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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r 23. 2023

우리 가족의 첫 자동차

작년 여름 아빠는 38년 동안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아빠는 환갑을 맞이했다.


환갑 잔치를 구상하면서, 환갑 잔치에 사용할 영상을 내가 만들기로 했다. 환갑 잔치 2주 전에 아빠의 퇴임을 축하할 겸 사진도 가지러 갈 겸 울산에 내려갔다. 장롱 안에도 신발장 안에도 사진 앨범이 여러 권 꽂혀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부터 받았던 표창장, 성적표 같은 것들까지. 그 때는 제대로 된 카메라도 없었고, 형편이 넉넉하지도 않았는데 아빠는 어릴 때부터 나를 데리고 놀러다니면서 사진도 많이 찍고, 앨범으로도 많이 남겨놨었다. 지금이라면 매일 육아 인스타그램을 올리는 부모들처럼, 아빠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몰래 사진을 찍어서 가져가야 하니까 사진을 넘기는 손놀림은 분주하면서도 눈은 메어있는 기분이었다. 기억은 나지 않는 사진 속 어린시절부터. 기억이 희미하게, 또렷하게 남아있는 기억들까지. 그렇게 우리 가족의 연대기가 넘어가는 와중에 한 사진에 마음이 시큰거렸다.



내가 열살, 열한살 정도 무렵에 우리 가족에게 처음으로 차가 생긴 날.

차 앞에서 네 가족이 모여서 찍은 사진. 


그 전까지 아빠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었고, 가끔 뒷자리에 태워주기도 했었다. 언젠가 동네 병원에 다녀오던 날. 누가 자전거를 훔쳐갔다. 자전거가 없어졌기 때문인지, 마침 차가 필요했던 때였는지 그러고 몇주 뒤에 대우자동차에서 나온 르망 중고차가 우리 가족의 첫 차가 되었다.


차가 처음 온 여름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빠는 나와 동생을 불러서, 앞좌석에 태워줬었다. 어디를 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차에 시동을 켜고 에어컨을 틀어주며 대우자동차가 에어컨은 가장 잘 만든다고 해주었던 기억. 그 때 앞좌석에서 나오던 에어컨 바람의 냉기가 지금도 손가락에 묻어 있는 느낌이다. 우리 가족에게도 차가 생겼다는 기쁨때문이었을지, 에어컨 때문인지, 아빠도 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젊고 건강하기 때문이었을지, 어째서 그 순간이 기억에 또렷이 남았는지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땐, 빨리 어른도 되고 여러 가지를 더 가지게 되면 조금 더 기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때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게 된 지금 그리운 건 그때의 순간들이다.


르망 중고차가 첫 차가 된 이후로 10년 정도 지나서 아빠는 처음으로 소나타 자동차를 신차로 구매했다. 그리고 동생과 엄마의 출퇴근 용으로 아빠가 비상금을 털어서 모닝도 사게 되면서, 우리집은 2개의 차를 가지게 되었다. 우스개소리로 우리 집이 차를 두 대나 가지게 되다니, 중산층 같은 걸이라고 했던 게 기억 난다.


그리고 다시 소나타 자동차를 탄 지 벌써 15년이 되었고 아빠도 엄마도 은퇴를 하면서, 2개의 자동차는 유지하기가 힘들다면서 자동차 한 대를 우리집에 보내주기로 했다. 왜 미안하신지는 모르겠지만 새 차를 선물로 주고 싶었는데, 그럴 형편은 안 되어서 미안하다고 한다. 자동차 정비 맡기고 손수 세차를 하고, 다이소에서 차량용 스티커도 사서 차를 서울로 보낸 아빠가 고맙고 귀여웠다. 그렇게 모닝이 얼마 전 서울로 왔다. 아마 태어날 우리 아이에게는 첫 차가 될 것 같다. 


30대가 되고 아내가 임신을 하고나서는, 더 자주 나의 나이와 그때 아빠의 나이를 가끔 대조해보고는 한다. 우리 가족이 첫 자동차가 생겼을 때가 열살, 열한살 정도 무렵이었으니까 그때 아빠 나이가 아마 36살, 37살. 지금 내 나이 정도. 네 가족의 가장. 그 때는 아빠가 한없이 커보이고 어른처럼 보였는데. 아빠도 그냥 지금의 나처럼 여전히 철이 조금 없고, 불안감이 가득한 30대 남자였을 뿐이었겠구나. 참 쉽지 않았겠구나. 아빠보다 많은 혜택을 받고 살아온 나는 당연히 아빠보다는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빠가 살아온 것처럼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아이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빠와의 추억을 기억하면서 살아가게 해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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