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2

5

by 수더분한 버마재비

두근두근,

설렘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붙잡아 매는 소리가 아니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시험감독으로 부터 받아 든 시험지를 뒷사람에게 넘기는 순간부터 나는 내 안의 소리였다.


지난주 수요일 치매전문교육 집합 시험장,

6월 한 달간 온라인 수강을 하고 난 후 시험을 치렀다. 시험장 밖에서 대기 중 여기저기 오가는 소리로 미루어보아 그날 시험을 본 사람들은 모두 요양보호사로 근무 중인 듯했다. 문제는 온라인 강좌를 대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수준이었지만 답안지 동그라미 속을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채워나가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밖으로 펜이 삐져나갈까 걱정되어 왼손으로 잡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30분 만에 시험지를 제출하며 걱정도 함께 털어버렸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험장 입장과 동시에 제출했던 핸드폰을 받아 들며 손바닥만 한 성취감도 주어들고 나왔다. 비록 재가복지센터장의 권유로 떠밀리다시피 하게 된 공부였지만, 가끔 이런 시험이 주는 긴장감이 싫지 않다. 그리고 시험장을 빠져나오며 9년전 요양원에 계셨던 아버지를 생각했다.


모르고 가는 길과 알고 가는 길은 걸음걸이가 다르다.

결국 언젠가는 막을 내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종착지에 이르기까지 맞닥뜨려야 할 일들은 짐작만 할 뿐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치매는 평균 10년을 머물다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이제 겨우 삼 년을 지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요양원에 모셔놓고 가끔 찾아뵙는 것밖에 없는데, '어디까지 보아야 막을 내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싫었다. 보이지 않는 앞으로의 길이 두려웠고, 그런 내 모습을 만나고 싶지 않아 아버지가 계시는 요양원에 가기 싫었다. 나는 휘청거리고 있었다


2014년 가을, 요양원 입소 첫날이었다.

“할아버지! 여기 할머니들한테 인사해 봐요.”

“할아버지, 청일점이시네!”

“할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아, 여든넷?”

“아, 그럼 할머니들보다 오빠네.”

“할아버지 ‘오빠랑 잘 지내자!’ 이렇게 말해봐요.”

요양보호사 들이 시키는 대로 무미건조하게 따라 하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얼른 시설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요양원에 근무하는 이들의 말투는 친근함과 배려를 가장한 광대놀음에 뛰어든 구경꾼의 얼굴이었다. 낯설었다.

잘 나가던 머릿속이 버퍼링이 걸린 듯 정작 입 밖으로 나와야 할 단어를 두고 주변을 맴돌았다.

피에로... 피에로... 뭐더라...

그래 저 푸른 잎이 목젖 아래 너불거리는 옷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는데...

누군가 입에서 신음소리 같은 웃음이 실실거리길 고대하며 실룩거리는 피에로... 광대... 광대나물...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 얼굴에 표정 없는 슬픈 광대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저에게는 어떻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저희 아버지께는 존칭어를 사용해 주시겠어요? 편안하게 들으시라고 하는 말씀일 수도 있겠지만 듣는 저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습니다. 늘 만나는 사람도 아니고 첫 진료인데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어느 날이었던가 아버지 진료차 들른 병원에서 동생은 오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정형외과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생은 그렇게 단호하고 정중하게 말하고 나온 후 자신의 행동이 너무 한 거냐고 내게 물었다. 난 고개를 저었다. 잘했다고 했다. 그 후 우리는 그 의사를 찾아가지 않았다.


세상은 아버지를 치매로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나도 세상사람들 중 하나였다.

할머니들과 대화하는 요양원 원장도 요양보호사도 구경꾼 같았다. 그런데 나도 요양원에서 만난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을 구경하듯 바라보았다. 생의 한가운데서 걸어 나와 유체이탈의 과정을 거친 듯 얼굴은 굳어가고, 높낮이 없는 언어로 표현하는 치매에 걸린 당신들이 자꾸만 광대 같았다. 당신 본래의 모습은 가족만이 찾을 수 있고, 타인들의 눈에는 광대처럼 보이는 듯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그래서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내 아버지를 광대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동생이 세 번 방문할 때 한 번꼴로 따라갔다. 아버지를 잊고 싶었다.


“할아버지, 두만강 노래 좀 해봐요. 두마-안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배-앳 사-아공-“

한쪽 눈을 찌푸리는 듯한 표정의 요양보호사는 소파에 앉아 있는 나와 아버지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시는지 몰라요. 그렇죠, 할아버지?”

요양보호사는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두마안강-”

살짝 웃음을 띄우던 아버지는 노랫가락을 누군가 훔쳐갈세라 낚아채듯 이어 불렀다.

푸른물에노젓는뱃사공흘러간그옛날에 내님을싣고 떠나간그배는어디로갔나...

아버지의 '눈물 젖은 두만강'은 노래라기보다는 랩에 가까웠다.


그때도 치매는 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도움을 끊임없이 주어야 하는 병 자체'로만 볼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


치매대상자를 대할 때 기억해야 할 점 두 가지.

첫째, 치매는 병이다

둘째, 치매대상자는 병이 아닌 인격체이다.
치매대상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가 알아야 하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돌보는 대상은 치매라는 '병'이 아니라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치매대상자를 돌보다 보면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치매대상자의 모습은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양보호사가 많이 바쁘고 힘이 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치매대상자를 '도움을 끊임없이 주어야 하는 병 자체'로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치매대상자도 엄연히 한 사람의 인격체이다. 따라서 병과 사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올바른 시각이 요양보호사에게 필요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치매전문교육 교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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