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팔에 재재를 안고, 오른손으로 쓰레기봉투를 든 채 중문을 나서는 내 등 뒤로 그분의 한 말씀이 발목을 붙잡았다.
아차, 어제 아들이 내차를 썼다는 것을 잊었구나...
하마터면 주차장까지 갔다 다시 올뻔했다, 아들 방 책상 위에 덩그렇게 놓인 차키를 집어 들고 나왔다.
이제 진짜 다녀올게요.
며칠 전 아침에도 그랬다.
데리러 온다든?
아니 , 내 차로 갈 건데?
니 차 00가 갖고 갔다 안 했냐 안(그래)?
아차차, 내 차가 없지...
그날도 주차장까지 가서 없는 차를 찾을뻔했다. 타고나기를 깜빡깜빡한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일찍 출근하라고 전화한 남편도 내 차가 없다는 걸 잊었다. 택시를 타고 출근해 마주한 우리는 아무래도 그분보다 우리가 먼저 치매가 오려나 보다고 혀를 끌끌 찼다.
어느 날이었던가 내 칫솔이 안 보인다며 안방 화장실에서 바깥 화장실로 툴툴거리며 다니는 내게 그분은 '어젯밤 칫솔을 물고 안방으로 가더라 '라고 내 행적지를 읊어주셨다. 물론 안방 화장실에 칫솔은 점잖게 꽂혀있었다.
또 한 번은 딸내미에게 고구마순김치와 부추김치를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 보내려 유리테이프를 찾아 거실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분주한 우리들에게 그분의 한마디.
거기, 에프라인가 뭔가 옆에 있드만...
유리테이프는 에어프라이어 옆, 그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아들은 우리 집에서 가장 똑똑한 분은 그분이시라고. 모르는 거 있으면 다 여쭤봐야 한다고 했다.
그랬다. 엄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제 현관 앞에서 엄마에게 검사를 맡는다.
약은 먹었냐? 안경은? 핸드폰은? 차 열쇠는? 오늘도 덥단디 옷이 안 덥겄냐? 잉 잘 댕겨와라!
세상에 목심이 붙어있는 동안은 내 느그들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어야...
아버지는 다 알고 계셔 , 누나!
2014년 그해 가을. 나는 최대한 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에 되도록 가지 않으려 핑곗거리를 찾았고, 동생은 요양원 직원들이 불편한 내색을 보일만큼 자주 갔다. 나는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셨으니 잊어버리려 했지만, 동생은 점심시간에 맞춰 들러 식사라도 챙겨드리려고 바빴다.
아버지께서 요양원에 입소하신 지 한 달쯤이었을까? 동생이 한시가 다되어 가게로 왔다. 아침부터 서둘렀을 것이다.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나와집에서 목욕을 시켜드린 후 운동삼아 내가 있는 곳으로 나온 것이 분명했다. 동생은 이렇게 토요일 요양원에서 아버지를 외출로 모시고 나와 일요일 오후나 월요일 오전 중에 요양원으로 다시 모셔다 드리곤 했다.
그날, 아버지 얼굴은 더 야위어 보였다. 오른쪽 눈가가 짓물렀고 모시고 나오는데 아버지에게 요양원에서 맡아지던 시설 냄새가 배어있었다며 동생은 속상해했다. 집에서 목욕을 시켜드리고 나왔는지 아버지의 모습은 말끔했다. 가게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버지는 해물볶음밥 한 숟가락 뜨시면 나는 우동 국물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어드렸다. 몇 개 남지 않은 앞니로 조근조근 몇 번 하시다 꿀꺽 넘기셨다. 얌전하게 앉아 먹는 모습이 경건하기까지 했다. 짜장 소스와 절반만 섞어 놓고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했더니 반공기를 더 드셨다. 혹여 탈 날까 걱정스러운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걱정하던 차에 몇 숟갈을 남긴 채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따ㅡ 오래간만에 보네ㅡ
아버지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맨 먼저 한 말이다.
아버지는 다 알고 계셔 , 누나!
동생은 내 마음을 읽은 듯 웃었다.
정말 다 알고 계실까?
나흘만이니 오랜만이긴 했다.
난 할 일을 한 거야.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낸 이후, 그곳에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차라리 보지 않는다면 덜 고통스러울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계신 방에는 네 분의 남자어른들이 계셨다. 한분은 갈 때마다 눈을 감고 누워계셨고, 다른 한 분은 대화가 가능한 분이었지만 거동이 불편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또 한 침상은 자주 바뀌었다. 가끔 들른 경우 아버지가 보이지 않을 때 아버지는 단체 활동 중이셨다. 노래를 부르고 계시거나 그림을 그리시거나 물리치료 중이셨다. 그럴 때면 나는 다행이라고 여기며 아버지 소지품이나 드실 유제품등을 요양보호사에게 전달하고 다시 나왔다. 그리고 아버지 요양원에 다녀왔다고 동생에게 보고했다. 난 할 일을 한 거야.
집에 가잔말이다...
마당이 없는 요양원, 어차피 치매환자를 운동시켜 주는 요양원은 없을 거라며, 그 운동은 주말이면 모시고 나와 직접 하겠다는 동생의 결정으로 선택한 요양원이었다. 건물이 낡지 않았고 내부 위생상태가 청결해 보였다. 그리고 종합병원이 바로 옆에 있었다. 우리 집과 차로 10분 거리였다. 최상의 조건이었다. 마당이 없다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요양원에 다녀오면 난 숙제검사를 맡듯 운동은 시켜드렸느냐는 동생의 질문을 받았다. 동생은 늘 하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묵은 숙제를 하듯 3층 복도를 아버지 손을 잡고 걸었다. 내 얼굴이 당신 눈동자에 비추면 아버지의 무료하고 표정 없던 얼굴은 어느새 주름을 일으키며 방긋이 웃었다.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중간쯤 왔을 때 내 손을 잡아끌었다.
쉬이... 조용히 허고...
아버지는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갖다 대고 조용히 하라며 내게 눈치를 주었다.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왜요?
눈치 없이 물었다.
아이 가잔말이다. 집에...
잡고 있는 손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잡아당기며 아버지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보며 몰래 가자고 내손을 끌었다.
아버지 다음에 집에 가게요. 아버지 막내아들이 낼모레 모시러 올 거예요.
사정사정 달랬다. 아버지도 눈빛으로 사정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떼를 쓰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갔다. 복도를 따라 걸으면 일부러 넘겨다보지 않아도 유리창안으로 요양원 환자들이 들여다 보였다.아버지도 창문을 들여다볼까 봐 빨리 걸었다. 아버지 눈에 침대에 누워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가기 전에 움직이려 내손은 아버지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아버지 눈에는 유리창 너머 누워있는 할머니들의 얼굴이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67세 000, 85세 000, 93세 000. 이제 나이와 이름만 쓰인 채 침대에 누운 그들의 세월이 달려와 잡아끌 것만 같은 요양원 복도를 몇 바퀴 돌았다. 아버지를 두고 나오는 길, 거울 속 내 얼굴을 보기 싫었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났다. 봄이 꼬리를 보일 때쯤이었다. 2015년 사월 말, 한밤 중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