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 의료원 차리는 미국의 간호사들
나는 미국에서 의료인들을 위한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다. 우리 회사에서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는 “의료는 팀 스포츠”라는 말이다.
Medicine is a team sport
직장에서 만나는 의사분들이 특히 이 말을 많이 한다. 미국 저명한 의료인들의 콘퍼런스나 학회에 가도 보통 이런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하는 이들이 많다.
사람들이 의술은 의사가 펼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사야말로 멀리서 보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여러 단계에서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상식이라고 잘 알면서도 우리는 종종 이렇게 의사 뒤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잊는다. 그러다 무슨 일이 생겨서 병원 신세를 좀 지는 날이 오면 그때서야 간호사분들이 또 다른 의료종사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
지난주에 한국에 온 이후 나를 꼭 만나고 싶다는 분이 있다고 해서 지인을 통해 며칠 전 뵙고 왔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예쁘장한 얼굴에 대학생처럼 앳된 미소를 가득하고 책은 아직 못 읽었지만 사인을 부탁한다며 내 책을 가방에서 꺼낸다. 나와 눈만 마주처도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이 수줍은 아가씨는 지금은 응급실에서 2년째 일하는 간호사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그런데 지난주에 필리핀에 가서 미국 간호자격증을 취득하고 미국행을 준비 중이란다.
궁금한 것이 100가지다. 지금 현재 가장 큰 고민은 영어공부다. 영어공부를 한국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응급실을 그만두고 외국으로 언어연수나 워홀(워킹홀리데이)을 가야 하는지.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어떻게 영어공부를 했는지 왜 언어연수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지 한국에서 계속 일하면서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럿 상의했다.
이어지는 질문은 역시 지역에 관한 것이다. 어떤 주에 가면 세율이 가장 낮은지, 또는 연봉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날 수 있는지, 첫 직장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정말 이 아가씨, 알고 싶은 게 많다. 그래서 연락처를 교환하고 나중에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꼭 봬요!" 이렇게 말하고 이 분과 헤어져서 돌아오면서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나서 반갑기도 했지만 마음 한쪽이 슬쩍 아프기 시작했다.
실제로 미국 어느 병원에 가나 필리핀 간호사들이 정말 많다. 간호사가 아니라도 미국계 필리피노를 만나면 엄마나 사촌들 중 간호사로 일하는 가족의 리스트는 끝이 없다. 필리핀이 이렇게 미국의 간호사 양성국이 된 데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1899년에 일어난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그때부터 꾸준히 필리핀 간호학교에서 미국의 간호학교와 동일한 교육체계를 설립하고 간호사를 양성시켰다. 더불어 1990년대 초기부터는 간호학을 공부하고 싶은 필리피노는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이것을 Pensionado '팬시 오나도'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래서 필리핀에서는 오랫동안 미국으로 가고 싶으면 간호사가 되고, 또 간호사가 되면 미국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미국엔 필리핀 간호사가 넘쳐나고 그 결과로 필리핀에는 간호사 부족 현상이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5월 블룸버그지에서도 필리핀의 심각한 의료인 부족 현상을 지적했고 필리핀 내에서도 최근 어떻게 하면 필리핀에서 공부한 의료인들을 다른 나라에 빼앗기지 않을까 고민을 하고 있지만 큰 연봉 차이와 전반적인 낮은 의료인의 처우, 낙후된 의료 시설 등의 문제는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다들 궁금해하시는 연봉 이야기다. 미국 간호사 연봉은 2021년 조사에 따르면 $83,000 정도, 한화로 1억 천만 원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간호사 연봉은 이렇게 쉽게 한 숫자로 답을 하기가 좀 어렵다. 미국의 간호사는 경력, 학력 그리고 주마다의 자격증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리될 수 있어서 그렇다. 연봉도 연봉이지만 사실 미국으로 간호사들이 모여드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간호사 직업의 다양하고 전문적 분류가
미국 간호사 직업의 가장 큰 매력
미국 간호사는 경력과 학력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그래서 미국의 간호사들 중에는 높은 레벨로 오르기 위해 공부하는 분들이 많다. 미국에서는 3/4 근무제, 즉 근무를 3일 동안 12 시간하고 4일을 쉬는 근무제가 인기다. 이런 근무 형태를 선호하는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쉬는 4일 중 학교를 가거나 강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래는 미국 간호사 직급이다.
Certified Nursing Assistant (CNA) - 가장 초기 단계의 간호사. 고등학교 졸업 후 CNA과정을 마치고 주마다 시행하는 CNA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Licensed Practical Nurse (LPN) - 주에 따라 Licensed Vocational Nurse (LV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간호 자격증이 있는 간호사들로 보통 전문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이 직급에서 시작한다. 간호사들(RN)과 의사의 지도아래 일을 한다.
Registered Nurse (RN) - RN들은 보통 위의 LPNs, LVNs, and CNAs를 지도한다. RN이 되기 위해서는 4년제 대학에서 간호학(Bachelor of Science in Nursing)을 전공하던가 Associate of Science in Nursing 즉 간호학과 연계가 되는 전공을 요한다. 주마다 시행되는 RN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Advanced Practice Registered Nurse (APRN) - 미국에서는 이 직급부터 연봉이 엄청 올라간다. APRNs의 종류에는 전문 간호사(Certified Nurse Practitioners), 조산 간호사(Nurse Midwives), 마취 간호사(Certified Registered Nurse Anesthetists) 그리고 임상 간호사(Clinical Nurse Specialists)등이 있다. 이런 전문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RN으로 여러 해(최소 6 - 8년)를 일하다가 전공에 맞는 과정을 마쳐야 한다. 간호학 석사가 요구되기도 하고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당시에도 하고 있던 일이 총괄 관리등 높은 수준의 기술과 리더십을 요하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
Doctor of Nursing Practice (DNP) - 가장 높은 간호사의 단계다. 보통 간호학 Bachelor of Science in Nursing (BSN)을 전공하고 오랜 경력이 있거나 석사학위 Master of Science in Nursing (MSN)와 경력을 요한다.
연봉 측면에서 봤을 때 예를 들면, CRNA 즉 마취 전문 간호사의 경우 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연봉이 3억이 넘는다. 웬만한 의사보다 많이 받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미국에서 간호사들 중에는 처방을 하거나 처방전을 내리는 사람 그리고 개인 클리닉을 차리는 경우도 많다. 고위 간호사의 자격증을 따고 난 이후에는 전문 간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그래서 미국에서 간호사는 고소득 인력일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전문인력”이다.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호주도 역시 간호사는 오랫동안 환영하는 이민 1순위 대상이었다. 앞으로는 선진국들의 고령화, 여러 가지 의료 체계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 의료인들의 과중한 업무 등의 이유로 이런 현상은 더욱더 지속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간호사들을
우리는 어떻게 지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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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연봉 자료 출처 - https://nurseslabs.com/nurse-salary-2022/
대문은 Photo by Daniele D'Andreti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