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사심 높여주는 본사 출장

어쩌다 이직, 외국계 A to Z

by DK

벌써 3~4년 전 일이다.


그런데도 가끔 불쑥 떠오른다. 아마 그만큼 강렬했던 경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에 입사했다.


첫 출근부터 화상 회의가 일상이었다. 동료들의 얼굴은 노트북 화면 속 작은 네모 안에 있었고, 악수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사람들과 매일 영어로 일했다. 그렇게 1년 반이 흘렀다.


그리고 팬데믹이 조금씩 사그라들던 그 시기, 기회가 찾아왔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은 몇 년에 한 번씩 전 세계 팀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를 열어왔다. 이름하여 'Global Comms Summit'. 코로나로 2년 넘게 열리지 못했던 그 자리가, 드디어 다시 열렸다. 장소는 본사가 위치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였다. 당시 입사 2년 차였던 필자에게 그 자리에 함께할 기회가 주어졌다.


산호세에 위치한 넓은 캠퍼스에 본사 여러 건물 중 하나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에 걸쳐 있는 본사는, 내가 상상하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한국에서 '회사'라고 하면 으레 높은 빌딩 한 채를 떠올린다. 그런데 본사는 전혀 달랐다. 낮은 건물들이 넓은 부지 위에 여러 채 흩어져 있었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걸어서 이동했다. 회사라기보다는 하나의 빌리지, 마을 같았다.



처음 그 캠퍼스에 발을 디뎠을 때, 희열과 자부심이 동시에 올라왔다.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냥, 가슴이 찼다.


캠퍼스 한편에는 회사 로고가 새겨진 커다란 비석이 있었다. 관광지에 온 것도 아닌데, 동료들과 그 앞에서 수백 장의 셀카를 찍었다. 어색하지도, 유치하지도 않았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 회사에, 이 곳에 실제로 와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


본사 보도자료 뉴스룸에 나오던 그 로고 앞에서 수없이 찍은 사진 중 하나


더 뭉클했던 건 동료들의 얼굴을 처음으로 직접 마주한 순간이었다.


화면 속 네모 안에서만 보던 사람들이, 실제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했던 그 시절이었지만,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들도 이 순간을 오래 기다렸다는 것을.


찐하게 허그를 하고, 셀카를 찍고, 커피를 마시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밤을 새워가며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화상 회의에서 진지하게 발표하던 그 사람이, 알고 보니 이렇게 유쾌한 사람이었다. 언어도 문화도 달랐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 일해왔다는 사실이 그제야 온몸으로 느껴졌다.

큰 강당에 모여 수많은 대화, 토론, 세션 등이 이어지며 팀빌딩했던 시간


그리고 그 출장에서, 필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하나 생겼다.


나는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한다. 출장 전부터 계획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금문교를 자전거로 건너 소살리토까지 다녀오는 것. 미리 렌탈샵도 예약해 뒀을 만큼 개인적으로 기다렸던 라이딩이었다.


어느 저녁, 동료들과 하루를 마무리하다가 누군가 물었다. "내일 일정이 뭐야?"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자전거 빌려서 금문교 건너 소살리토 갔다 올 거라고.


그러자 돌아온 말, "같이 가도 돼?"


농담인 줄 알았다. 그리고 솔직히 그냥 잊었다.


다음 날 아침, 숙소 근처 블루보틀 카페에서 모였다.


아침을 먹으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오늘 너희 일정은?"


돌아온 대답은 짧고 명확했다.


"I will follow you"


그리고 나는 그제야 알아챘다. 세 명의 동료가 이미 운동복 차림으로 카페에 나와 있었다는 것을.


졸지에 나는 여행 가이드가 되었다. 하하.


내가 예약한 렌탈샵으로 동료 세 명을 데리고 갔다. 그들은 현장에서 자전거를 빌렸고, 나는 앞장서서 금문교를 향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금문교 위의 바람은 만만치 않았다. 동료 중 한 명은 바람에 휘청이며 꽤 고생을 했다. 그래도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다리 끝에 닿았다.


소살리토는 아름다웠다. 만을 따라 늘어선 집들, 조용한 항구, 시푸드 레스토랑에서 먹은 그날의 점심. 자전거를 타고 가다 멋진 풍경이 보이면 서서 함께 사진을 찍던 그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돌아올 때는 배에 자전거를 싣고 샌프란시스코 Bay 지역의 항구로 돌아왔다. 아무도 계획하지 않았던 하루였다.

본사 출장 기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샌프란시스코 투어 가이드로 등극!)


그날을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소속감' 그리고 '애사심'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화면 속 네모 안에서만 알던 동료가 2년 만에 처음 얼굴을 마주한 그 주에, 운동복을 입고 나타나 "I will follow you"라고 말하는 순간. 그 순간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생겼다.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건 단순한 계약 관계가 아니었다. 어떤 '연결'이었다. 그리고 그 연결은, 직접 만나야만 비로소 실감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외국계에 다닌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본사 출장의 기회가 돌아오는 건 아니다. 필자는 정말 운이 좋았다.


하지만 그 기회가 온다면, 망설이지 말고 가보길 바란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동료들에게 다음 날 일정을 한번 물어보길.


생각지도 못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3년이 지난 지금도, 필자는 그 다리 위의 바람과 "I will follow you"를 잊지 못한다.


소중했던 동료들과 떠나기 전 마지막 셀카를 남겼던 순간


살면서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아주 특별한 경험.

외국계에서 누릴 수 있는 큰 특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후로 아직 다시 전체 팀이 모이진 못하고 있지만 재회의 기쁨을 누릴 그날을 기대해 본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