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회사와 외국계 회사의 차이점
그렇다. 올해 또! 이직을 했다. 1년 4개월 만이다.
다섯 번째 이직을 준비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회사가 코로나 19로 인해 중국 공장에서 생산이 한 동안 중단되면서 직간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대표로부터 판교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곧 다른 지역으로 이전을 할 것이며, 유일한 엔지니어마저 이번 신제품 출시가 끝나면 해고될 것이라는 직접(당사자 보다 먼저) 듣게 됐다. 대표 본인은 10여 년간 몸 담아온 기존 사업이 아닌 새로운 분야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떠날 때가 되었구나"
나를 나름 신임한다고 직원들 중 가장 먼저 말해준 거였지만,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전 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한 분야에서 전문성과 팬층이 두텁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핵심 직원을 자르고, 세일즈와 마케팅만 남긴다는 건 제품 자체의 업데이트와 지속적인 유지보수를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고, 마케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회사를 대신해 고객들에게 떳떳할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업무적인 성장과 보람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점점 더 기계적으로 일하게 됐다.
회사는 불안하고, 주도적으로 참여한 프로젝트들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나고, 믿음직스러운 동료가 떠나감에도 이 곳에 남아야 할까?
단순히 내 끈기가 부족한 걸까? 결국 어중간한 규모의 모든 회사가 다 이렇게 불안정한 거 아닐까?
잠시 고민했지만 ‘모’ 아니면 ‘도’라고 잃을 건 없기에 또다시 이직에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몇 주 동안 퇴근 후 새벽까지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면서 치열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현재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현재 몸 담고 있는 새로운 회사는 외국계 이커머스 회사다. 직원 수는 백여 명 정도로 내가 다녔던 곳들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회사마다 당연히 차이는 있겠지만, 기존에 다녔던 작은 회사, 스타트업들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외국계 회사의 차이점을 간단히 정리해보려고 한다.
개인주의적인 조직이란 이런 걸까?
스타트업에서 1인 마케터로 서비스, 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넓고 얕게 다양한 일들(홈페이지 제작, 서비스 소개 자료 제작, 언론 PR, 전시회 준비, 온라인 마케팅 등)에 관여해 왔다면, 여기서는 마케팅 팀의 소속으로 회사의 공식 콘텐츠 제작과 PR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업무의 폭이 줄어서 하나에 집중할 수 있고, 회사 전반의 생사(?)에 깊이 관여하지 않아도 되며, 내가 할 일만 잘하면 다른 팀의 직원들은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무엇보다 코로나 19로 몇 달간 (당연하게) 재택근무를 하면서 같은 팀이 아니라면 서로를 알아갈 기회가 적기도 했다.
내가 마음에 맞는 동료를 못 사귄 것일 수도 있지만^^; 메신저로도 거의 업무 관련 내용만 깔끔하게 주고받으며, 기존의 회사들과 비교했을 때 서로 간의 정(?)이나 으쌰 으쌰 하는 건 확실히 적다.
만약 사회 초년생이었다면 이런 부분들이 불만족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한창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동료들과 더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삼십 대의 나에게는 더 집중하고 싶은 가족이 생겼고, 마음을 나눌 확고한 친구들이 있다. 그래서 이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참 괜찮게 느껴진다.
업무는 더 챌린징
나는 꽤 '대행사'에 적합한 사람이다. 주어진 일들을 빠르게 처내는 걸 잘한다. 그래서 이 곳에서의 업무가 기존보다 더 빡세게 느껴진다. 여기서는 하나를 심도 있게 파야하다 보니 업무를 실행하기 전에 깊이 고민하고 분석해야 한다. 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공신력 있는 콘텐츠를 작성하다 보니 양보다 퀄리티가 훨씬 중요하다.
이건 사실 내 상사의 영향도 크다. 날카롭고 직설적이어서 자존심 상하고 상처 받을 때도 있지만 상사의 높은 기준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게 된다. 압박감이 심한만큼, 더 뾰족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회사를 대하는 마음의 변화
지금 회사도 결국 하나의 ‘지사'이기 때문에 안정이 보장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존 회사들보다는 상당히 안정적이다. 근무 강도는 상당히 높고, 퇴근 후에도 종종 업무 생각에 사로잡히지만 워라벨은 꽤 만족스럽게 지키고 있다.
무엇보다 회사 전반의 일들에 깊이 관여하고, 대표와 직접적으로 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다.
도전적인 환경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스타트업을 선택해 왔는데, 나는 사실 굉장히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여러 회사들을 경험하며 바뀐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적당히 챌린징 하지만 워라벨 괜찮고 견딜만한 생활을 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1년 뒤에는 또 어떻게 되어있을지 모르겠지만(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