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나를 무슨 생각으로 낳았을까?
"얼른 장가가서 애 낳아야지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우리 외할머니의 말씀이다. 나는 '네 그래야죠'라고 대충 대답했다. 결혼은 나도 하고 싶으니 그렇다 치지만 자식을 낳을지 안 낳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겠다. 어른들 마음으로는 자식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 자꾸 애를 낳으라고 말한다.
나이가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른들은 왜 그렇게 빨리 나를 결혼시키고 아이를 낳게 해서 가정을 꾸리게 만들려는 것일까? 내가 온전히 나로서 사회에서 올바르게 기능하고 있다면 충분할 터인데, 내가 '잘되는 것'이 왜 곧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되는 것일까?
그때는 단순히 '올드스쿨(Old school)'들의 낡은 사고방식으로 치부해버렸다. 그러나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의 나이를 지나며 나는 조금이나마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 조금씩 헤아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서른 살 때 나를 낳았다. 나는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나도 이제 나이가 먹을 만큼 먹었구나'라며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치기 어린 생각인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금도 내가 숙련할 것보다 새로 배워야 할 것이 더 많고 감정적으로도 성숙하지 못했는데 서른 살의 나는 얼마나 미완성의 인간이었던가. 그리고 그와 동일한 나이에 우리 엄마는 새 생명을 잉태하고 낳으셨다. 서른 살의 작고 어린 엄마에게 당신의 피를 반이나 물려받은 존재는 얼마나 큰 부담과 책임으로 다가왔을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시큰해진다.
박완서 선생께서는 나이에 대해 '요즘 사람 나이를 옛날 사람과 똑같이 쳐서는 안 되고, 살아온 햇수에 0.7을 곱하는 게 제 나이'라고 하셨다. 계산 법대로 하면 내 나이는 엄마의 22살과 같다. 30살과 22살, 엄마와 나의 나이가 같다고 가정했을 때, 엄마는 8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더 안고서 나를 낳은 것이다. 병원에서 막 해산한 몸을 일으켜 핏덩이인 나를 안은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 절로 숙연해진다.
리처드 도킨슨은 인간의 선택을 '이기적 유전자'에서 찾았다. 맛있는 식사를 먹고 건강을 관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나의 모든 행위가 이 땅에 나의 유전정보를 남기기 위해서라니, 단지 그뿐이라면 내 몸에 흐르는 것이 뜨거운 피가 아니라 차가운 액체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게다가 나의 유전자 반을 물려받은 자식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일탈이나 비행의 세계로 빠져들면 그 자괴감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다른 한 편으로는 엄마의 유전자를 내가 온전한 상태로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인지, 후대에 다른 '그릇'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좀 더 발전된 형태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걱정도 든다. 내가 엄마의 유전자를 잘 보존하고 업그레이드시켜서 내 자식에게 안전하게 양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엄마는 했을까?
엄마가 무슨 생각으로 나를 낳았는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