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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 Jan 25. 2023

직업인의 장래희망

20살이 되자마자 나는 부천 모 학원에서 일을 했다. 시급 3천 원이 당연하던 때에 만원이 넘는 시급을 받으며 일을 했으니 대학생활 내내 여유로웠다. 성인이 되자마자 이룬 어느 정도의 경제적 독립이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졌고, 꽤 오랫동안 자부심으로 남았다.

당시 부원장님은 좋은 롤모델이었다. 본인도 몇 번의 사업 실패로 넉넉하지 않으셨음에도 가정 형편이 어려운 몇몇 원생들의 학원비를 대주셨다.
감명 깊었다. 그분이 학원을 떠나신 후 상실감에 이직한 다른 학원에서, 학생들을 직접 돕지는 못해도 최소한 학생들이 '돈 얘기'만큼은 듣지는 않도록 꽤 신경 썼다. 강의 중에 문을 빼꼼 열고 '학원비가 밀렸다'며 학생에게 말을 거는 원장의 모습에 화가 나서 매몰차게 문을 닫아버린 것은 나름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가난한 동네 학원에서의 경험은 내 장래희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무슨 오만함인지 모르겠으나, 여유롭지 않은 학생들을 돕고 싶었다. 학비와 생활비로 쓰는 것이 금지된 장학금을 주고, 그들이 앙상한 일상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 삶을 풍성하게 가꾸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었다. 그러고도 돈이 남으면 학교를 세우고 싶었다. ‘무료 대학교’를 어디까지 명문으로 만들 수 있을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때 학비가 밀렸던, 재능 있는 친구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올 수 있는 명문대라니 내 망상이지만 기똥찼다.

최근까지도 이런 망상을 하며 혼자 즐거웠고, 괜히 설레 혼자 낄낄대며 출근하고 퇴근했다.

나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은 속물인지라, '복도가 있는, 대리석이 깔린 집'이라는 구체적 물욕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위의 장래희망이 정말로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던 듯하다.


일은 바쁘고, 직업인으로서의 나는 점점 완성이 되고 있는 듯하다. 모든 것이 불안했던 창업자의 모습은 지워졌다. 어떻게 하면 보통의 잘 사는 사람처럼 살 수 있을지도 알 것도 같다. 그러나 뭔지 모르겠지만 요즘엔 별로 즐겁지도 않고 마음이 안정되지도 않는다.

한없이 쳐지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일도 운전도 집중이 안되어서 퇴근길엔 세 번이나 사고가 날 뻔했다. 어떻게 하면 그때의 낄낄대던 장래희망이 살아날까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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