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일하면 안 되는 것일까?
“꿈이 뭐예요?” 혹은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요?”라는 질문은 어렸을 때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질문이다. 지금도 잊을만하면 그 질문은 형태를 바꾸어 내게 대답을 종용한다. ‘
‘앞으로 어떻게 할 거니?’, ‘결혼은?’, ‘집은 어디서 살거니?’, ‘이직은? 계속 그 일 할 거야?’ 등등.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혹은 그들 자신에게 물음을 던진다. 그만큼 많이 들어온 질문이지만 ‘꿈이 뭐야?’라고 묻는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자라면서 받은 교육 탓인지는 몰라도 다들 ‘꿈’이라고 하면 직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어떤 강박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 친구는 꿈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말이야, 일이 너무 하기 싫어. 은퇴하고 싶어 빨리. 돈 많이 벌어서 100억, 그래 100억만 있으면 돼. 100억 가지고 하루에 2~3시간만 일하고 나머지는 즐겁게 살고 싶어. 그게 내 꿈이야.”
꿈이라는 것을 굳이 단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 친구의 대답을 듣고 깨우쳤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백년해로하는 것이 꿈일 수도 있고, 죽기 전에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이 꿈일 수도 있다. 좋은 아빠, 좋은 엄마가 꿈일 수도 있고 매일 저녁 치킨 한 마리와 맥주 한 캔을 부담 없이 먹는 삶을 꿈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내 친구의 꿈은 ‘수중에 100억이 있어서 일을 안 하고 즐겁게 노는 삶’이 꿈인 것이다.
꿈=직업이라는 보편적인 관점에서 ‘일을 하지 않는 삶’을 꿈으로 삼는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곧 게으름, 나태, 빈곤, 무능력과 같은 단어들과 연결된다.
내 친구는 거기에 ‘100억’이라는 단어를 더했다. 단지 100억이라는 숫자를 더했을 뿐인데, 친구의 꿈은 게으름, 나태, 빈곤, 무능력과 같은 모습에서 건물주, 워라밸, 플렉스(flex), 행복과 같은 우리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삶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돈이 있으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만 10명 중 8명은 돈이 있으면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할 것 같다.(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당장 돈이 있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이 있으니 당장 그만둬 버리지는 않겠지만 새로 유입되는 일은 맡지 않고 기존의 일을 유지하다가 점차 줄여가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고 은퇴할 것이다. 아니면 친구의 말처럼 하루에 2~3시간 정도 노동을 취미의 일환으로 생각할지도.
혹자는 ‘돈이 행복을 정의하지는 않는다’는 최종병기를 꺼낼 수도 있겠다. 나도 그 말에 십분 동의한다. 돈이 행복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월든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에 대한 철학이 없이는 돈과 행복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자본이 굴러가는 사회에서 돈을 떼어놓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너무나 모순적이다.
그렇다면 노동은 어떨까?
나는 돈과 노동이야말로 분리가 가능한 부류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돈이라는 것은 물물교환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한 매개일 뿐이었다. '소로와 같은 철학을 가진 자급자족 사회'에서는 돈이라는 것이 지금처럼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 수 있다. 스스로 몸을 움직여 일용할 양식을 만들고, 필요한 부분만 다른 사람과의 교환에 의해 채우면 그만이다. 소로는 존 필드에게 '원하기만 하면 한두 시간 만에 노동이 아니라 오락을 즐기는 기분으로 이틀 동안 먹을 물고기를 잡거나 일주일 지내기에 충분한 돈을 벌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자 삶의 기준이다. 얼마큼 식사를 해야 만족하는지, 얼마만큼의 식량을 비축하면 안심이 되는지, 어느 정도 집과 자동차를 소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에 따라 필요한 돈이 달라지는 것이다. 필요한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은 노동을 해야 한다. 혹은 자본의 노동을 소유하거나.
소로는 '여러분은 병들 때에 대비하여 무언가를 저축해두기 위해 낡은 궤짝이나 벽장 뒤의 양말 속에, 또는 벽돌로 지은 은행에-장소가 어디든, 액수에 상관없이- 무언가를 챙겨두려다가 오히려 몸을 병들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참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현재의 행복과는 별개로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행의 싹이 더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 온 몸을 불태운다. 그것이 노동이든 주식이든 부동산이 든 간에, 종국에는 불에 타서 남는 것은 재밖에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우리가 삶의 기준을 조금 달리하면 어떻게 될까? 더 넓은 집과 더 좋은 차, 더 비싼 음식을 행복에 조건으로 다는 대신 재밌는 영화, 도서, 가족들과 해 질 녘에 한가로이 하는 산책 같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말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행복을 찾는 행위는 '작은 행복'이라 평가절하되고 '소확행'이라는 봉지에 담긴 채 버려진 땅 아래 묻혀버리고 말았다. '소확행'이 있던 자리는 '플렉스(Flex)'라는 이름이 자리를 꿰찼다.
물질과 정신, 이 두 가지를 또 나누는 것은 유치하다. 물질적인 것에서 오는 행복이 있고 정신적인 것에서 오는 행복이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이 두 가지의 균형이 지나치게 물질적인 것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이 정확한 비율로 이루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기약 없는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더 좋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원하는 시간만큼 일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원할 때 일하고 원치 않을 때는 쉴 수 있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회가 오려면 한 개인의 의식이 변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 사회 전체의 의식을 통으로 바꾸어버릴 만큼 거대한 사건이 필요한 것일까? 참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다만 한 가지 다짐하고 싶은 것은 만약 그런 사회가 개인의 의식변화에서 찾아올 수도 있으니 한 손 거드는 의미에서 지금 내 삶부터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살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