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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현 May 06. 2024

선배는 어떤 사람인가요?

 길 잃은 그대에게 좋은 선배란 무엇인가 고민한 나의 답변

'또 미친놈이 미친놈 했네' 와이프가 직장에서 겪은 일을 듣고 난 뒤 내가 한 말이었다. 나는 와이프랑 같은 직종에서 근무를 하는데 장소는 다르지만 같은 직종에 있다 보니 와이프가 겪는 일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워낙 바닥이 좁아서 와이프를 괴롭히는 사람 또한 내가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인데 이 바닥에서 입김이 좀 있다는 사람으로 유명한 선배다. 와이프가 이 일을 한 지 10년이 되었고 그래도 사무실에서 일을 못하는 평가를 받는 수준은 아닌데 아무래도 이 선배와의 관계가 너무 힘든 모양이다.(역시 사회생활은 사람이 제일 힘든 일이고 그중에 가장 힘든 건 선배와 후배와의 관계다.)


'선배라 하면 무릇 후배의 사랑과 존경을 먹고사는 존재'라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그런지 내가 초임시절 그렇게 미쳤다고 생각하는 미친놈은 없었다. 근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정상인 범주에 있던 선배들도 하나씩 미친놈의 범주에 들어가는 일이 생겼다. 내가 이상해진 것인지 저 사람들이 이상해진 것인지 고민도 해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몇 번이나 주변에 자문을 구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변해버린 선배를 탓하는 의견과 나를 미친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이때 나의 의견에 공감하는 사람은 그 선배보다 후배들이었고 반발하는 사람은 그 선배보다 선배들인 사람이었다.


내가 그 선배를 이상하게 본 가장 큰 이유는 일방적인 의사소통이다. 우리가 일을 하다 보면 의견을 나누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눌 일이 적어지고 일방적인 지시나 통보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후배가 있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험담을 하고 다녔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는데 처음에는 어쩔지 몰라 걱정을 했지만 지금은 많이 덤덤해졌다. 시간이 지나며 나 역시 선배의 입장이 되어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기도 했고 많은 실수를 하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그 선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선배라 하면 무릇'의 개념 또한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선배라 하면 무릇'은 선배들의 험담이나 평가로부터 흔들리지 않게 나를 지켜주는 주문이며 후배를 훌륭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나 역시 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나만의 신념이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상사, 선배, 후배, 동기 등 사회생활을 하며 많은 종류의 사람을 만나지만 높은 확률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존재는 '선배'다. 후배도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이지만 사회 초년생일 때 서러움은 정말 말도 못 할 서러움이므로 '어떤 선배'와 함께 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모든 직장인들은 멋지고 좋은 선배를 꿈꾸며 좋은 선배는 아니라도 최소한 밥값은 하는 직장인이 되길 원한다. '선배라 하면 무릇'은 '밥값은 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생각이 시작점이었다. 내가 아무리 사람 좋은 선배가 된들 결국 사회는 일 잘하는 사람이 최고다. 이러한 이유로 '선배라 하면 무릇 밥값은 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밥값은 하자'라고 마음먹었다면 밥값은 해야 하니 일을 처리하는 스킬이 뛰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본인의 위치와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데(자신이 중간 관리자라면 중간관리자가 하는 일과 역할을 파악해야 하며 이것은 다른 실무자와 결재권자들에게도 공통으로 적용된다.) 만약 자신이 조직에서 맡은 역할이 다른 조직 내 같은 역할과 하는 일이나 업무강도, 처리방법이 다르다면 두 가지를 의심해야 하는데, 당신의 조직이 정상이 아니거나 당신이 정상이 아님을 의심해야 한다. 이것은 밥값이 아니라 그냥 외상 중이다. 그리고 밥값은 했다고 생각한다면 일을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해라.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 높은 확률로 당신은 뒤를 돌아볼지 모르는 경주마와 같다. 당신을 평가하고 또 기억하는 사람은 당신보다 일할 시간이 짧은 선배가 아니라 후배다. 그리고 그 후배는 당신보다 일에 대한 경력도, 지식도 짧은 사람들이며 아직도 당신이 일을 모르는 사람에게 왜 친절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당신의 후배들은 일을 배우는 동안 높은 확률로 당신을 썩 좋은 상사로 마음속 깊이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의 지식을 이용해 업무에 대해 지시를 못하거나 설명을 못한다면 설명과 지시를 하는 사람의 부족함을 먼저 탓해야 한다. 당신의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라. 아무리 똑똑한 스승도 제자 한 명 육성하지 못한다면 스승 개인은 똑똑한 사람일지 모르나 스승으로의 능력은 바닥이나 마찬가지다. 같은 이유로 당신이 일을 모르고 못한다고 욕을 하는 후배들이 그렇기 욕을 먹는 것은 결국 가르친 당신 탓이다. 그리고 일을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해졌다면 마지막으로 당신은 후배의 그늘에 가려질 준비를 하길 바란다. 당신이 아무리 뛰어나도 언제까지 뛰어날 수 없다. 그리고 당신은 모르는 멋진 후배들은 언제나 당신의 자리를 대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비록 눈에 차지 않고 부족하더라도 언제까지 당신이 최고의 자리에 있을 수 없는 법이다. 그리고 아직 내가 내려갈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평생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모든 사회는 일정성분비의 법칙이 적용되므로 나를 대체할 위인이 없다는 생각은 그냥 조금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자기 합리화이다. 앞서 말한 '선배라면 무릇'은 지금 나보다 선배를 배척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선배는 선배로서 대접을 해야 하고 후배 역시 후배로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일을 잘하고 나의 위치를 알고 후배를 위한 자리를 내어 준다는 마음은 하루아침에 생기기 힘들다. 우선 내가 현재 일을 처리하는 스킬이 뛰어난지 모르고 또 뛰어나다고 한들 잘하는지 못하는지에 대한 불신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일을 잘 처리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그 처리를 매끄럽고 세련되게 처리하며 그 진행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돌발상황 또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한다. 일을 잘하는 스킬은 결국 일을 알아야 한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해야 하는 일을 명확하게 알고 수행하는 것은 스킬을 익히는 과정과 함께 진행이 되는데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 위치에 알맞은 일을 배워야 그 일을 온전히 다 배울 수 있고 다음 단계의 일을 하더라도 연결이 빨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이즈음이면 자신의 후임이 생길 것인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너무 성급하게 모두 알려주려 하지 말고 최대한 친절하게 이해를 시키며 알려줘야 한다. 앞서 말했든 후배가 일을 못한다고 욕을 하는 것은 '나는 잘 낫지만 얘가 모자라기 때문에 나는 못 가르치지 않아!'라는 주장과 같다. 결국 제자는 문제가 없다. 부족한 스승이 문제일 뿐. 옛말에 '스승만 한 제자 없다'는 말이 왜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라며 일을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하길 바란다. 적어도 가르치는 기술이 안 좋으면 친절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당신도 많은 후배가 생길 것이고 어느덧 커리어의 정점을 찍을 것이다. 당신을 따르는 후배들도 많을 것이고 회사에서 어느 정도 인정도 받고 있을 것이라 보는데 이 시기가 되면 물러날 준비도 서서히 해야 한다. 어떤 출구전략을 세웠는지 역시 선배로서의 역할이다. 만남과 헤어짐의 명언 중 '마지막이 좋아야 끝이 좋다'라는 말을 그냥 하는 말이 아니듯 자신만의 출구전략을 잘 세워 후배의 앞을 열어준다면 당신의 마지막은 다른 선배들과 다르다고 후배들은 생각할 것이다. 근데 사실 일부만 실천해도 이미 당신은 평균이상이다. 걱정 마라.


내가 초임시절에 만난 팀장님은 우리 업계에선 일을 잘하는 분이셨다. 소방수 같은 위치였는데 일을 잘 알고 경험도 많으셔서 문제가 있는 부서를 다니시며 문제를 해결하셨다. 근데 애석하게도 늘 승진에서 누락이 되셨는데 속이 많이 상하실 법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부끄럽지만 나는 일을 잘하는 직원이 아니었는데 내가 실수를 해도 팀장님은 큰소리 한번 내시는 일이 없었다. 부서장이 뭐라고 하셔도 내색 한번 안 하셨고 내가 모르는 일은 최대한 이해를 시키려 노력하셨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또 발령을 받아 가셨고 승진을 하신 뒤 부서장으로 근무하신 후 후배들에게 눈칫밥 먹기 싫다며 이른 시기에 퇴직을 하셨다. 그리고 그 팀장님과 헤어진 후 만나게 된 팀장님은 이전의 팀장님과 많이 달랐는데 우선 일을 잘하는 점에서는 비슷했지만 자신의 역할을 아는 것과 모르는 사람에 대한 친절함은 이전의 팀장님과 반대였다. 일을 처리하는데 너무 많은 권한을 사용했고 그 결과 다른 부서에서 많은 민원이 들어오게 되었다. 문제는 그 민원을 이해하지 못했고 부서장의 의견보다는 자신의 의견대로 일을 처리했다. 부서 내 직원들은 해당 팀장의 눈치를 보기 바빴고 부서장 역시 해당 팀장과 일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리고 조그만 문제라도 터지는 날은 해당 직원에게 온갖 인격모독적 발언과 고성과 욕설 섞인 질타가 날아갔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은 안 그래도 눈치를 봐야 하는 가운데 더 주눅 들어 일을 차일피일 미루는 지경에 일렀다. 이 팀장은 결국 자신의 잘못으로 해임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후 이 직종의 다른 회사에 재취업을 성공하여 이전에 함께 일한 후배들에게 도와달라며 연락을 한다고 한다. 이 두 선배를 겪은 내가 왜 선배로서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직장인이자 사회인이다. 그리고 모두의 가슴속에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도 있을 것이고 스스로 자신은 훌륭한 직장인이자 사회인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를 평가하는 대상은 현재의 우리도 아니고 나보다 앞선 세대도 아니다. 우리는 후배의 냉정한 평가에 따라 정의되고 기억된다. 그리고 우리를 평가한 후배들 역시 언젠가 자신의 후배들에게 평가받고 기억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나의 역할은 마우 중요하다. '선배라면 무릇 이리해야지'라는 기준을 가지고 후배들에게 멋진 선배가 된다면 후배들 역시 자신만의 기준으로 지금보다 더 멋진 선배가 될 것이다. 이 사슬과 같은 관계에서 멋진 사슬로  남는 것이 가장 멋진 경우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선배라면 무릇 멋져야 하며 당신도 나도 멋있어지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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