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항버스에서 추접스럽게 우는 이유
예전에는 가끔 한국에 오면 가족과 친구들의 부러움이 조금이라도 느껴졌다. 새로움이 가득하고 영화에서나 보는 멋진 사람들이나 멋진 일이 있을 것만 같은 외국에서 사는 나를 부러워했었다. 요즘은 한국에 오면 많은 분들이 내 안부를 묻는다. 특히 샌프란시스코나 미국에 대한 좋지 않은 소식이 전 세계에 많이 전해지면서 미국에 살면서 유방암 검진은 제때 받는지,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은 정기적으로 받는지, "총 맞을 까봐 무서워서 밤에 다니기는 하니?" 이런 질문을 많이 듣는다.
예전에 엄마가 건강했을 때는 엄마가 미국을 방문하셔서 한국에 올 일이 별로 없었다. 엄마가 아픈 요즘은 특히 지난 3년 전쯤부터는 내가 한국에 가는데 그동안 변한 한국을 본 나의 쇼크는.. 정말 컸다.
한국은 지난 20년간 너무 아름다워지고 더 부유해진 것처럼 보인다. 특히 미국과 비교를 해서도 그런지 항상 멋지게 비싸 보이는 옷을 차려입고 다니는 사람들, 거리에 즐비한 번쩍거리는 큰 차량들, 고급스러운 음식점과 카페에서는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이다.
호주대사관에서 근무를 하던 그때의 광화문은 이제 아름다운 청계천을 끼고 지하도가 아닌 사람들이 활보를 할 수 있는 활짝 열린 광장이 되었고, 광장을 걸으면 문화와 품격이 묻어나는 궁전, 박물관까지 갈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대사관에 근무할 2000년대 초반에는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모시고 궁궐이나 박물관에 가면 사실 별 볼 일이 없었다. 요즘은 그런 곳에 가면 '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물론 한국에 사시는 분들이야 캘리포니아의 끝없이 펼쳐진 샌프란시스코와 LA를 둘러싼 해안선이나, 장엄한 요사미티 국립공원과 비교를 하며 '한국은 그래도 작지'라고 겸손해하실 수 있지만, 한국도 정말 아름답다. 요즘은 서울 어디를 가도 쾌적하고 잘 다듬어진 공원을 만날 수 있고 편리하고 깨끗한 공공시설과 이용하는 이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은 최근 한국을 일본보다 더 가고 싶은 나라로 만들었다.
내가 태어나서 27살까지 살아온 경기도 하남시는 예전의 시골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논두렁 밭두렁을 뚫고 지하철 5호선이 검단산 입구까지 들어왔고 스타필드 같은 대규모의 시설이 '정말 이곳이 하남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천을 따라 초록이 무성하고 아기자기하게 만들어놓은 돌다리가 있는 산책로들도 참 나에게는 놀라운 관경이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물안개를 쫓아 아침마다 열심히 걷는 어르신들, 굽이진 강길을 자전거로 활기차게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면 나야말로 멋진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외국에 살면서 한국에 자주 올 수 있는 팔자 좋은 인생을 사는 나는 사실 두 나라의 좋은 점을 다 누리고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자유롭고 편하게 일을 하는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편리하고 익숙한 한국에서 일 년에 서너 달 정도를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으니 사실 남들이 부러워할 만도 하다.
그런데 왜 공항에 가는 길에서는 나는 연상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미국에서 한국 가는 길에는 미국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슬프고, 한국에서 미국행을 타러 가는 길에는 평생 이렇게 ‘손님’처럼 가족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슬픔과 미안함에 또 청승을 떤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난 이제 이방인이다.
아무리 십여 년을 살고 세금을 왕창 가져다줘도 미국은 ‘내 나라’라는 생각이 아직은 안 든다. 얼마를 이곳에 있어야 내 나라 같은 생각이 들까? 미국에 내려서 공항에서 이민심사원의 ‘Welcome Home!’이라는 인사는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낯설다.
언어도 그렇다. 영어도 한국어도 이제는 완벽하지가 않다. 한국어는 모국어지만 요즘은 어디 가서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예전에는 한국말 잘 못하는 교포들, 참 이해가 안 가고 일부러 '못하는 척'하는 건 줄 알았는데 실제로 한국어를 미국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다 보니 내 머릿속은 대화가 복잡해지면 영어와 한국어 서랍을 계속해서 열어젖히고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는데 집중을 하느라 대화의 흐름을 놓치는 때가 종종 있다.
영어로 꿈을 꾸고, 영어로 먼저 생각을 해서 한국어로 번역을 해서 나오는 내 말은 이제 내가 들어도 어법이 맞지 않고 어색함이 돈다. 왜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꿈을 꾸는지, 생각을 먼저 영어로 하는지 의아해하실지 모르지만 그건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오랫동안 해온 훈련의 결과다.
지난주 하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삼삼오오 학생들이 몰려와서 묻는 질문에는 어떻게 하면 외국에서 취업을 할 수 있는지 특히 개발자가 돼서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많았다. 특히 이번에 한국에 와서 내 책 때문인지 외국생활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물론 색다른 경험, 새로운 세계, 좀 더 큰 세상에 나가고 싶어 하는 포부와 그들의 꿈들은 지지한다. 나도 다시 인생을 살라고 해도 똑같은 길을 다시 택할 것이다. 이것저것 경험을 통해 배운 외국에서의 노하우를 줄줄 나열하면서 내 마음속에 꽁꽁 싸매놓은 표현하기 어려운 '평생 이방인'으로 사는 슬픔, 외로움, 고립감 그리고 가끔 느닫없이 밀려오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외국인이 되면 타지에서 원하는 것 - 그것이 성공이든, 돈이든 사랑이든, 이루고 나서도 평생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된다. 그나마 얻은 게 돈이나 성공이면 나중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하기 쉬울 수도 있지만, 혹시 타지에서 가족이 생기거나, 아니면 연인이나 친구 또는 반려동물이라도 생기면 이런 고민은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즉 한쪽이 포기되는 상황에 놓이기 십상이다.
이제 외국을, 또 다른 세상을 도전하는 많은 분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참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이 외국인으로 사는 또 다른 면이라는 거, 공항 가는 버스에서 추접스럽게 연상 눈물, 콧물을 옷소매로 훔치며 글을 쓰는 이유라는 거 슬쩍 말해주고 싶었다.
대문은 Photo by Rocker St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