 말을 잘하지 못했고, 기침도 났다. 약한 열도 있었고 백수가 가장 바쁘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정도로 바빴다.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약을 먹어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집에서 쉬기도 했다. 일주일 넘게 앓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살짝 기침이 난다.
취업 활동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었다. 중간, 중간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서류 지원도 해보고, 면접도 봤다. 커피챗으로 다양한 회사를 만나며 나의 자리를 찾고 있기도 하다. 평소 '어디 가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답을 했던 기업에서는 아쉽게도 다음에 만나자는 결과를 받기도 하며 수없는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고 있다.
한 면접에서는 나에게 나의 경력을 다 인정해 줄 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굉장히 기분이 나쁘고, 자존감도 깎였지만 다음 면접에서는 회사에서 원하는 연차가 아니긴 하지만 이력서에서 계속 성장하고 노력하는 게 보여서 면접을 요청하게 되었다고 했다. 같은 이력서인데도 보는 사람마다, 회사마다 반응이 달랐다. 어떤 질문과 평가는 상처로 남기도 하지만, 어떤 면접은 그 회사의 성공을 바라게 만들고 다시 도전하고 싶게 만들기도 했다.
자소서의 고난과 역경 파트에 적기에도 진부해질 때로 진부해진 과거 사건, 대입 재수했던 시기가 떠올랐다. 나의 의지로 모든 게 해결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와 합이 맞는 상대를 찾기까지 혼자 불안해하며 긴 시간을 보내는 시기. 그때도 자기 확신을 갖기 어렵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었는데 지금도 그렇다. 불안해하고, 이게 맞는지 몰라서 한탄하고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방탈출을 가준다거나, 좋아하는 걸 사다 준다. 잘될 거라고 말을 해준다. 더 쉬어도 된다고, 잘될 거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답정너처럼 굴어도 귀찮아하지 않고 계속 응원과 격려 해주는 소중한 친구와 주변 사람들이 있다. 처음엔 불안과 답정너의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나를 친구로, 주변에 두었으면 이런 나를 견뎌. 나를 칭찬과 무조건적인 응원으로 키워. 사회는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친구들은 웃어준다. 역으로 이걸 더 해보라고 회사를 가느라 자기들이 못하는 이벤트를 부추기기도 한다. 물론, 취업을 하라고 하기도 한다. 정신을 놓고 있을 땐 쓴소리도 해서 정신을 차리게 해주기도 하고.
줄곧 번아웃인가? 내가 무엇을 했다고? 이제 나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거 아닌가? 동료들은 이제 자리를 다 찾아갔는데?라는 생각을 쉽게 버릴 순 없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여행도 가고 싶다는 의지조차 들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둥둥 떠다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궁금해서, 번아웃인지 알고 싶어 번아웃에 대한 책도 읽어봤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내가 도메인을 많이 바꾸면서도 계속 산출물을 내온 건 힘든 일이었구나! 내가 당연하다 여기며 그렇게 달려온 것도 힘을 많이 빼는 일이었구나! 클래스101에서 2년이 안 되는 기간에 빼곡해진 경력 기술서가 자랑이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나를 소진했다는 영수증이기도 했다. 영수증이 길면 길수록 다양한 물건이 담긴 걸 증명한다. 그만큼 청구되는 금액도 저렴하지 않다. 나의 경험이 두터워지는 만큼 청구되는 금액도 강했다. 이제는 손에 든 걸 내려두고 힘을 회복해야 할 때가 아닌가? 조급할 필요가 없다. 이미 구매한 경험은 나의 것이며 어디 가지 않는다. 천천히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나와 맞는 회사를 찾아보면 된다. 그리고 원래 내가 인생 사는 게 느리다.
우스갯소리로 가족들은 나에게 '너는 항상 이런 일을 겪으면서 헐떡이고 느리게 간다'라고 말한다. 순탄하게 간 적이 없다고, 그러려니 한다고 내 불안과 실패, 도전을 당연하게 여겼다. 지금은 뭘 해도 실패하는 기간이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어차피 책임질 반려동물이나 가족도 없으니 천천히 나와 맞는 회사와 일을 찾으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또 한 번 성공할 거라고.
분명 이 시기가 지나면, 지금 느끼는 불안과 자유를 그리워할 테니 지금 당장 불안에만 함몰되지 않게 노력해야겠다.
남들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조급해하지 않고 나의 길을 가자고 다짐하며 내일은 어떤 도전을 할지 주변을 둘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