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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Aug 27. 2022

알지 못하는 청년의 죽음, 명복을 빌며

'아직 못 읽은 책이 많은데..'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이번 주 초였다.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뉴스 제목을 보게 되었던 것은. 


'아직 못 읽은 책 많은데… 보육원 출신 새내기 대학생의 극단적 선택'                                  


가정불화로 인해 가정에서 자라지 못하고 보육원 시설에서 자라던 A군은 18세가 되어 보육원을 퇴소하고 대학교에 진학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사는 자립정착금으로 받은 크지 않은 돈을 써버리고, 생활고로 고민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는 추측으로 마무리된다. 낯설지 않은 사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사연이다. 그리고 그가 남긴 쪽지에 적혀 있었다는 짧은 한 마디가 울컥- 내 얀의 뜨거운 무언가를 건드렸다. 


'아직 못 읽은 책이 많은데…' 라니.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하는 사람의 말이라고 하기엔, 삶에 대한 애정이 짙게 묻어 나오는 말이 아닌가. 살고 싶었지만, 도저히 살아갈 도리가 없었다. 그의 짧은 삶이 남긴 메시지에 마음이 저리듯 아팠다. 



2018년부터 보육원 등 시설에 입소해 있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상대로 법률 강의 봉사를 하고 있다. 노동법 강의 뒤풀이 자리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강 변호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변호사님, 혹시 강의 봉사에 관심 있으세요?"

"관심은 있지만, 시간이 없죠. 아이 키우며 회사 다니는 것만으로 벅차네요."

"그래도 변호사님 강의도 잘하실 것 같은데, 혹시 생각 있으시면 꼭 연락 주세요. 보육원에서 퇴소한 아이들 있잖아요. 진짜 법률적인 도움이 필요한데, 어디서 도움받아야 하는지부터 모르는 아이들이 많거든요."

"음, 그래요?"

"애들이 만 18세만 되면 시설에서 나와야 하는데, 민법 상으로는 성년에 도달하지 않은, 미성년자잖아요. 그러니까 혼자 법률행위를 할 수 없고, 핸드폰 개통도, 통장 개설도 어렵고. 아르바이트 구할 때도 제약이 많고. 그런데 생활은 해야 하니까 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범죄가 내몰리기도 하고요." 

"엥? 미성년자 상태에서 그냥 나가서 알아서 살아, 그런다고요?"

"아동복지법 상으로는 만 18세까지를 보호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민법상 성년은 만 19세니까요. 1년이 뜨는 거죠."

"…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안 되죠.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던지, 경과 규정을 두던지, 뭔가 정책적으로라도 지원을 더 해주던지 해야 하는데, 아직 관련 제도가 정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아이고, 안타깝네요."

"…그래서 아이들한테 집을 구할 때 알아둬야 할 부동산 법률상식, 취업할 때 알아야 할 노동 법률상식, 이런 거 알려주는 거 정말 큰 도움이 되거든요. 꾸준히 하시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시간 되실 때 한두 번 만이라도 좋으니까 한번 같이 와주세요." 


그 말을 듣고, 법률 봉사 동아리 변호사님들과 아동복지시설 몇 곳에 '재능기부신청서'를 제출했고, 몇 군데에서 OK 사인을 주셨다. (다행히 2022년에 제도가 정비되어, 24세까지는 본인이 신청한다면 시설에 더 머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뷰]"보육원 나간 그 형은 교도소, 나도 노숙생활…" - 노컷뉴스 (nocutnews.co.kr)



자립준비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률 강의는 내가 해온 다른 법률 강의와 달랐다. 회사에서 하는 법률 강의는 아무리 재미있게 진행해도, 반응이 열광적일 수 없다. (계약서 조항 잘 읽어보고 유의하자는 강의가 뭐 그리 재미있겠는가! 실제로 매우 중요한 내용이지만, 임직원들의 반응은 대개 심드렁하다) 그런데 자립준비 청년들, 특히 고3들을 상대로 하는 법률 강의는 참여율도 높고, 아이들의 눈도 초롱초롱하다. "나의 생존과 관련되어 있는 지식"이라는 생각에, 쉽지만은 않은 내용도 의욕을 가지고 따라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만났던 밝은 표정의, 영리한 눈망울을 했던 아이들도 자립 후 생활의 벽에 부딪혀 삶의 의지를 상실하게 될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이 현실인 걸까. 


나는 보육원과 같은 시설을 퇴소한 아이들('보호 종료 아동'이라고 불리다가 '자립준비 청년'이라 불리는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삶은 살아지니까 버텨라'라고 조언을 할 자격이 없다. 내가 살아온 삶의 난이도는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혹시 삶을 놓고 싶은 마음이 드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에게 가 닿았으면 하는 말이 있다. 



몇 년 새 자립한 선배들 중에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행복해 보이는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노라고. 그 과정이 쉬웠다거나,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쉽게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한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 선례들이 있으니 삶을 쉽게 놓지는 말아달라고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일들로 비난하거나 막말을 하는 나쁜 어른들도 있는 한편, 집 반찬을 같이 만들어 나눠주고,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는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좋은 어른들도 간간히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뇌피셜이 아니라, 그런 좋은 어른들을 만난 게 자립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청년들의 글에서 읽은 내용이다!)


'부모에게도 버림받은 나를 누가 진정 사랑해 줄 수 있겠어?' '나는 누군가에게 최우선 순위일 수는 없으니까'라고 생각했던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줄 따스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힘든 하루들을 착실하게 쌓아 나가다 보면, 어느새 우상향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멀리 내다보기가 너무 막막할 때에는 오늘 단 하루를 살아남는 것, 지금 이 한 발짝을 앞으로 디디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멀리 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막연하다면 막연할, 무심하다면 무심할 말을 건네고 싶다. 

고인의 명복을 간절히 빌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적어도 비극의 규모가 점점 줄어들기를 바라본다. 



[아동복지법] 제3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아동”이란 18세 미만인 사람을 말한다.

2. “아동복지”란 아동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을 조성하고 조화롭게 성장ㆍ발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경제적ㆍ사회적ㆍ정서적 지원을 말한다.

3. “보호자”란 친권자, 후견인, 아동을 보호ㆍ양육ㆍ교육하거나 그러한 의무가 있는 자 또는 업무ㆍ고용 등의 관계로 사실상 아동을 보호ㆍ감독하는 자를 말한다.

4. “보호대상 아동”이란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또는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하는 경우 등 그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기에 적당하지 아니하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아동을 말한다.


[민법] 제4조(성년) 

사람은 19세로 성년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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