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가 퀵을 낳았다.
임신을 해서 불편한 점에 대해 순위를 매겨보자면
오토바이를 못 타는 것이 단연코, 무조건, 압도적 1순위다.
20대 중후반부터 타기 시작한 오토바이는 나의 가장 꾸준한 취미 생활 중 하나인데
단순한 취미뿐 아니라 생활 전반야에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교통수단… 동반자… 보물 1호… 자유의 상징… 돈 먹는 기계…
아무튼 무엇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애증의 대상이다.
물론 ‘증’ 보다는 ‘애’가 크다.
오토바이가 가진 여러 매력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자유로움, 기동성이다.
마음만 먹으면 (웬만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것.
궁금하면 어떻게든 가야 하고, 봐야 되는 급한 성격과 너무나 찰떡이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에
아빠는 엄마를 '택배'라고 불렀다.
퇴근 후 아빠는 "택배야~"라고 하며 집에 들어왔는데
간혹 집에 엄마가 없을 때는 전화를 걸어 "택배야 또 어디 나갔니~"라고 하곤 했다.
어른들은 그 별명을 듣고 자주 웃었지만 어린 나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지금은 엄마가 삶의 공백이 생길 때마다 어딘가를 발발발발- 돌아다녔다는 것을 떠올리며
그때 아빠가 별명을 참 잘 지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빠와 나는 '집 나간 손택배'를 만나기 위해 집 앞서서 골목 끝을 한참 바라보곤 했다.
노을이 지고 이 집 저 집에서 밥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골목 끝에서부터 비닐봉지를 잔뜩 들고 힘차게 걷는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택배 엄마가 낳고 기른 나는
그보다 한 단계 진화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을,
또 그 밖의 곳들을 누비며 살고 있다.
택배가 퀵을 낳은 셈이랄까.
오토바이를 탄다는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서
‘위험하지 않아요? 부모님도 아세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우리 부모님이라고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쏘다니는 나를 보며 엄마 아빠는
'너는 참 사는 것 같이 산다.'
라고 했다.
약간의 걱정과 한숨, 부러움이 뒤섞인 이 말들의 뒤로
살아있으나 죽은 것 같이 살았던 엄마 아빠의 시간들이 지나간다.
살아있음을 너무 유난스럽게 느끼며 사는 나는 마음이 약간 불편해진다.
그래도 역시 사는 것 같이 살아야 한다.
오토바이를 탈 때 나는 사는 것 같이 산다.
그 자체로도 즐거운 이동 수단인데 오토바이가 데려가는 세상은 훨씬 즐거워서 고맙고 기특하다.
지하철의 속도, 버스의 속도가 아닌 나의 속도로, 가고 싶은 길을 찾아서 골라서 갈 수 있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절절하게
사는 것 같이 살게 된다.
나는 계속 달리고 싶을 때 달리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추며 그렇게 사는 것 같이 살고 싶다.
그리고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유전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나의 연구 결과.
임신을 했지만 집 근처 친구네, 교회를 갈 때는 여전히 가끔 스쿠터를 탄다.
어차피 배가 더 불러오고, 날씨가 추워지면 탈 수 없겠지만
가끔 짧은 라이딩으로도 체기가 내려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