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노동에 대해 생각해보자
잘하는 일을 할까요, 하고 싶은 일을 할까요?
영화배우 허성태 씨는 남들의 선망을 받는 대기업 직원이었다. 당시 연봉 7000만 원을 받으며 근무했지만 배우의 꿈을 좇아 SBS '기적의 오디션'에 참가해 35세에 연기자로 데뷔했다. 그는 직장 8년 차를 넘어 9년 차를 채우지 못한 채 직장을 나왔다. 그는 그것을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보편적인 사람들이 원하는 대기업 자리를 박차고 나온 그의 수입은 얼마 되지 않았음이 뻔하다. 극단 공연부터 전전하며 지낸 그는 회사의 스트레스는 벗어났지만 생계의 문제가 찾아왔을 텐데,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가 행복했을까?
"싸다구를 맞고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허성태 씨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싸다구'를 맞고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 순간을 허성태 씨는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싸다구를 맞는 장면은 8년 동안 무명으로 지낸 허성태 씨가 영화 '밀정'으로 스크린에 데뷔했을 때다. 그의 행복이 그의 어머니에게도 전해졌을까, 배우의 길을 반대했던 어머니도 영화 '밀정'을 보고 그에게 '그동안 고생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잘하는 일 vs 하고 싶은 일은 속된 말로 '풀리지 않는 떡밥'이다. 인터넷에 수 없이 많은 같은 질문에 달린 댓글은 결국 두 가지로 수렴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전문성이 생기고 그것이 결국 돈이 된다'와 '잘하는 일을 해서 안정적으로 돈이 생기면 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가 그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애초에 분류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애초에 인간인 이상 '일'이라는 것이 하고 싶을 수가 없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아 일이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잘하는 일'에서 '잘하는'은 일에서의 성과가 뛰어난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과 같은 시간 일했을 때 양이나 질에서 보다 더 효율적일 때 우리는 '일을 잘한다'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에서 '하고 싶은'은 일보다도 일을 끝마쳤을 때 따라오는 성과적인 측면을 말한다. 어떤 행위에서 오는 행복감보다, 그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를 더 행복해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하다는 사람들은 결과에 대한 행복감이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그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마저도 마땅히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일'이라는 것이 스트레스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나 혼자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결과에서 오는 행복감 내지 만족감이 더 크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기꺼이 에너지로 치환하여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잘하는 일'은 어떨까? 잘하는 일은 대게 업무의 스킬적인 면을 말한다. '사람을 잘 대한다'든지 '셈이 빠르다'든지 '문서작업을 잘한다'든지. 이런 것은 숙련의 문제다. 결코 '하고 싶은 일'과 대등하거나 상위 개념일 수 없다.
'잘하는 일'을 지지하는 쪽은 이렇게 반문할 수 있겠다.
'하고 싶은 일이 곧 잘하는 일이 될 수 없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재능이 부족하면 절대적으로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것 또한 잘못된 전제에서 오는 오류라고 생각한다. 행복과 돈을 나눠서 생각하는 것이 모순이듯이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나누는 것도 모순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충분히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교수는 '꿈'을 명사로 설명하면 실패한 인생이 되기 쉽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나는 대학교수가 되고 싶어!'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대학교수가 되지 못하는 한, 절대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없다. 꿈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대학교수'가 되는 한 가지 길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선택할 수 있다. 행복의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역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회계업무를 잘하는데 복싱 선수가 되고 싶은 몸이 약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회계사 시험을 준비해서 회계사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부족한 재능을 행복한 노력으로 채워서 복싱 선수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인생의 정답은 없겠지만 내 의견은 이렇다.
'복싱계에서 회계업무를 하면서 복싱 선수로 데뷔를 하면 어떨까?'
우리가 종종 실수하는 것이 하나를 생각하면 그것만 생각하는 것이다. 때로는 단순한 것이 독이 된다. 사회는 복잡하고 복합적이다. 우리는 우리를 좀 더 복합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내가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상충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선입견이다.
나의 경우에도 그렇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아주 아주 유명한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26살의 나는 경제 신문사를 다녔는데,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글을 쓰기 것이 업이기는 했지만 전혀 소설과 동떨어진 팩트가 중요한 사실적인 글이었고, 매일 새벽에 출근하는 바람에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하루빨리 이 직장을 그만두고 내 소설을 써야 꿈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사했다.
퇴사 후 내가 얻은 큰 깨달음은 사람은 시간이 많다고 해서 그 시간을 온전히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시간은 나를 나태하게 만들었고 자꾸만 소설 쓰는 일을 뒤로 미루게 했다. 생활비는 떨어졌고, 회사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자영업을 시작했다. 소설 쓰는 일은 점점 더 뒤로 밀리게 됐다. 자영업을 하면서 회사보다는 스트레스가 덜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압박감은 여전했다.
그때 같이 일하던 내 멘토이자 동료가 내게 조언을 해주었다. '사람이 시간이 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해야 되고 하고 싶으면 시간을 내는 것'이라고. 정신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그랬다. 소설가가 되고 싶으면 소설을 쓰면 되는 것이고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내가 시간을 내서라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굳이 그. 것. 만 해야 된다는 법칙도 없는데 나는 직업적인 면에서만 내 꿈을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만 해야 한다'는 어떤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하루 12시간 일하면서 틈틈이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썼다. 하루에 한 장씩 원고지를 채울 때마다 내 삶은 '해냈다'는 충만감으로 차올랐고, 1년 정도 뒤에 브런치 독립출판으로 소설책을 냈다. 물론 틈틈이 쓴 이야기들이라 빈틈도 많고 부끄러운 점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의 완성본'을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이것을 프로토타입 삼아 다음 이야기도 쓸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모두가 각자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안다. 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주어진 재능이 다르다. 다만 나는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들에게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길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을 나누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하면 할지 고민하고, 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잘하는 일'을 접목시키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보는것.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얻는 행복과 고양감을 느끼며 '꿈'이라는 목표에 또다시 도전하게끔 하는 그 경험을 느끼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