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버지 방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모로 누운 당신 대신 욕창방지매트가 깊은숨을 쉬었다. 겨우내 온 힘을 다해 불을 피우던 연탄이 갈빛 쇠곤한 표정으로 버려진 것처럼 아버지는 그렇게 누워계셨다.
늘 괜찮다고 말하던 아버지는 언어도, 식욕도 잊어갔다. 5년 전 급성신부전증으로 병원에 입원하시면서부터 치아는 힘을 잃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힘센 딸은 아버지 이를 야물게 닦았었다. 화장실 세면대에 떨어진 이를 발견하는 일이 잦았다. 아버지가 집으로 오시면서 매일 하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죽 끓여 식사 챙겨드리기와 목욕시켜 드리기. 모두 일방적인 것들이었다. 야채죽, 소고기죽, 버섯죽, 매생이죽, 호박죽, 전복죽... 알고 있는 죽과 죽이 될만한 재료는 모두 죽이 되었다. 깔끔한 동생은 하루에 한 번은 목욕을 시켜드렸다.
어쩌다 내가 목욕을 담당하는 날에 유난히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의 쇄골이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근력대신 고인 물을 볼 때마다 검지손가락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쇄골에 고인 물은 늘었고, 힘없이 늘어진 당신은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하셨다. 겨우 죽에 불과했지만 삼키기도 힘드셨는지 사레들리는 일이 잦아졌고 점점 우리가 알고 있는 아버지 얼굴은 멀어져 갔다. 1년이 넘어가자 우리는 지쳤다. 끝이 어딘 줄 모르고 달리는 마라톤과 같은 길은 때론 여기가 끝이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만들어냈다.
혼자 잘 살면 그만 이었던 동생도 이러다 우울증 올지도 모르겠다고 지나는 말처럼 흘렸다. 듣고 있었지만 알은체하는 순간 그 우울이 내 안에 잠든 친구를 깨울까 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나쳤다. 그사이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세 아이들, 집에서 경증 치매를 앓고 계시던 시어머니와 가게일은 내손을 기다리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생긋생긋 잘 지내려 했으나 아주 작게 솟아오른 가시가 생채기를 만들고 핏물이 올라왔다.
그렇게 2년 여가 흘러 가혹한 하루가 또 지나가는 날,
'아버지, 이제 가셔요.'
라고 나는 내 안으로 말했다.
2017년 사월 초파일, 여든일곱 번째 생신을 맞은 아버지를 모시고 자주 찾던 송광사에 갔다.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었다. 깊이 들어간 눈과 패인 볼, 어디에도 오월의 바람과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손주 녀석들이 미는 휠체어에 거의 눕다시피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계셨다.
아버지 송광사예요...
아따 잘해놨다이-
불편하지 않으세요?
괜찮해!
풍경소리와 초파일 인파에 가려 들리지 않았다. 우리들은 하얗게 웃고 있는 함박꽃 옆에서 표정 없는 아버지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두 달 후, 아버지는 떠나셨다.
사위어가는 당신의 잔불이 피워 오르고자 올려내는 연기에 우리는 그저 고개를 돌리고 눈물짓고 있었다. 이제 그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양원에서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온 후 하루하루 , 이젠 가셔도 된다고 감히 말했던 그 순간마저도 당신은 내 곱은 손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었던 것을 아주 먼 훗날에야 알았다. 한참을 에둘러 지나고 나서야 보였다.
요양원에 계시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아버지를 동생집으로 모시고 나온 2015년 그해 가을이었다.
"황해도? 아버지 집이 황해도였어요?"
어디까지 가셨을까? 당신은 열 살을 겨우 넘긴 나이에 당신 아버지와 황해도 날품팔이 가셔서 살던 곳을 면, 리, 번지까지 읊으셨다. 거꾸로 가는 당신의 시계는 거침없이 뒤돌아 달려 이제 여남은 살에 머무르신 듯했다.
다시 물었다.
"아버지 집주소는요?"
그제야 아버지는 엄마가 지키고 있는 우리 집 주소에 이어 내 본적지 지번까지 쉼 없이 말했다. 한때 소리가 좋고 즐거움이 많으시던 아버지의 언어는 높낮이와 장단을 잊어버린 지 이미 오래였다.
봉숭아 씨가 영글어가는 구월. 집에 가자는 아버지를 모시고 밤 열한 시쯤 시골로 달렸었다. 새벽 한 시가 다 된 시각, 엄마는 집 앞 가로등 아래 서성이고 있었다. 동생에게 안긴 채 차에서 내려 마당에 발을 딛는 아버지를 보며 엄마는 당신 몫의 일을 자식들에게 맡긴 것이 애달파 눈물지었다. 기저귀와 약봉지, 빈 반찬통, 옷가지들을 들여놓고 잠자리를 깔고 보니 두시쯤이었다. 제법 찬 바람에 창문을 꼭 닫고 누워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그해 십일월, 주암호 물가에 갈대꽃이 하얗게 핀 어느 날도 우리는 전날 오후 깎은 감이 벌써 선홍색 물기를 걷어내고 말갛게 살 마른 대봉을 대롱대롱 옥상하우스에 매달아 놓고 부산스럽게 동네를 빠져나오며 당신이 앉아있던 당산나무 아래 바스락 쏟아져 내린 느티나무 낙엽을 눈에 담았다.
이 모든 길에 아버지는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고 계셨다. 동생 집에서 호박 속을 파놓은 듯한 둥그런 의자에 작은 몸을 앉히고 줄곧 꾸벅 졸던 아버지는 당신 집으로 가는 길에 잠 한숨 붙이지 않고 뜬 눈으로 앉아계셨다. 그리고 도착한 곳, 아버지 손으로 담장을 치던 집에서 피곤한 몸을 누이시고 주무셨다. 아무런 소리 없는 잠에 간혹 이불 위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당신의 심장을 보았고 그마저 보이지 않을 때는 아버지 얼굴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대었다. 아버지 코 고는 소리에 한숨 못 잤다고, 아버지가 마신 술이 익어 감내가 난다며 창문을 열어젖히는 엄마의 아침소리가 아스라했다.
어느 봄날, 연탄재 옆에 핀 봄까치꽃이 말했다.
아버지는 사위어 가는 당신의 불가에 곱은 손을 가져다 대고 손바닥을 내 보이는 내게 후- 입김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고.
얼음장 같은 손에 닿은 불기운이 네 몸에 돌고 돌아 얼굴에 빨간 꽃이 피기 시작했을 즈음 아버지는 까맣게 속이 타고 있었다고.
새벽녘 잿더미만 남기고 사라진 불덩이는 내 어깨에 익은 햇빛을 얹고 사라졌다고.
버마재비 인자 온가?
뭐 허다 인자 오까이ㅡ
아마도 학생들 다보내고 제일 꼴애비로 온갑서이ㅡ
당산나무가 드리워진 정각 툇마루에 걸터앉은 아버지는 해 질 녘에야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 딸에게 말을 건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