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밥값

9

"밥값을 해야 허는 디..."

아버지는 지나는 말처럼 가볍게 던지셨다.

결혼한 지 1년이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우리는 한치의 걱정도 없이 해맑았는데, 한해를 넘기자 양쪽집 어른들의 근심이 늘어갔다. 시댁에서는 타박하는 눈빛을 애써 감춰가며 나이도 있는데 혹 일부러 늦게 갖으려 하느냐고 물었다. 전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그냥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 걱정은 친정까지 옮겨왔다. 엄마는 피문어를 사다 고았다. 약간 비릿한 바다내음만 날뿐 아무런 맛도 없는 검붉은 물을 한약 먹듯 이마를 찌푸려가며 억지로 먹었다. 배롱나무 반질반질한 나뭇가지 중 물가를 향하고 있는 가지를 베어와 삶은 물도 마셨다. 한약이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를 치는 나 때문에 엄마는 남들처럼 한의원에 가서 한약 한제 지어다 달여 먹이는 것은 애초에 포기한 모양이었다. 아홉수에 걸릴까 봐 부랴부랴 스물여덟 겨울에 시집을 보내놓고 보니 또다시 2세가 걱정된 엄마는 자꾸 민간요법에 기대어 뭔가를 계속 만들어 먹일 태세였다. 그 옆에서 아버지가 한마디 하셨다.

"밥값을 해야 허는 디..."

아버지마저 내게 밥값을 요구했다. 모름지기 시집을 갔으면 그 집안의 대를 이을 손을 낳아야 한다는 그 밥값. 나는 결혼 2년 만에 그 밥값을 했다. 그것도 삼 년 동안 톡톡히 해냈다. 삼 남매를 낳았다.


아주 어릴 적 '밥값'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어이구, 밥값하고 있네!"

고샅에서 공기놀이나 땅따먹기, 자치기나 술래잡기를 하느라 땀에 범벅, 꼬질꼬질한 상태로 놀이에 흠뻑 빠져있는 우리들을 바라보던 아버지. 바지게 가득 소먹이 풀을 베어 돌아오다 당산나무 그늘에 지게를 받쳐놓고 오달진 낯으로 눈가에 주름을 일으키며 이렇게 말했다.

"음마, 잘 허네! 느그들은 그것이 밥값이제 뭣이다냐!"


그런데 내 나이가 두 자리 숫자가 되자 그 밥값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오늘은 밥값했지야?"

보리논에 잡혀왔다. 분명 제 발로 걸어오긴 했지만 손만 안 묶였을 뿐 등 떠밀려 온 꼴이었다. 일요일 아침, 일주일을 기다려온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를 보고 나와야 하는데, 오늘도 테리우스와 앤서니, 앤과 이라이자도 봐야 하는데 '웃어라, 캔디야!' 노래도 함께 불러줘야 하는데, 아버지는 하드(아이스크림) 하나에 우리들을 꼬셨다. 넘어가지 않자 '나 먼저 가있을 테니 얼른 나오라!'며 먼저 나가셨다. 뭉그적거리자 곧 엄마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뭣 한다냐? 얼른 가지 않고... "

보리는 깔끄럽다. 지금도 보리밭만 지나가도 왠지 목에 보리 모가지가 스친 듯 껄끄러워진다. 하지만 아버지 부름으로 안 먹어도 그만인 하드(아이스크림) 하나에 이끌려 보리논에 나온 날, 4남매는 줄줄이 고랑을 잡고 섰다. 그때 언니와 나는 한 사람당 두 고랑씩 잡았는데 나는 한고랑만 얼른 뚫고 베어나갔다. 옆고랑에 보리가 서있으니 뚫고 나가다 보면 굴을 파고 나간다는 느낌과 혼자 속도가 나게 잘 벤다는 생각에 그 방식이 맘에 들었다. 이때, 서너고랑씩 잡고 베어 눕히던 아버지는 한마디 하셨다.

"아이, 낫질 허는 소리가 안 난다. 오메, 거기까지 비어 붔다냐! 오래간만에 밥값 허는 갑다!"

아버지는 일을 시키면서도 교묘하게 기분 나쁘지 않도록 우리들을 잘 얼렀다. 아직 어려 낫질이 서툰 동생들에게 껌이나 하드 심부름을 시켰다. 막걸리도 잊지 않았다. 어느새 우리는 논둑에 앉아 하드를 입에 물고 앉아 아직도 양손에 침을 발라가며 낫질을 기계처럼 해내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쉬었다가 해요, 아버지도 드세요"

"그것이 뭔 맛이다냐? 당최 나는 그것이 뭔 맛인 줄 모르겄드라 . 나헌티는 저그 막걸리 한사발이믄 딱인게..."

아버지는 빈그릇에 막걸리 한 모금 따라 고수레를 외친 후 노란 주전자에서 막걸리를 가득 따라 시원스레 들이키셨다. 그리고 우리들이 여기저기 던져놓은 낫을 주어들고 논 옆 물고랑에 앉아 숫돌에 갈고 계셨다. 우리들 밥값까지 다 하실 요량이었으면 했다.

"일허고 먹은 게 밥맛 좋지야? 꿀맛이 지야? 밥묵고 또 해야지 않겄냐?"

쪼글쪼글하게 조려진 감자가 깔린 갈치조림을 내온 엄마표 밥을 논둑에서 먹으며 아버지는 오달진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리 밥맛이 좋아도, 씹지 않아도 목구멍으로 꿀떡 넘어갈 만큼 갈치조림이 맛있어도, 들장미소녀 캔디를 못 본 것은 아버지 때문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월요일 학교 가는 길 처음 만나는 친구에게 물어봐야 했다. 어제 캔디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점심을 마치고 아버지는 말했다.

"인자 또 밥값 해야 쓰지 않겄냐?"



가을이 밥값을 하느라 들끓고 있다.

가을이 누렇게 익느라 들끓고 있다.


어느 가을, 아버지는 사방에 말뚝을 박고 위 솔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그늘을 만드셨다. 중뫼논 작은 둔덕 위에. 언니와 나는 숙제를 해야 한다고 책과 공책을 펼쳐놓은 채 옆살로 누워서, 턱 괴고 엎드려서 놀았다. 가끔 누렇게 익어가는 논을 빙 둘러 가둬놓은 반짝이줄과 연결된 끈을 잡아당겼다. 중간중간 꽂아 놓은 조릿대에 매달린 깡통이 쿨렁쿨렁 소리를 내었고, 논 한가운데 꽂혀있던 아버지를 닮은 구멍 난 메리야스 밀짚모자 허수아비가 흠칫 놀라면, 앉아있던 참새떼들이 화르륵 날아갔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재미있어 자꾸자꾸 흔들었지만 이내 그것도 시들해져서 허수아비도 우리도 졸았다. 푸른 하늘에 폭 빠져 낮잠을 자다가 몽실몽실 떠다니는 구름 속에서 새를 찾거나, 어디서 본듯한 사람의 옆얼굴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논두렁을 베러 오신 아버지가 작은 소나무집에 나타날 때면 우리는 분명 아버지가 귀히 여기시는 쌀밥을 지키기 위해서 밥값을 하고 있었다. 얼른 줄을 잡아당겼다. 깡통이 쿨렁쿨렁, 허수아비도 흠칫, 새들도 훠이 날아갔다. 물론 아버지 입말로 하는 '훠이훠이'가 훨씬 더 컸다.


오늘 하루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들녘을 바라보다 물었다.

"아버지 저 오늘 밥값 제대로 한 거 맞죠?"

아버지는 가을의 기억 언저리에서 오달진 낯으로 눈가에 주름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었다.

'고생헌다. 밥값허니라."

그 목소리가 듣고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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