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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승렬 Apr 30. 2021

첫사랑의 그녀가 또 나타났다

오랜만에 길게 자며 꾼 꿈

오후 4시 반 이후 매일 나의 일과는 같다. 어린이집, 유치원 두 곳에서 아이들을 픽업해 놀이터에서 한 시간 가량 놀다 들어와 먹이고 놀리다 씻기고 재운다. 그럼 대략 10시쯤이다. 물론 재우다 같이 잠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애들 방에서 나오는 퇴근 시간은 밤 11시 전후가 된다.


이 시간에 나오면 늘 고민스럽다. 뭐라도 하다 자야 할까. 아님 바로 침대에 몸을 붙일까. 그냥 자기엔 나 자신에게 뭔가 죄스런, 가정주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감정. 보통 책상에 앉아 뭐든 시작하는데 정신 차려보면 어느덧 새벽 3시다. 이렇게 늦게 자면 다음 날이 너무 힘들고 괴롭다. 며칠을 이래 보내면 정말이지 물 먹은 미역처럼 쳐진다. 그래서 어제는 아이들 방에서 나오자마자 그냥 침대에 몸을 던졌다. 덕분인지 모처럼 꽤 길게 잤다. 다만 아주 힘겨운 꿈을 꿨다. 꿈에 네가 또 나왔다.


여기서의 너는 나의 네가 아니다. 그러니까, 나의 아내가 아닌 나의 첫사랑이다. 그녀는 왜 여태껏 아직까지도 내 꿈에 나올까. 이제 무려 20년 가까이 된 그 일인데.


내 첫사랑에 대해 글을 써 본 적은 단언컨대 없다. 처음이다. 아내가 있었기에 밖으로 내뱉기 매우 어려운 주제였다. 또 내 주변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나의 첫사랑에 대해 잘 알고 있다. 9년 넘게 만나다 헤어진 사이. 그것도 안 좋게 헤어진 케이스다. 그러니 일종의 금기어처럼 다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아내와는 농담처럼 내 첫사랑에 대해 장난을 치기도 했다. ‘왜? 오빠는 한번 갔다 온 남자잖아? 10년을 만났는데’라는 식으로. 내가 먼저 첫사랑 얘길 하는 건 죄였지만 아내가 내게 던지는 건 저항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그저 슬라임처럼 흘러내리며 그 화살 자국을 덮고 ‘그렇지 하하 미안해’ 하는 게 내 몫이었다.


첫사랑의 그녀는 내가 유독 힘든 날 대단히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내 꿈에 나타난다. 1년에 두 세번 쯤 매년 꼬박 벌어지는 일이다. 이별의 반복이다. 버려지는 감정이다. 그 상처가 여태껏 내 마음 나무의 뿌리 어딘가에, 겉으로 보이진 않지만 엉키고 꼬여있는거다. 버림받고 혼자가 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늘 내 안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어찌 보면 현실에서 아내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게 됨으로, 이 옛 이별의 사건이 반복됐다고 내가 인식하는 것도 같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 첫사랑에 버림받는 꿈을 꾸지.


떠난 건 아내지만 아내가 나를 버린 건 아니다. 하지만 무의식의 나는 버림받았다 인지한다. 그렇기에 상황적으로 힘든 이 시기에 아내가 아닌 상처를 준 이전의 그 사람이 내게 소중한 이의 모습으로 나타나 내게 또 이별을 선고한다. 불안하게 매달려도 소용이 없다. 그 태연함이 여전히 생생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간이 그렇게나 지났는데. 그렇다고 그 사람은 또 무슨 죄인가. 아무리 내 꿈이라도.


사랑했던 이에게 이별을 선고받는 건 나이 국적 시기 불문이다. 그저 아프다. 아픈 자리는 아문 것처럼 보여도 완전히 낫진 않나 보다. 겉보기에 깨끗하니 그 자리가 아팠던 곳이라는 건 나만 안다. 이걸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싶다. 여전히 답을 못 찾겠다. 그 오랜 시간 새로운 누군가와 그리 깊은 사랑을 나누었어도 여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숨어 있었으니.


아무튼 지난 13년 간의 금기어를 이렇게 써놓고 나니 조금은 후련하다. 좀 해소가 되면 더 이상 꿈엔 안 나오려나. 물론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을 그 사람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이렇게 써버리면 내 지인들은 다 알 테니. 미안해. 근데 뭐 너든, 니든, 이래 된 마당에 이 정도 글 쓰는 거 정도는 이해해주라. 이제 못 할 얘기가 뭐 있겠어.


흠.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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