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렉스는 잘못이 없다.

by starka

“너 얼마 모았냐? 솔직하게.”


친구가 물었다.


“뭐 얼마나 모았겠냐. 다들 비슷비슷하게 모았겠지."


나는 얼버무리며 내 저축에 대한 관심을 '90년대생 전체의 저축'으로 확장시켰다.


"그렇겠지? 근데 진짜 답이 없다. 그냥 롤렉스나 살래?"


친구가 말했다.


"롤렉스 얼만데?"


"성골하면 데이저스트가 1100정도 피골하면 1400?"


부의 상징인 롤렉스가 물량이 풀리지 않아 사고 싶어도 못 사는 지경이다. 심지어 대기자가 많아 대기번호를 받고 매장에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구매 예정자들은 아침 일찍 매장에서 대기표를 받는 소위 '오픈런'을 하는데, 오픈런에 성공해도 매장에 어떤 매물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오픈런'에 성공해서 매장에 입장했을 때 원하는 매물이 있어서 구매했다, 그렇다면 이것을 '성골'이라고 부른다. '성골'에 실패해서 미개봉 새 제품이나 중고 제품을 프리미엄을 얹어 구매하는 것을 '피골'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금 이 프리미엄(피P)이 어마어마하다.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몇 천만 원까지 붙으니 '성골' 후 되팔기만 해도 그 차익이 직장인 월급은 우습다. 그러다 보니 '성골'의 의미가 퇴색된 요즘은 원하는 매물이 아니더라도 그저 롤렉스 매장에서 롤렉스 시계를 사기만 해도 '성골'이라고 부른다.

(*국내 정식 매장에서 구매한 롤렉스를 '성골', 해외 매장에서 사면 '진골' 프리미엄을 주고 사면 '피골'이라고 한다. 신라의 골품제를 빗댄 용어인데, 인터넷 용어다 보니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중고 롤렉스라도 인기 모델은 감가 따위 두렵지 않다



그래서, 롤렉스를 사면 내 인생이 조금 달라질까? 친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건 없겠지. 롤렉스를 찬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그 느낌만 느낄 수 있는 거니까. 그 느낌 덕에 더 동기를 받고 열심히 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건 있을 수 있겠지. 근데 롤렉스를, 아니 롤렉스가 아니더라도 그런 사치품을 안 산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냐? 그 돈 안 쓰고 모아도 몇 천이야. 그걸로 뭐하게? 어차피 집 못사. 집은 못 사지만 롤렉스는 살 수 있지. 둘 중 하나는 못하는데 하나는 할 수 있으면 그 할 수 있는 하나를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궤변이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철저한 궤변이다. 애초에 사치품을 사느냐 마느냐를 이분법적인 사고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집을 사느냐 롤렉스를 사느냐를 같은 선상에 올려놓는 것도. 더 나아가 친구의 말 저변에 깔려 있는 '집을 사지 못하면 어차피 모아봤자 가난한 인생'이라는, 사람의 일생을 성공과 실패 혹은 부자와 가난으로 나누는 것도 죄다 궤변이다. 하지만 내가 그 친구의 말을 듣고도 '그딴 소리는 집어치워!'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그 친구는 인생을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하고 자기 주관을 지키며 살아온 누구보다도 이분법적인 인간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친구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요즘 세태를 가로지르는 트렌드이고 나 역시도 그러한 트렌드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반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밀레니얼 세대', 'MZ세대' 등으로 불리고 있는 내 세대는 어떤 세대보다 한탕주의에 빠져있다. 부동산과 주식, 가상화폐의 폭등을 모두 지켜본 우리로서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노동의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만큼 자본의 위력은 강력하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떨어진 노동의 가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경제적 자유’라는 타이틀이다. ‘파이어족’, ‘부의 추월차선’, ‘건물주 되기’ 같은 제목들이 인터넷 상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다. 노동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격하시키면서 우리는 자본의 노동력과 인간의 노동력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밀레니얼 세대 평균 소득이 300만 원이라고 가정한다면 30일 기준으로 하루에 10만 원을 버는 셈이다. 만약 1000만 원의 1%를 매일 버는 자본구조가 있다고 치면 평균 소득을 버는 직장인의 노동력은 1000만 원 대비 효율이 현격하게 떨어진다. 돈은 지치지도 않고 자지도 않는다. 감정도 없다. 그에 비해 인간은 얼마나 부서지기 쉽고 나약한 존재인가.


돈과의 노동력 경쟁에서 패배한 우리들에게 흔히 말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사람들은 ‘40대에 은퇴하기’, ‘한 달에 부업으로 1000만 원 벌기’, ‘직장인 월급 모아 건물주 되기’ 같은 말들로 돈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법을 설파한다. 이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게임에 공략집이 있다는 소식은 매번 제자리를 반복하는 열정 잃은 게이머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다. 그렇게 그들을 믿고 따라간 사람은 자본주의 게임을 공략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시스템’을 구축한 사람들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편입된다. 남겨진 이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내 주변 친구들의 최대 관심사는 ‘돈’이다. 어떻게 하면 은행에서 1% 이자를 받는 ‘멍청한 짓’ 대신에 돈을 불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평생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모아 빨리 은퇴할 수 있을지 따위가 인생 최대 과제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왜 이렇게 ‘돈’, ‘돈’ 거리게 되었을까? 우리 부모 세대들도 돈에 민감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그래도 낭만이 있지 않았나 싶다.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치킨을 사 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사회생활을 해보니 그날따라 유난히 지치고 힘든 날에 자식새끼들 치킨이라도 하나 먹이고픈 아버지의 심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인터넷 글처럼 말이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렇게 고생하고 아끼고 운이 맞아떨어지면 서울에 집 한 채, 혹은 두 채는 마련할 수 있었다. 월급 모아서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세대였던 것이다.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가 손에 잡히는 마라톤을 뛰는 것과 목표가 보이지 않는 채 끊임없이 뛰어야 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 세대는 월급을 모아서 집을 사기란 영 불가능해져 버린 사회에 살고 있다.


누군가는 지금 이 시대를 보고 ‘단군 이래 돈 벌기 가장 좋은 시대’라고 말한다. 24시간 365일 내내 불이 꺼지지 않은 채 장사할 수 있는 온라인 점포와 공장과 직접 계약을 해 납품할 수 있는 1인 창업이 손쉽게 가능하다는 것이 그 근거다.


또 다른 누군가는 레버리지를 일으켜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면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논리는 인간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일하게 하라'는 것이다. 돈이 돈을 낳고 또 그 돈이 돈을 낳고의 무한 반복.


이 얘기를 듣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 모든 사람들이 다 돈을 많이 벌고 모두가 일을 안 하고 모두가 삐까번쩍한 집에서 살면 어떻게 되는 거지?'


모두가 기사 딸린 마이바흐에서 내려 손목에 찬 롤렉스, 아니 파텍필립으로 시간을 확인한 뒤 백화점에서 샤넬이니 구찌니 명품을 쓸어 담고 고급 양식당에 들어가서 최고급 스테이크와 함께 로마네 꽁띠를 마시며 '음 좋군'하는 모습이란.


나는 고개를 흔들며 상상을 지워냈다. 모두가 그렇게 잘 사는 세상이라면 마이바흐를 모는 기사 '따위'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할 테다. 거리의 쓰레기도 아무도 치우려 하지 않을 테고 정화조는 넘치다 못해 폭발할 지경일지도 모른다. 길거리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우고 신호 따위 무시하며 제한속도 이상으로 달리는 차를 아무도 제지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남의 집에 불이나도 ‘담 너머 불구경’에 그칠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에게 꼭 필요하지만 하기 싫은 일들은 서로에게 미뤄 둔 채 서서히 파멸로 치달을 것이다. 원래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그러니까 남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꼭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들의 기준에서 자신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이 사회가 돌아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살아갈 때 꼭 필요한 의식주 중 한 가지를 빼앗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우를 범하는 일인지 조금 더 먼 시각으로 바라보고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그들도 없다. 우리는 공생관계다. 한쪽이 사라지면 그 빈자리를 내가 메꿔야 한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그들이 한다면 그에 맞는 대우와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다른 사치품을 산다고 해서 그들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롤렉스는 아무 잘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