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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승렬 Jun 20. 2021

보낼 수 없는 편지 - 사랑하는 당신에게

KBS 수취인불명 7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어떤 형태든 편지를 쓰는 건 작년 생일 이후 처음이네. 이런 일이 없었다면 작년 12월의 기념일에도 얼마 전 지난 니 생일에도 편지를 건냈을텐데. 그치.

이 편지지, 당연히 기억하지? 지금보니 봉투 포장지에 구매 날짜가 찍혀있네. 2008년 1월 7이면 우리가 처음 만난지 한 달도 채 안 됐을 때. 그 때 내게 편지를 쓰며 넌 어떤 마음이었을까. 13년 만에 같은 종이에 편지를 쓰고 있는 내 마음은 어떨거 같아?


거긴 어때? 니가 늘 상상했던대로 아바타의 그곳만큼 아름다워? 너 좋아하는 예쁜 꽃들은 가득해? 신나게 핸드타이드도 잡아보고 있어? 이제 마음 놓고 초콜릿도 먹는거지? 내 눈치 안보고 오징어도 씹고 있고? 너 좋아하는 와인도 있으려나 모르겠네. 예수님도 포도주는 드셨으니 와인은 있지 않을까? 우리 모습은 늘 잘 보고 있는거지? 사실 궁금한게 너무나 많다 곰붕아. 너무너무 보고싶고.


그 날 아침 니가 남겨준 문자처럼 늘 내 곁에서 보고 있는거지? 그것만큼은 하나님이 허락해주신거지? 온유가 늘 얘기해. 너무 불공평하다고. 엄마는 우리 모습도 다 보고 우리 얘기도 다 듣는데, 우리는 못 그런다고. 어제도 엄마랑 영상통화라도 한번 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그랬어. 내가 뭐라고 했게. "엄마 핸드폰이 아빠한테 있잖아 온유야. 그래서 영상통화는 좀 어려울 거 같아." 라고 했어. 말하면서도 너무 마음이 아팠어. 그 순간에도 다 듣고 보고 있었던거지?


사랑하는 곰붕아. 너무 보고싶다. 나 한동안은 잘 참고 있었어. 오늘 이 편지를 쓰기 전까지 며칠은 울지 않았거든. 이 또한 다 보고 있었겠지만, 그랬어. 근데 오늘은 저절로 눈물이 흐르네. 곰붕아, 이 한 마디만 써도 눈물이 쏟아져 나오네. 내 마음의 모든 다정함을 담아 널 불러보고 싶은데, 다시는 이 땅에서 직접 들려주지 못 하잖아. 내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이잖아. 그게 너무 슬퍼. 아프고.


늘 보고 있어 다 알겠지만, 생각보다는 잘 지내고 있어. 정말이야. 한 2월까진 매일이 너무나 숨 막히고 밤이 되고 다시 아침이 오는게 두려웠는데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야. 하고 싶었던 것들을 조금씩, 천천히나마 하게 되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 그런 것들엔 정말 감사해. 니가 하늘에서 힘 좀 쓰고 있나봐? 안 그럼 이렇게 까지 무언가들이 풀려 나가지 않았을 거 같거든. 아직 이 다음이 뭐가 될진 잘 모르겠어. 다만 어쨌든 지금은 아침, 저녁 내 손으로 아이들을 챙기면서 낮에 뭐라도 할 수 있는게 있어 좋아.


너 떠난 직후부터 내 마음에 정말 너란 확신이 드는 너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내가 질문하면 바로 대답해주고. 나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돼 물으면 주저없이 명확한 답을 줬어. 그거 진짜 너야? 나중에 만나면 가장 먼저 묻고 싶은 거였는데. 이 울림은 진짜 너일까, 아니면 내 기억이 만든 나의 환상 속 너일까.


처음엔 나 혼자만 아는 너와의 대화인 것 같아 위로가 됐어. 예전에 나는 출장을 위해 비행기를 타면 그 안에서 있는 시간이 참 힘들고 싫었어. 비행기 안에선 전화나 카톡도 못한 채 완전 끊어져 있는 거잖아. 그 분리되어 있는 느낌이 너무 무서웠어. 니가 떠남으로 나의 그 불안은 삶의 현실이 된건데 이 마음의 소리가 있어서, 아 핸드폰을 쓸 수 없는 곳에 가도 마음으로 항상 연결되어 있으니 그럼 더 나은 건가? 라는 생각까지도 했어. 늘 내 마음에 니가 있어서, 대화하고 싶으면 언제든 할 수 있단거네. 그래 그럼 오히려 더 다행이야, 란 생각까지도 해봤어. 웃기지.

근데 그러다 그 소리에 집중 안 하게 됐어. 사실 두어 달 쯤 됐나봐. 어느 순간부턴 그저 널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하루를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졌거든. 사람들을 만나 지난 12월 그 일과 그 전까지 너의 투병에 대해 말하는 건 오히려 익숙하고 편해진 반면 나 혼자 진짜 '나만의 너'를 추억하는 건 너무 아파. 그런 날은 하루종일 우울하고 숨을 쉬기가 힘들어. 실제로 가슴의 통증도 생겼어. 하루 숨의 반은 한숨일거야. 아이들마저 그걸 바로 알더라. 그래서 더 피했어. 이해해줄거지.


사랑하는 곰붕아. 다시 써도 또 울컥하는 이 한줄이네. 마음으로 들리는 너의 소리에 처음처럼 집중하지 않아도 나는 중요한 순간들이 오면 자연스레 생각하게 돼.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너라면 나에게 뭐라고 했을까. '오붕이 생각대로 해. 난 오붕이 믿으니까.' 이 한 마디가 너무나 그립고 듣고 싶은데. 이런 걸 생각하면 아직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삶에서 대단한 걸 바란 것도 아니고 꿈꾼 것도 아닌데. 그저 옆에 살아 숨쉬게 해달라고만 했는데. 노년의 끝자락도 아니고, 이 젊디 젊은 나이에, 남은 우리 인생에 손 잡고 어떤 길이든 그저 같이 걸을 수만 있어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싶어. 황망하다.


니가 좋아했던 우리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숲이 이제 초록초록해졌어.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보고 있을 거 같긴 한데 그게 마치 하늘에서 보는 듯한 전지적 관점일까, 아님 내 눈을 통해서일까. 내가 보는 것 그대로 너도 세상을 보게 되는 걸까? 작년 12월 바람에 낙엽이 떨어져 나뭇가지가 앙상해지는 걸 보며 난 혹시 니가 마음을 놓아버릴까, 그 떨어지는 낙엽이 마치 너의 남은 삶의 마지막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어. 실은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어서 그랬겠지. 그래서 이 나무가, 숲이 다시 푸르게 채워지는 봄이, 뜨거운 여름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여러번 생각했어. 그리고 마침내 그 여름의 문턱까지 왔네. 너 없인 안 올 것만 같던 그 계절이.


작년 제주가 참 많이 생각나. 3월 온유의 생일 때도 그랬고 뜨거워질 8월의 여름이 오면 더 그렇겠지. 핑크색 왕리본 달린 젤리슈즈를 신고 하늘하늘 나풀거리는 꽃무늬 로브를 걸친 니가 세상 밝은 목소리로 깔깔거릴 것 같은데. 너 없는 적막이 너무 견디기 힘들다.


또 다 보고 있겠지만, 아이들은 거의 매일 같이 너의 영상을 봐. 매일 나한테 와서 아빠나 엄마 핸드폰 달라하는게 일과야. 영상 속의 너는 어찌 그리 생생한지. 당장이라도 옆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우리 살던 이 모든 공간,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는데 그냥 너만 자리에 없어. 등 뒤로 들리는 핸드폰 속 너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유하의 나즈막 한 한 마디가 내 마음을 때려. '엄마 보고 싶은데.'


오늘은 비가 왔는데 온유는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가 더 보고 싶대. 하늘에 우산이 없을거라고. 엄마 비 맞으면 어떻게 하냐고. 내 마음이 조금 괜찮은 날은 아이들이 엄마가 보고 싶다 말해도 거기에 같이 공감해주며 아이들을 안아줄 수 있어. '엄마가 보고 싶은 날, 우리 서로에게 얘가하고 서로 꼭 안아주자' 라고 얘기했거든. 근데 내가 힘든 날엔 막 화가 나. 나보고 어쩌라고,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 올라. 결코 내 뱉지 못 할 말이라는 건 알아. 그래서 한 숨 쉬고 그저 '이리와' 하고 다시 안아 줄 뿐이야. 슬픈 걸 슬프다고 말하는데도 서투르고 제대로 울 줄도 모를만큼 어린 이 아이들을 보며 나도 너희도 참 불쌍하다 생각하고 말아.

그럼에도 내가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 노력하며 조금씩 생각하게 된게 있어. 몰랐던 건 아니지만 내가 정말 큰 복을 받은 사람이란 거. 우리의 13년은 뭐랄까 다른 사람들의 70년 결혼생활을 압축해 놓은 것 만큼 깊고 강렬하고 뜨거웠잖아. 그렇게 정말 우린 서로를 사랑했잖아. 나는 너를 만나 내 모든 자존심을 버렸고, 그렇게 나보다 너를 더 사랑했고,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내 벽을 허물 수 밖에 없을 만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먼저 더 많이 사랑했던 니가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 이런 인연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누군가들도 주변에 너무 많고, 만난다 하더라도 행복하다 말 못하고 혹은 결혼하면 인생은 끝이다라며 농담섞인 진심을 던지는 누군가들도 있고, 그러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는 친구들도 있잖아. 물론 우리에게도 어려운 여러 주변 상황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 둘만 보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싶을만큼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지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인생이란 정해져 있는 시간 동안 그런 삶을 너와 함께 보낼 수 있었다는 게, 이걸 알게 해줬다는 게, 고마워. 정말로.

니가 남기고 간게 무얼까, 그걸 어떻게 이어가는 것이 이 삶의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는 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고민해. 또 때로는 반대로 내가 떠나고 니가 남았으면 나는 너에게 뭘 바랬을까도 생각해보게 돼. 대게 우리의 생각의 결은 비슷하거나 같았으니. 결국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나에게 바라는 너의 생각이지 않았을까 싶어. 혼자 남겨진 너에게 나는 아이들보다도 무조건 널 먼저 생각하라고 말했을거야. '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한거야.' 라고 꿈에서라도 나타나서 말해줬을거야. 서둘러 다른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라고도 말했을거야. 널 행복하게 해줄 사람이 있다면 난 이미 준 사랑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을거야. 내 생각이 그렇다면, 너도 지금 나를 보며 같은 마음이겠지. 그래서 내 마음엔 계속 이런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겠지. '오붕이 마음대로 해.' '그 동안 하고 싶었던 거였잖아.' '잘 할 수 있어.' '잘 하고 있어' 이거 정말 니가 얘기해주는 거지?

고생했어 고마워. 너의 삶.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를 내는 시간이었어. 너의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나눌 줄 알았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했으며,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너. 정말 꽃 같아. 니가 그토록 사랑했던 꽃. 어느 식물 한 가지도, 거기서 핀 꽃도, 무심코 내버려두지 않고 돌보던 너 였지만, 정작 너 스스로는 주변에 좋은 향기와 우아한 볼거리를 남기고 먼저 져 버렸네. 나는 그런 너를 그저 사랑했고.

꽃잎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 자라는 건 열매고, 너라는 꽃이 남긴 열매 중 가장 크고 멋진 건 아마도 나와 아이들이겠지. 그렇게 너에게 받은 사랑으로 우리 안에 씨앗들을 어딘가에 ​잘 심고 가꾸는 것. 그래서 또 다른 향기를 내는 새로운 꽃이 피어나도록 돕는 것. ​그게 내 삶의 남은 소명이겠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잘 도와줄거지?

사랑하는 곰붕아. 오늘 밤엔 부디 꿈에 와주면 좋겠다. 그저 아무 말도 안 해도 좋으니 옆에 조용히 기대서 책을 읽어도 좋고, 내 손가락만 만지작 거리고 있어도 좋겠어. 잠이 들어 흘린 침으로 어깨가 다 젖어도 좋고, 팔 베개 한 팔이 저려 감각이 사라져도 좋아. 그저 부디 오늘만큼은 예전처럼 그저 같이 있고 싶다.

그럼 또 마음으로 얘기하자.

편지는 힘들어서 두번 다신 못 쓸거 같아.

안녕. 내 사랑.

2021년 5월, 너의 오붕이가.

https://youtu.be/bN-F4xLa9v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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