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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r 10. 2020

무지개 다리를 건넌 팡팡이에게

3월인데도 요 며칠 날씨가 추웠다.

보일러를 한참 동안 틀어서인지 공기가 너무 답답해 창문을 잠깐 열었다. 금방 찬 공기가 들어온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골목의 여러가지 소리들도 방으로 들어온다.


고양이의 앙칼진 울음소리도 방으로 들어온다. 발정난 고양이의 울음소리. 가끔 사람의 울부짖음처럼 들리기도 하는 특유의 앙칼진 소리.


팡팡이를 데리고 온 지 5개월 쯤 됐을 때였나, 팡팡이도 창문에 올라가 비슷하게 울부짖었었다. 이곳저곳 중성화 수술 비용을 알아봤는데, 병원마다 비용이 조금씩 달랐다. 그 중 가장 저렴한 병원은 "도그 OO" 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의 강아지 전문 병원이었다. 강아지 전문 병원이라고 하니까 혹시 고양이는 수술을 잘 하지 못하다던가 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조금 들었다. 그래도 저렴하니까 그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했다. 수술 후, 병원에서 집으로 데리고 온 날 마취에서 깨어 비틀거리다 토를 하는 팡팡이를 보며 눈물이 날뻔 했던 기억이 있다. 혹시, 강아지 전문 병원에서 수술 시켜서 그랬던 건 아닐까 싶어서.


비슷한 이유로 팡팡이에게는 주로 동네 홈플러스에서 파는 고양이 사료를 사서 먹였었다. 가끔 인터넷에서 조금 더 비싼 사료를 주문배송하기도 했는데, 만원 대의 그 사료가 저렴하고 합리적인 사료라고 생각했다. 팡팡이는 뭐든 다 잘먹는 고양이였다.


그런 우리 집에도 병원에서 파는 가장 비싼 로얄 캐닌 사료가 하나 있다. 거의 새 것이나 다름없는데 전체에서 7알에서 10알 정도만 빼고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팡팡이가 지방 간 판정을 받고 이틀 정도 지났을 때, 더 좋은 사료는 먹을까해서 사료를 사고 손에 몇 알을 꺼내어 입가에 대어줬다. 스스로 먹을 의지를 잃어버린다는 게 병의 가장 안 좋은 점이었다. 그래도 첫 하루는 2~3알씩 두 번 정도 스스로 입을 대고 씹었었다. 곧 건강을 잘 회복하면 정말 비싸고 좋은 사료들만 먹여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팡팡이는 더 이상 사료를 먹을 수는 없는 몸이 되었다. 로얄캐닌은 유동식으로만 튜브로 몇 달 더 먹고서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팡팡이가 떠나고 액자만 남겨두고 모든 물건들을 방에서 정리했다. 그런데 가장 쉽게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던 사료는 여전히 장식장에 꽂혀 있다. 놓을 수 없던 마지막 미안함인지 이상하게 사료에는 손을 대지 못하겠다.


글을 계속 쓰는 와중에도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이따금 내 방으로 침입하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내 마음을 헤집고 나를 미치게 한다. 늘 먹던 그릇에 한 그릇만이라도 수북하게 쌓아서 마음 껏 먹는 걸 볼 수 있다면 좋았을텐데.


내가 그때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치료를 받게 했다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길러주고 신경 써줬다면 괜찮았을까. 이렇게 후회될 줄 알았다면, 되돌릴 수 없는 걸 처음부터 알았다면 좋았을텐데. 세상 대부분의 일은 그래도 만회할 조금의 기회가 늘 있었는데 죽음 앞에서는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마음만 아파온다.


떠나보내던 날 내가 그렇게 많이 울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처음 우리집에 데려왔을 때 깡마른 모습이 마음 아팠는데, 떠날 때도 깡마르고 고생하는 모습으로 떠나보내어 정말 마음이 아팠다. 주변에서 좋은 사람들이 많은 위로를 해줬다. 그런데 이상하게 "팡팡이는 행복했을꺼야"라는 말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정말 나와 행복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을 하며 더 목놓아 울었던 것 같다.


떠나보내고 일주일 뒤 절에 올라 가서 팡팡이의 명복을 빌며 기도를 드렸다. 절을 나서자마자 거짓말처럼 우리 팀 디자이너가 보낸 그림이 도착했다. 그래서 나는 이게 정말 팡팡이가 보낸 그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마음껏 뛰놀기를. 정말 고마웠어. 미안해. 그리고 행복하게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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