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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oresta Nov 16. 2021

모든 일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면


백신을 맞기 위해 남편이 반차를 낸 아침, 10시쯤 병원에서 나와 점심까지 남은 시간 동안 잠깐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어디에 가고 싶어?"라는 물음에 "당신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이니까 당신이 하고 싶은 거 하자!" 답한다. 잠깐 생각하더니 서점에 가고 싶다는 남편. 서점은 나도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에 하나이기에 즐겁게 서점으로 향한다.


외국에 살면서 가장 답답한 것 중 하나는 서점에서 아무 책이나 들어 후루룩 살펴보고 이게 내 취향에 맞는 책인지 판단하는 게 어렵다는 것. 외국어로 된 책을 살 땐, 우선 내가 읽을만한 수준이어야 하고 취향은 그다음이다. 그래도 한 단어, 한 문장씩 열심히 읽으며 가능한 한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본다. 아직도 여러 권 중에 어떤 책을 살지 고르지 못했는데 시간이 꽤 지났는지 이제 나가자는 남편.


골라놓은 선택지를 남편한테 넘기고 그중에 한 권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고는, 계산하길 기다리는 동안 주변에 진열된 책을 살펴본다. 1층부터 2층 천장까지 이어진 중앙의 원형 기둥에 테두리를 따라 놓인 책들이 아름답다. 시선을 떼지 못하고 한참 책들을 살펴본다. 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최선을 다해 사진에 담고 서점을 나온다.



"점심은 어떻게 할까? 집에서 먹을까, 먹고 갈까?"

"마트에 들러서 사갈만한 게 있는지 살펴보자"

동네 여기저기에 하나씩 있는 마트 체인점으로 들어간다. 리모델링을 했는지 다른 지점보다 깔끔하다. 마트에 들어서기 전에 사람들이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작은 푸드코트가 있고, 마트에 들어가는 입구엔 가격표가 붙은 꽃다발들이 조화롭게 진열돼있다.


프로슈토 (Prosciutto : 이탈리아식 햄)를 사러 들어선 Gastronomia 코너에는 햄과 치즈를 비롯해 올리브와 모든 이태리식 반찬들이 각을 잰 듯 가지런히 놓여있다. 심혈을 기울여 냉장고에 마지막 치즈를 진열하는 직원분 뒤에서 그가 일을 마무리하길 기다리다 주문을 한다. 그는 우리가 주문한 프로슈토를 한 장씩 얇게 썰어 그림처럼 쌓고, 무게를 재어 정갈하게 포장해준다.


"여기 있는 거  직접 다 진열하신 거예요? 너무 아름다워요!" 참지 못하고 속에서 맴돌던 칭찬을 건넨다. 예상치 못한 칭찬을 들은 그의 눈에서 순간 '반짝' 빛이 난다. "새롭게 리모델링한 매장이라 더 깨끗하다"며 수줍게 대답하는 그에게 "당신의 진열이 너무 마음에 든다" 한 번 더 정확히 칭찬을 건넨다. "고마워요" 답하는 그와 짧지만 긴 눈인사를 나누고는 돌아섰다.



일을 하다 보면 자주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보이는 것에만 힘을 주고 보이지 않는 것은 대충 해보려 노력하지만 그조차  얼마 가지 못했다. 남들이 보지 않아도, 나는 내가 대충 한 일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것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에도 지쳤을 때 자신의 일에, 더 나아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다른 이의 태도는 내게 '네가 옳다'는 용기를 주었다. 모두에게 보이진 않아도 진심을 담아 하는 일은 분명 누군가에게 전해져 감동을 준다는 것을, 훌륭한 태도로 해내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런 이들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서점에 진열된 책과, 마트에 진열된 햄에서도 그 일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느껴진. 일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단어는 아마도 '태도'가 아닐까. 태도만으로도 똑같은 일이 (또는 삶이) 가치를 더할 수도, 잃을 수도 있기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자신의 일을 아름답게 해내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모든 진심을 담아 그가 한 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인 칭찬을 건네고 싶어 진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 사람이 외롭지 않도록 "내가 당신을 보고 있다고, 당신의 정성을 알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서.


앞으로도 자신의 일을 아름답게 해내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칭찬을 건넬 것이다. 당신이 최선을 다한 것을 나는 알고 있다고, 그런 당신의 태도가 오늘 내게 기쁨을 줬다고. 당신이 옳으니 가끔 외로워도 계속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가 줬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당신을 따라 나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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