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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ready Gold Nov 17. 2021

자주 직업을 바꾼 당신이라면 이해할, 구르는 돌의 고백

한 우물을 팠어야 했나? 왜 나는 맨날 이렇게 레벨 0에서 다시 시작이야

 '일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써야지!' 하며 개설한 브런치에서 마저  직업을 밝히지 않고 보니 너무 당연하게도 그러면 일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없다는  깨달았다. 어차피 소소한 계정........ 앞으로 마음껏 나의 커리어 TMI 펼쳐보려고 한다. 마음껏  이야기를 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대체 누가 궁금해할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나의 직업과 직업 변천사를 풀어놓아 본다.


축제와 맥주와 공연으로 가득 찬 이력서

#강연 페스티벌 기획자, #수제 맥주 마케터,#음악 페스티벌 및 BTL 기획, # K-POP 공연 기획자


프로필에도 적었지만 내 이력서는 요약하자면 오로지 축제, 맥주, 공연 이 3가지로 채워져 있다.


얼핏 보기에 꽤나 연관성이 깊고, 서로 밀접하게 엮여서 하는 일이 많기도 한 필드 언저리를 맴돌다 보니 이력서를 보고 나면 "음~ 그럴 만해" 싶기도 하지만 실상 실제 굴러다니고 있는 돌인 내 입장에서 저 필드 3개는 가까워 보여도 엄~~~~~~청 나게 다르다! 같은 거라면 푸른 색깔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은 하늘과 바다 정도로 다르다. (이 3가지 필드에 대해서 궁금하신 점이 있다거나, 필드 크로스를 고민하시는 분이 있으시다거나 하면 언제든 지 연락 주세요. 팔만대장경 st로 정보 제공 가능!)


물론 축제 만들면서 맥주 부스 한두 번 본 것 아니니 대~충은 알 것 같기도 하고, 맥주 마시면서 공연 안 봤던 것 아니니 또 대~충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서로의 위치를 바꿔보면 엄청나게 다른 것들 투성 이이다. 어찌 됐건 나는 크게 보면 비슷해 보이는 그 언저리에서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라 그때 그때 커리어를 망설임 없이 바꿔왔다. 딱히 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커리어가 버려진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었고, 당장 눈앞의 재미가 중요했기 때문에 한 필드에 오래 있는 어야만 해! 하는 생각도 딱히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 그때 재미있는 걸 찾아서 이직하는 나의 모습

을 지켜보는 미래의 내 모습



그렇게 이리저리 필드를 바꾸다가 어느새 30대 후반에 이르고 보니 아뿔싸! 어딜 가도 이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넘쳐날 뿐만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3년 정도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7-8년 정도...... 말하자면 "나 고인 물이오~" 하고 말해도 허세가 아니라 "정말 그렇네요!"라고 수긍할 정도의 한 필드 고인물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여기저기 둘러본 경험은 물론 자랑스럽지만, 필드란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고, 모든 실무는 경험으로부터 꽃 피기에 구르고 굴러 K-POP 필드에 안착한 지금은 굉장히 쫄리고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도 많다. 물론 축제를 준비하면서 만났던 다사다난한 관공서와 대관처, 공기관을 비롯해 온갖 특이한 관객들을 대했던 짬바로 어떻게든 겨우겨우 경험 없는 것은 막아가며 버텨내고 있긴 하지만 (막아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생각에 그칠 수도 있다. 이미 다 들켰을 수도) 후달릴 때가 찾아오면 과거의 선택에 대해서 의문을 깊게 가지게 될 때도 있다. "그때 계속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나?"

아니면

“이미 그 때 여기에 들어왔어야 했나?”


시간은 아무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고, 내가 이제야 이 필드에 와 있는 이유는 내 인생에 K-pop이라고는 H.O.T. (점찍어줘야 하는 거 클럽 에쵸티들이라면 알 거다) 오빠들이 마지막이었으며 그 이후의 나날들은 맥주 먹고 페스티벌 가서 노는 데 모두 바쳤으므로, 과거의 나에게 K-pop이 끼어들 자리가 1도 없는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방탄소년단도 2018년 연말에서야 알게 되었을 정도로 K-pop에는 관심이 없었다. (방탄소년단은 2016년부터 대상을 탔다….) 즉, 시간을 과거로 다시 돌려준다고 한들 그 당시에 내가 이 필드에 올 일은 없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나약해지면 비난할 대상을 탓하고, 그것은 심지어 미래에 이 업계에 종사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과거의 나에게 향하기도 하는 것이다. 치사하게도.


동년배의 친구들이 한 업계에서 진득하게 있던 결과로 직급을 달고 "내가 이 바닥 1N 년 짬바야!!"라고 당당하게 외치기도 하고, 꼰대질도 하는 모습을 마주하고 나면, 이 바닥과 저 바닥을 구르며 다니느라 이끼는커녕 짬도 묻을 새가 없었던 구르는 돌인 나는 나도 모르게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은, 밍숭맹숭한 나를 내려다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구보다 내 눈앞에 재밌어 보이는 게 소중한 사람이고, 그때마다 내 눈에 가장 재밌는 걸 선택해 온 것이 내가 가진 내 커리어의 유일한 자부심이기에, 나의 유일한 자랑이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내가 말이야~이리저리 굴러보니까 한 곳에 있는 돌보다 훨씬 낫더라~!

이런 결론이라면 너무 마음에 들겠지만, 새삼 구르는 돌로서 나를 의식하게 된 상황에서 단순히 그런 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세상 사 다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믿지만 왜 요즘 내겐 박힌 돌의 장점만 보이고, 구르는 돌의 장점은 안 보이는 것일까.

 LATE BLOOMER 일 것이라고 정신 승리하다가 번번이 실패하는 나의 모습.


구르는 돌로서 현타를 씨게 맞는 초겨울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늘 한 가지 다짐하는 게 있다.

다~ 나 (정신 승리) 하기 나름이니까, 뭐가 되었든 있는 순간만큼은 즐겁게 100% 즐기고 떠나야지.

언제까지 일에 대한 사랑이 지속될 줄 모르고, 나는 이 사랑이 멈추는 순간 보따리 싸서 떠날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아무 이유도 맥락도 없이 찾아와서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업계와의 순간은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다행히 2년 반 정도 구르고 있는 나의 4번째 챕터는 모르는 부분이 아직도 많아서 힘들지만 그래서 계속해 보아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 지점도 있다.

정신 승리에 실패하고 나면 늘 최종 마지막 끝판왕으로 보는 사진. 우야든동 꽃길  


나는 내 커리어가 최종적으로 위의 그림 같아졌으면 좋겠다. 렉 걸려서 에러로 만들어진 계단이면 뭐 어떤가. 중요한 건 에러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 여전히 주인공인 신데렐라를 궁전으로 이끄는 꽃길이며 걷기에도 아무 손색이 없는 길이라는 거다. 언젠가 나도 내 커리어를 돌아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커리어는 (나의 용량 부족으로 인해)

미친 듯이 렉이 걸렸으나,

그 모든 에러 하나하나가

궁전으로 향하는 계단이었다고.

우야든동 꽃길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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