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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승렬 Jun 13. 2021

#정재형 님께 part.2

뒤늦게 받은 당신의 답장

"요새 아이들은 좀 어때요?"


그날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다. 그럼 난 '아이들은 생각보다 단단해요. 뭐 저보다 더 낫고요.' 정도로 슬쩍 마무리 짓고 넘기곤 한다. 실제로 나보다 나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렇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다는 사실, 거기서 오는 쇳덩이 같은 무게감이 있다. 그게 온몸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가끔 있다. 온유는 매일 오후 5시에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데 바로 앞이 놀이터다. 말 그대로 아이들의 '놀이터'인 그곳에서 또래 친구들은 자연스레 어울린다. 다만 여서 일곱쯤 되는 모든 아이들이 한날 동시에 각자의 엄마와 다같이 모이는 날은 거의 없는데 지난 금요일은 유독 그런 날이었다. 한 엄마가 돗자리와 장난감을 잔뜩 챙겨 왔다. 그래서 마치 다 같이 소풍이라도 온 듯 즐거운 풍경이 연출됐다. 다만 반복해서 들리는 한 단어가 계속 마음을 두드렸다. '엄마~', '엄마~' 아이들은 각자의 엄마를 마음껏 목놓아 불렀다. 그 때 마다 난 우리 아이들의 눈을 본다. 옆에 붙어 뭘 하든 칭찬도 해주고 토닥이고 웃게도 하지만, 나의 영역을 넘어선 순간이다. 부러움과 슬픔 섞인 감정이 차 올라 눈 밖으로 넘치기 전에 급히 다른 화제를 꺼낸다. 그날은 정말이지 힘든 날이었다.


그래도 많이 처지지 않았다. 참 단단한 아이들. 장난도 쳐 가며 집으로 올라왔는데 현관 앞에 우체국 택배 상자가 하나 있었다. 받는 분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보니 나한테 온 거네. 순간 내가 뭘 샀던가 싶지만 그런 기억은 없다. 어디서 보낸 건가 봤더니 보내는 분에 '안테나'라고 쓰여있다. 안테나? 안테나 뮤직은 아닐 거고. 그러고 보니 받는 분 지승렬 밑에 적혀 있는 내 핸드폰 번호도 매우 이상하다. 엥, 무려 내가 10년도 더 전에 쓰던 번혼데. 그럼에도 집 주소는 정확하고. 이게 뭔가 싶어 들어오자마자 상자를 뜯었다.


어.

어?


상자 안엔 시디가 한 장 들어있었다. 가수 정재형 님의 AVEC PIANO 앨범. 겉면에 사인으로 흘려 쓴 정재형 님의 이름은 조금 알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왼쪽 위에 적혀 있는 이름은 시디가 누구에게 보내진 건지 명확하게 쓰여있었다. '주효진 님'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안테나에서 나에게, 아니 효진이에게 정재형 님의 친필 사인 시디를 보내왔다. 어떻게 알고? 누가? 내 글을 읽은 건가? 내 지인이 전달했을까? 사연을 다 알고 보낸 걸까?


정신을 차려 다시 박스를 보니 보내는 분 '안테나' 밑에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다. 이미 눈물은 쏟아졌고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받았고 안테나 뮤직 정재형 님의 매니저님이라 하셨다. 제가 지승렬이란 사람인데요, 라고 했더니 너무 공손한,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말투로 혹시 다른 문제가 있으신 지 물어왔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제가 너무 놀라고 감사해서 그저 전화드렸는데요. 혹시 어떻게 알고 누구에게 부탁을 받아 이런 선물을 주신 걸까요?' 물었다. 상황은 전해 들어 알고 있고 자신은 가수 루시드폴님께 부탁을 받아 정재형 님에게 사인을 받고 보냈다고 하셨다. 머릿속이 또 복잡해졌다. 내게 루시드폴은 좋은 음악을 주시는, 한 때 많이 위로받은 음악을 만든 가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 루시드폴님은 어떻게 저를 아시는 걸까요?'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매니저님도 거기까진 모르시는 듯했다. 다만 난 어떻게든 누구에게라도 이 고마운 마음을 꼭 말로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말 죄송하고 번거로우시겠지만 혹시 어떻게 전달을 받으신 건지 알게 되신 건지 한 번만 알아봐 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흔쾌히 수락을 해주셨다. 그조차도 감사했다.


전화를 끊고 시디를 두 손으로 들었다. 또 뜨거운 것이 왈칵 올라왔다.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최근 한 달, 아니 그 이전의 한 달을 보내며 나는 내가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은 저렸지만 나는 그럼에도 살아가야 했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아빠이자 엄마, 그리고 지승렬로 살아야 했다. 그래서 애써 외면하며 나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한 달 전 무렵 방송사에서 우리에 대한 취재가 시작됐고, 이를 위해 나는 다시 너를 마주해야 했다. 자료로 쓰기 위한 영상을 넘기기 위해 너와 너의 목소리가 담긴 수백 개의 영상을 전부 다 뜯어봐야 했고, 풋풋했던 스물두 살부터 서른 다섯 우아한 너까지 13년 간의 기록이 담긴 수천 장의 사진들 보고, 그 사이 우리가 주고받은 수 십장의 편지를 읽어야 했다. 그러며 너를 잃은 나의 모습이 다시 현실로 찾아왔다. 매일 우울했고, 누군가와의 대화도 다시 어려워졌다. 아이러니하게 해야 할 일들은 더 늘었기에 잠은 더 줄었다. 그러며 몸이 무너졌다. 심한 감기가 찾아왔고, 운동을 하다 다리와 팔을 다쳤고, 눈 위 안 쪽 공간엔 물혹이 생겨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내 삶이 왜 이럴까. 화와 원망이 다시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시디는 너에게 보내진 거였지만 넌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을 다 보고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있겠지만. 이 시디는 결국 나에게 보내진 선물이었다.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이후 계속 있던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도 그러했을 텐데 내가 미쳐 인지하지 못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게, 나는 참 없다.


--


30분이나 지났을까, 정재형 님 매니저님이 전화를 주셨는데 내가 아이들을 챙기느라 받지 못했다. 곧 문자가 하나 왔다. 본인은 루시드폴님에게 연락을 받았고 루시드폴님은 오세현 님이란 분께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오세현이란 이름이 내 주소록에 있긴 하지만 연락을 하지 않은 지 15년은 된 듯하다. 그 친구가 맞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또 그럼에도 우리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10년여 전에 쓰던 핸드폰 번호로 적어 택배를 보냈으면서도 우리 집 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대체 누구일까. 아무리 고민해봐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 곳에, 이렇게 글을 써 그분을 찾고자 한다.


--


혹 오세현 님 본인이시던, 오세현 님 혹은 루시드폴 님께 저희의 사정을 전달해주신 분이 있으시다면 제게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댓글로 주셔도 되고 메일이든 뭐든 부탁드릴게요. 꼭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발단이 된 나의 글 '정재형 님께'

https://brunch.co.kr/@detailance/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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