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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신영 Mar 31. 2019

책 만들기

시작이 반, 마지막 5%가 그 반

    책을 만들고 있다. 막연하게, 어렴풋이 생각만 하던 작업... 김병완 작가님의 저자되기 수업 22기를 수강한 일이 2015년 12월, 수강 마지막 날  '인생을 그리는 만화' 의 기획서를 200여개 출판사에 보냈고 다섯 곳의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계약서를 메일로 보내주신 곳도 있었다. 그러나 왠지 막막했고 막상 글을 쓰려니 잘되지 않았다. 생활이 우선이었으니 단순히 기획서만으로는 책 한 권이 나올 수 있을리 만무했다.

    2016년부터 브런치 작가로 글을 올리고, 에이블뉴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매주 1편 정도의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다양한 분야의 에세이, 굳이 이름붙이자면 그냥 생활에세이만은 아닌 조금은 특정된 분야의 에세이라고나 할까. 관심사에 대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모으니 브런치 라는 공간의 매거진이 적당한 공간이 되어주었고 매거진에 주제별로 글을 올리게 되었다.

    적잖이 모아진 글, 하나의 매거진에 모인 글이 50여개가 되었다. 2016년 3월부터 피아노학교를 다니며 음악을 공부하며 느끼던 것, 2017년 1월부터 생긴 교회문화센터에서 토요일에 피아노 강사일을 하던 중에  느끼던 소회와 일화를 틈틈이 적은 글이었다.  글을 적으며 공부내용과 심경을 정리하면서  내 스스로  공부도 되고 마음의 정리정돈도 되니, 어쩌면 글을 써온 일이 올해 그 어려운 피아노학교를 졸업하는 일에도  큰 힘이 된 것 같다.

    

   3년 전 첫 출판기획서를 만든 후, 출판사 편집장님을 서너분 만났었는데 글이 50여 개 정도가 되면 책을 한 권 만들 수 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집에 와 서가에 몇몇 책들의 목차를 보니 과연 그러했다. 40여 편 정도로 구성된 책도 많았다.

   설 연휴를 보내면서 브런치에 올렸던 'Playing the piano' 매거진의 글들을 주욱 긁어모아 하나의 파일로 만들어보았다. 우선 순서없이 올렸던 글들을 비슷한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목차를 만들고, 글씨크기와 제목, 그림 배치 등을 조금씩 조정하였다. 이 작업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듯 했고 그래서 미루어두었던 것인데, 인내심을 발휘하여 하룻밤 꼬박 새워 겨우 해냈다. 그리고 을지로 킨코스에 가서 제본을 2부 정도 했다. 사실은 제본도 바로 한 것이 아니고 2월 초에 파일을 만들어 둔 것을, 2월 중순 경 사무실 일로 근처에 갔다가 킨코스가 보여 인쇄하게 된 것이다. A4용지로 약 190페이지 정도 되었다.


    글을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볼 때와, 그것을 모아 워드나 한글 파일로 볼 때, 또 그 내용을 인쇄하여 한 권의 종이로 된 형태로 볼 때는 그 느낌이 각각 달랐다. 이 과정 하나 하나가 사실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안 해본 일, 귀찮은 일,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무형의, 온라인 상으로만 존재했던 나의 글 50여 개가,  인쇄물로, 제목을 가진 한 권의 책으로 내 손에 쥐어졌다.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용기를 냈다. 2015년 12월, 최초의 출간기획서를 출판사에 보냈을 때는 동기들 6명이 함께였고 김병완 멘토님이 계셨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없이 나 혼자였다. 물론 브런치 작가신청을 할 때에도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 신청을 할 때도 혼자였지만, 출판사에 다시 노크하는 일은 오랜만이기에 용기가 필요했다. 다만 이번에는 출간기획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글 50여 개가 있기에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내 글과 성향이 맞으리라 생각되는 10여곳의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다행히 한 곳에서 연락이 왔고 대표님을 만나 계약을 진행했다. 계약서를 쓰면서 책 판형에 대해 배웠고 3월 초 연휴기간을 이용하여 다시 그에 맞게 내 글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한글파일에서 4×6 판의 사이즈로 가로 세로 를 정하고 글을 정리하니  280페이지가 나왔다. 프린트 올데이 라는 24시간 제본소를 알게되어 제본을 맡겼더니, 세상 예쁜 책으로 만들어져 나왔다.

첫번째 개인제본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표지

    출판사에서는 책 디자인 두 개와 인쇄용 수정판을 보내왔다. 예상했지만, 책 디자인은 생각보다 교재 느낌, 다소 올드한 느낌이 들었다. 최근 직장동료가 미술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집에 있던 미술관련 책들을 스무권 정도 빌려준 일이 2월, 관심이 많은 줄은 알고 있었는데 직접 그리기도 하는지 물어보니 그리기도 한다고 한다.  혹시 하고 책을 보여주니 다음날 두 개의 표지를 뚝딱 그려왔다. 갤럭시 노트로 그렸다고 하여 그 순발력과 기지,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정말 마음에 들었고 그 친구 스스로도 뿌듯해하니,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게 해준 듯 하여 나도 기분이 좋았다.

동료가 그려준 책표지

   그래서 이 새로운 책표지로 프린트 올데이에 제본을 부탁했더니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 보내주셨다.

두번째 개인제본

    이제 마무리 작업들이 남았다. 정말... 마지막 마무리 5%가 남았다. 세상 중요한 5% 이다.  오타를 찾아 정리해야하고 내용에 일부 인용사진과 글들이 있어 그 출처에 컨펌을 받아야한다. 사용이 어렵다고 하면 과감히 글을 빼려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그냥 나는 그만둘까 말까 고민을 하며 정체중이다.  

    어머니께 한 권 드리고 회사 친한 동기들과 동료들에게 몇 권 보내고, 학교의 교수님들께 몇 권 보냈다. 그냥 이 정도에서 만족해도 되지 않을까. 저렇게 나 혼자 제본해 보관해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데... 책 한 권은 이렇게 만드는구나 라는 경험 하나 배웠는데... 굳이 더 나아가야할 필요가 있을까.

   앞으로 진행할 몇 가지 일들이 여태까지보다 더 섬세하고 디테일한 부분일 것이라는 귀찮은 마음이 스물스물 밀려 들어온다. 글을 쓰고 올리면서 이미 수십번 퇴고했던 글을 앞으로 여러 번 더 읽어보아야할 지도 모르고,  영국왕립음악원에 컨펌을 받아도 몇몇 악보의 사진은 쓰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면 다른 예시를 들어야할지도 모르고 아예 글을 빼야할지도 모르겠다. 책이 그리 많이 읽히지 않는다면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잘 읽히게 되고 그래서 인용에 대한 컨펌을 받지 않았던 내용들의 권리를 갖고있는 이들이 글이 인용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면 상당히 파장이 클지도 모르니 사전에 다 체크를 받아야한다. 많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이 정도로 만족하고 그만둘까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일에 시작이 반, 95%를 하고 난 뒤 나머지 5%가 그 반이라고 하는가보다.


  그 동안 하기 싫던 일,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싶던 일, 하지만 여기까지는 온 일...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다보니, 예서 포기하기엔 조금, 아니 많이 아깝다 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래서, 조금만 더 힘 내어보기로 할까 한다.


    일요일, 상우를 교회 소망부에 보내고 교회의 기도실에서 홀로 감사기도 드리며 지나온 날들을 정리해본다. 그리고 조용히 말씀올린다.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저와 함께 해주시기를...


   다시 교정본을 꼼꼼히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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