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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욱 Dec 06. 2022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22.12.05

"작가님의 글을 못 본 지 무려 180일이 지났어요!! ㅠ_ㅠ" - Nov.15 2022 from Brunch


180일이 넘도록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 나를 합리화하는 변명일 수도 있고 또한 상투적 표현이지만.


그간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난여름 텀블벅에서 2천6백만 원을 후원받아 첫 번째 사진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평생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들과 인연들이 불쑥 나의 삶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낯설음을 어찌 다뤄야 할지 몰라 하루하루 초조했고 꽤나 신경질적이었다. '다른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이런 중요한 문제를 그리 깊이 고민해보지 않고 평탄하게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이었을까.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음에 박힌 수많은 가시들을 뽑아내며 참 많이 울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본 아버지께선 "네가 이제야 인생공부를 제대로 하는구나."라고 담담하게 위로해주셨다.


벼랑 끝에서 기댈 수 있는 건 역시 가족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불던 9월의 어느 날, 파주의 한 물류창고에서 고민하는 나를 안아주고 한 권에 2kg이 넘는 사진집을 하루 종일 같이 포장한 사람은 아내였다. 인쇄사고가 나서 잘못 인쇄된 페이지들을 보며 절망하는 나를 수렁에서 꺼내 준 건 아들이었다. "나도 나중에 내 그림을 모아서 아빠처럼 책을 만들 거야."라는 그 한줄기 빛과 같은 소리에 나는 어둠 속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다.


완성된 책과 마주하니 정말이지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책 속에서 서른 살 나의 열정과 순수함, 도전의 용기가 보여 대견했고 숨길 수 없는 강박과 무지함, 얕은 실력이 여전히 그대로일까 두려웠다. 지금까지 모니터 속에만 존재하던 나의 사진을 현실에 꺼내어놓으니 더 이상 부족함을 숨기면서 도망 다닐 수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발가벗은 채 사람들에게 발각된 느낌이다. 두 손으로 가리기엔 가려야 될 곳이 너무 많다.


180일 만에 우울한 이야기들만 써놓았는데 물론 행복도 있었다. 사진을 시작할 무렵부터 지금까지 나의 롤모델이셨던 문화재 사진의 권위자인 작가님께 무려 직접 통화하면서 칭찬받았다. 나는 선생님의 사진을 흉내 내려고 노력했는데, 나를 배려하셔서 당신의 사진은 내 사진과 다르다고 말씀해주시고 사진에서 순수한 열정이 느껴져 좋다고 하셨다. 브로커를 찍으면서 송강호에게 칭찬을 받고 엄마한테 자랑했던 아이유의 기분이 이랬을까 - 물론 나는 아이유의 레벨이 아니지만 그때의 기분은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사진을 찍고 글을 써야겠다.

설령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보통 연초에 이런 결심을 자주 했는데 12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이런 마음이 든 걸 보면 나는 지난여름보다 조금 자란 것 같다. 두 권의 책을 통해 겨우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딘 나를 위로하고 칭찬한다.


나의 첫 번째 사진집 <차경 : 빌려온 풍경>


1권 - 종묘, 창덕궁


2권 - 서오릉, 선교장, 명재고택




- 공들여 축적된 시간은 생각보다 쉬이 흩어지지 않고 언젠가는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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