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다녀간지 벌써 2주가 지났다. 그동안 타이페이의 하늘은 온통 흐렸다. 그녀가 떠나고 난 뒤의 공허함과 더불어 많은 말썽들이 있었다. 지구 어디에서건 오래 머물다 보면 말썽도 나고 고장도 나기 마련이다. 내 마음에, 인간 관계에, 일상에, 생활 곳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으레 만들어지는 세계의 균열을 누군가는 권태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슬럼프라고 한다. 누군가는 매너리즘이라고도 한다. 혹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났다고 말한다. 오래 머물다 보면 보이는 허물, 사소한 마찰들이 모여 완전히 패여버린 곳에 남는 자국, 크고 작은 갈등과 몇 차례의 실망은 으레 그런 균열들을 만든다.
친구가 다녀가고 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딱 2주가 그런 시간이었다. 12시가 지난 신데렐라처럼 타이페이의 하루하루는 시시해졌다. 흐린 하늘처럼 흐리기만 한 날들이었달까.
이렇게 권태가 찾아온 도시의 이방인에게 필요한것은 새로운 마음가짐이다. 다시금 방 청소를 살뜰히 하고, 다이어리를 펼쳐 어제와 오늘, 내일을 살피고, 끼니를 챙기는, 다시 일상을 복원하고 도시를 바라보는 눈에 생기를 되찾아줄 마음가짐.
누군가에게는 정신승리에 불과하겠지만 새로운 마음먹기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그리고 멋있지 않은가? 마음먹기 하나로 세상 전부가 바뀔 수 있다는게. 적어도 내 세상 하나만큼은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마법사가 된다는게.
오늘은 새로운 마음먹기에 효과적인 방법 하나를 알아냈다. 그것은 바로 취사선택!
21세기의 사람들은 여러모로 취사선택에 능하다. 정보화 시대에서 필요한 정보만을 쏙쏙 골라내고, 소셜미디어에는 가장 반짝거리는 사진과 게시물만을 업로드한다.
문득 새로운 마음먹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순간을 취사선택해, 정교하게 가꾸어 업로드하는 소셜미디어처럼 마음을 먹어보는 것이다! 내 마음에 흘러들어온 무수한 생각들 - 불안, 부질없음, 혐오, 걱정, 무기력 - 중에 도시 생활에 필요한 감정들을 취사선택하는 것이지!
오늘 기분은 내가 정해, 나는 행복으로 할래. 라는퍽 유명한 문구가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함께 크게 유행하는 것을 보았었다. 그 때는 나 역시 정신승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실행에 옮겨보니 꽤 효과있는 방법이었다.
취사선택법을 써먹으니 그래도 일상이 서서히 복구가 되어간다. 모든 것이 가라앉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내 새로운 마음먹기에 보탬이 되고 싶은 건지 오랜만에 타이베이의 하늘도 맑았다. 오랜만에 만난 화창한 타이베이는 비가 오던 타이베이와 완전히 다른 도시같다. 날씨도 취사선택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일의 타이베이도 맑았으면 좋겠다. 아니, 타이베이가 맑지 않더라도 내 마음이 괜찮았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도록 내일의 마음도 잘 먹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