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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승렬 May 25. 2021

사랑에 대하여

다시 설레는 순간이 올까

삶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하나 꼽으라 하면 내겐 단연코 사랑이다. 사랑.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단어만 입으로 읊조려도 가슴 한켠이 묵직하게 내려 앉는 듯, 피부에 닿았던, 호흡을 나눴던, 웃음을 섞었던 모든 순간의 장면들이 영화처럼 스쳐간다.


어쩌면 나는 두 가지를 쫓아 살아왔던 것 같다. 평생의 업으로 삼아야 할 나만의 일을 찾는 것과, 삶의 모든 것을 공유하며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내 사랑을 만나는 것.


미래도 없고 불안하기 짝이 없던 스물 네다섯의 어느 날들을 힘겹게 버티고 살아내다 너를 만났다. 몇날 며칠 밤을 새어가며 무슨 얘길 그렇게 했는지. 웃음은 번졌고 옆에 있지 않아도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두드렸다. 널 만난 첫 날 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길하며 울먹였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게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 때 우리 나이 고작 스물 다섯, 스물 둘이었다. 너는 깊은 눈으로 조용히 끄덕였다. 따뜻했다.


사랑을 만났다. 일주일 만에 우린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같이 유학을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사진, 너는 무대연출. 함께 할수 있는 일들도 있을 것 같았고,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요동쳤다. 뉴욕이던 빠리던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손끝이 살짝만 스쳐도 너의 마음이 느껴졌다. 사랑이었다. 뜨거웠다.


집안 사정으로 나는 갑작스레 취업을 결정했다. 너는 덩달아 유학을 포기하고 내 옆에 남았다. 나는 무언가를 포장해 알리는 일을 나의 업으로 삼았다. 너는 신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를 포장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게 됐다. 사진과 무대연출은 아니었지만, 꽃과 옷으로도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낮과 밤의 대화는 밤과 낮으로 뒤엉켰다. 우린 토요일이면 하루종일 섹스엔더시티를 보며 피자를 먹었다. 이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였다.


다 찾았다고 믿었다. 주어진 여정의 완벽한 동반자, 그리고 그와 같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 다른 건 없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두 시점에 아이들이 태어났다. 달라진 것도 없었다. 조금 늦춰졌을 뿐이라 믿었다. 곁에 두고 같이 잠들고 코 고는 소리에 심장이 느리게 걸었다. 꿈 결에 만나 사랑을 속삭이다 눈을 뜨면 니가 옆에 있었다. 눈썹이 살짝 덮인 예쁜 너의 눈을 고요히 바라보다 괜시리 코를 부비고 다시 잔다. 행복이란 단어론 미쳐 담지 못한다. 매일 더 사랑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들어주셨다. 같이 옆에서 그저 숨만 쉬게 해달라는 기도는 거둬가셨고.


...


작년 12월 이후. 나는 마치 다른 이의 삶을 산다. 그런 착각에 빠진다. 삶의 과제, 인생의 풀어야 할 숙제를 거의 다 마치고 조금 더 멋지게 꾸며볼까 고민하던 찰나, 답을 쓰던 종이가 찢어졌다. 새로운 종이를 꺼낸다. 점을 찍어놓고 멍하니 있다. 이전 답안지를 괜히 들춰본다. 흔적은 남아있다. 정답이 아닐뿐. 내려놓기가 힘들지만 찢어진 종이를 들고 더 이상 무엇하랴. 그걸 들고 있느라 펜도 못 잡는 건 남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니가 원하는 바도 아니다. 다시 손가락을 움직일 시간이다. 나는 너의 마음을 잘 안다.


여전하다. 내 인생의 화두. 가장 중요한 건 사랑. 그 뿐이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까. 누군가를 보며 설레는 마음이 생길까. 밤새 대화하고도 더 할 얘기가 남아 뒤척이는 날이 올까. 그저 꼬옥 안고 목덜미 안 쪽까지 코를 깊이 넣어 따뜻한 말을 건내고 널 닮은 꽃을 선물하고 싶은 에너지를 내 안에 가득 채울, 그런 시간이 내게 다시 올까.


사랑은 여전히 내게 가장 중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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