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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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4층 건물 장례식장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달큼한 향기가 흐른다. 수수꽃다리였다. 어제는 코를 벌름거리며 애를 써야 맛보기 엿가락처럼 살짝 묻어나던 단내가 오늘은 지나가는 이의 손목을 이끌어 그 품에 고개를 묻게끔 한다.

응급실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장례식장 그 반대편은 종합병원, 삶과 죽음이 갈리는 지점에서 젊은 날의 추억이라, 첫사랑의 여운이라 불리는 수수꽃다리를 심어놓음은 무슨 의미였을까. 보랏빛 단내를 기억하라는 것일까 아님 쓰디쓴 잎을 씹어보라는 것이었을까? 별 시답지 않은 질문에 새삼 집중하려는 내 모습에 피식 웃고 모퉁이를 돌아 병동에 들어섰다.


며칠 전까지 허공에 매달려 있던 노랗고, 희멀건하고, 투명한 수액은 이제 아버지의 몸에서 노란 생리 식염수만 남기고 제거되었다. 팔에 꽂힌 바늘과 튜브줄은 퉁퉁 부었던 손등과 팔목을 쪼글쪼글 만들어놓고 달아났다. 손가락사이까지 손소독제를 밀어 넣으며 맥박, 호흡수, 산소포화도, 소변량, 식사량, 체온, 혈압등을 눈으로 체크했다. 제법 유능한 보호자처럼. 병균도 기가 찰만큼 어설픈 반의사가 될 참에 다행히도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6인실 남자병동, 여전히 새파란 공기를 집어넣을 것만 같은 산소 튜브를 코에 넣고, 그르렁 거리는 가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아버지 곁에서 나는 어린이날을 보낸다. 싹 훔쳐내고 싶은 흐린 하늘을 향해 기다란 굴뚝을 세운 페이퍼공장을 바라본 채 옆 침상에 걸터앉은 할아버지 어깨가 들썩거린다. 소리 내어 엉엉 우신다. 그리고 화장지로 콧물을 닦는지 흥흥 거린다.

할아버지 귀에 대고 쓸데없이 운다며 무참하게 큰소리로 말하는 할머니, 마주 앉은 아들은 일상인 듯 무심히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오래된 병원생활에 할아버지는 외로웠고, 이를 지켜보는 할머니와 아들은 지쳐서 할아버지의 울음은 그들에게 별것 아닌 일인 듯했다.

어버이날을 사흘 앞둔 어린이날이었다.

2015. 5. 5.



빨갛고 물컹한 홍시로 기억되는가 하면 윗옷에 배어있는 섬유유연제 향기로 기억되는 사람이, 일들이 있다.

한날한시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겪더라도 내가 느끼는 색감과 후각이 만들어 놓은 모양 치는 다른 이와는 별개이다. 내가 느낄 수 있는 더듬이는 타인의 그것과는 다르기에.


토요일 오후 늦게 아버지 병원에 들렀다. 매일 들러 아버지의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주무르고 두드리고 휠체어를 태워드리며 고군분투하는 동생에게 미안해서 난 인해전술로 나섰다. 어깨는 큰 녀석과 내가, 양쪽 다리는 작은 두 녀석이 주무르니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처음에는 열심이던 아이들의 손가락은 시간이 흐를수록 시들해졌고 시선은 텔레비전으로 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시원한 표정도 그렇다고 아프다는 표정도 없이 세워놓은 침대맡에 머리를 기댄 채 묻는 말에 '응'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만큼의 소리만 내었다.


병원에서 나오니 바람이 꽤 사나웠다. 초여름밤인 줄 알았더니 봄기운이 아직 남은 모양이다. 겉옷을 걸치지 않은 작은 녀석 목이 자꾸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걸어서 십여분의 거리, 중간에 햄버거 가게가 있기에 넷이서 걸었다.


그리고 만난 청청한 하늘과 고물고물한 연둣빛 손가락을 흔드는 은행 이파리, 하얗게 피어있는 마가렛. 그 속에 내 아이들.

나는 또 기억한다.

2015. 5.11.


아버지 여든다섯 번째 생신 날, 우리는 아버지를 동생 집으로 모시고 왔다. 7개월 요양원 생활을 정리했다. 대상포진과 폐렴은 그렇다 치더라도 영양실조였라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우리는 더 이상 요양원에 아버지를 둘 수 없었다.

2015. 5. 27.


(다음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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