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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꽃 May 03. 2022

촌스럽다?

2022.05.03

2022년 4월 25일 6번째 회의를 했다. 

스티커에 들어갈 문구도 정해졌고, 루트임팩트 지원사업도 통과하고.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젠 디자인해서 (샘플을 내고 디자인 보완작업 후) 제작하고 창고살롱 레퍼런서 분들께 보내면 첫 번째 프로젝트는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제품 디자인이지만 디자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나뿐이고 내가 할 수 있다고 시작한 것이기에 나의 역할이 중요한 때가 된 것이다. 호기롭게 하고 싶다고 시작했지만 내게는 약점이 하나 있다. 디자인(시각화) 하는 것에 재능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디자인(디자인적 사고, 시각적인 즐거움)을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내가 10대였을 때 나의 꿈은 팬시점(ARTBOX) 사장님이었다. 예쁜 물건들을 매일 볼 수 있고, 새로운 제품을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문구류나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보는 것은 나의 행복이자 취미였다. 첫 회사를 힘들게 퇴사하고 소품을 만드는 작은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도 그런 꿈이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선망하던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을 소품에 덧입히는 업무였지만 내가 직접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었다. 하지만 회사의 문제로 나의 업무가 사라지게 되면서 나는 큰 방황을 해야 했다. 그때 결심했었다. '그럼, 내가 직접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자.'라고.

그렇게 난 삼성디자인학교(SADI) 제품 디자인과에 입학하게 된다. 제품 디자인과는 미술적 실기가 없었기에 입학은 가능했지만 그렇다고 미술적 재능이 필요 없었던 건 아니었다. 기본적인 미술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1학년 1학기. 어려웠지만 시각적으로 내 생각을 표현해 내는 것은 재미있고 즐거웠다. 너무나도 좋아하고 존경했던 교수님께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지만(칭찬이 듣고 싶어서 제일 열심히 했던 수업이었다.), 힘들게 과제를 하면서도 늘 행복했었다. 그 교수님의 크리틱(영어 critique에서 유래된 단어로, 교수와 학생들이 동참하여 과제 비평을 하는 시간을 이르는 말-출처:나무 위키)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학생 작품은 단조롭고 심심해요. 크리틱 해줄 게 없네요."

충격적인 말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조금은 상처가 되어 남아있기도 하다.) 그때 나의 과제(첫 번째 과제였다)는 완전 대칭형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내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사진 찍을 때나 어떤 구도를 잡아야 할 때는 이 말을 늘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은 대칭적인 것이 주는 안정감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적당히 필요에 의해 선택하며 적용하고 있다. 

그래도 다른 수업들에서는 인정을 받을 때도 있었기에 (물론, 시각적인 것보다 개념적인 것들에서) 행복한 기억이 더 많다.


본격적인 제품디자인 과정을 밟게 되면서, 조금씩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과정(트렌드 분석, 아이데이션)은 너무 재미있고 인정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시각화할 때는 늘 아쉬움이 남았다. 지금 돌이켜봤을 때 많이 부족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재능이 있었던 동기들을 보며 비교를 했던 것 같다. 거기에 제품디자인 교수님 중에 가장 존경하던(지금은 아니지만) 분께 "자네 디자인은 촌스럽단 말이야. 70년대 제품을 보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더 자신감을 잃었던 것 같다. (지금 글로 쓰면서 이게 그렇게 상처가 될 말인가? 하는 의구심은 들지만, 모든 상처는 주관적인 거니까.)



스티커 디자인을 하면서 '촌스럽다.'는 이 단어가 계속 나를 괴롭혔다. 

'시각적인 기준이 높아져 버린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레퍼런서 분들이 별로라고 하면 어쩌지.'

'"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에요."라는 말을 듣고 싶은데.'

이런 마음이 들수록 내가 왜 이 일을 벌였는지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괜히 설레발은 쳐서, 일만 크게 만들어놓고. 기대감만 키워놓고 실망만 주면 어쩌지.' 


걱정이 많고, 인정 욕구가 많은 나는 '책임감 있게 해내야 한다.'라는 부담감까지 얹어져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렇게 혼자 만의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창고살롱 3.5시즌 소모임 [아티스트 웨이:아티스트 웨이 책을 함께 읽으며 매주 일요일 새벽 6시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으로 읽고 있는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서 지금의 내 모습을 표현한 구절을 만났다.


애써 만든 작품이 스승으로부터 한마디로 졸작이라든지, 장래성이 없다든지, 재능의 한계를 느꼈다든지, 재능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비판을 들었다고 하자. 지극히 개인적이고 모호한 이런 비판은 학대와 다를 바 없다. 그런 비판의 도마에 오른 사람은 심한 수치심을 느끼고 자신을 형편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자신은 쓸데없이 헛수고만 하는 바보라며 자학하기까지 할 것이다.                                                                                               - P228. 아티스트 웨이 / 줄리아 카메론 지음 -


책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6살 딸아이가 자기는 그림을 못 그린다고 하면서 시작조차 안 하려고 할 때마다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리면 돼. 넌 아직 배워가는 과정이라 자꾸 그리다 보면 네가 원하는 것을 그릴 수 있게 돼."라고 말해주면서, 난 왜 나 자신에겐 너그럽지 못했을까. 

아이가 그림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할 때도 "좋고 싫음은 주관적이라 모두가 다 좋다고 할 순 없어. 네가 마음에 들면 된 거야."라고 말해주면서 나는 모두를 만족시키고 싶어 했다.

물론, 디자인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상업적인 영역이라 창작미술과는 다를 수 있다.   


"이 패배가 나에게 무엇을 주려 하는 것일까? 내 작품의 어디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대답에 당신은 아마 깜짝 놀라며 자유로워질 것이다.                               -P235 아티스트 웨이 -
창조성이 막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독하게 걱정에 몰두하는 증세가 있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소한 단계들을 하나씩 밟아가는 고역을 치르기보다는 가끔씩 일어나는 깜짝 놀랄만한 도약을 좋아한다. 
단계를 밟는다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을 도구 삼아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P247 아티스트 웨이 -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디자인 시안을 업체에 넘긴 상태이다. 그리고 샘플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내 기준에 100% 만족스러운 결과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시작했고 단계를 밟았으며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했다. 그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어떠하던지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촌스럽다'는 단어는 내 안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말로 인해 멈추지는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나는 다시 시작한다. 

능력이 출중한 많은 디자이너들을 보며 좌절하겠지만,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부족한 것은 협업하고 배워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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