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에 가능할까?
며칠 전의 일이다.
친구에게 부동산 뉴스 한 꼭지를 링크해준 참이었다.
“이것 봐. 빌라도 이렇게 올랐대.”
그러자 친구가 나에게 하나의 링크로 답했다.
“이미 끝났어. 이것 봐 봐.”
친구가 보내준 링크에는 한 빌라의 매매가가 나와 있었다. 재작년인가 친구가 같이 매입하자고 이야기했던 그 빌라였다. 정확히 언제 시점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격만큼은 정확히 기억이 나는 것이 구매하고 싶어서 한창 열을 올리며 대출이니 뭐니 알아봤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모은 돈이 없어 포기했지만 말이다. 빌라의 값은 정확히 2억이 올라 있었다.
답답한 한숨이 목울대를 넘어왔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허투루 살지는 않은 것 같은데, 내 한 몸 의탁할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이 이리도 어렵다니…
사실 나 혼자라면 또 모른다. 이것저것 다 내려놓고 몸 하나 뉘일 수 있는 작은 방하나를 얻어 또 열심히 살면 어쩌다 실낱같은 희망의 밧줄이 내려올지도. 그러나 나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가 있었고, 그녀에게 방 한 칸에서 시작하자고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다.
쓰던 브런치를 잠시 내려놓고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갔다.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로 나눠져 있는 섹션에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나 어차피 한 번 알아보는데 너무 고민하는 모습이 우스운 생각이 들어 곧바로 아파트를 클릭했다. 지도에 자신의 몸값을 적은 보라색 표지판들이 빼곡하게 꽂혔다. 두 자리 숫자 끝에 ‘억’이라는 단위가 붙었다.
‘이게 15억이라고?!’
나는 눈을 의심했다. 집 값이 미쳤다 미쳤다 소리만 들었지, 그동안 관심 있게 보지 않았던 터라 두 눈으로 직접 본 아파트 가격은 ‘미쳤다’라는 말로 표현이 부족했다. 대부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집 값의 기본 두 배 내지 세 배는 올라있었다. 부담 없이 가격만 알아보자는 생각이 얼마나 철없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15억이라는 집을 내가 구매한다고 가정해보자. 매매 금액의 40%가 대출로 나온다고 가정했을 때 9억의 현금이 있어야 가능하다.
9억이라는 금액은 한 달에 100만 원씩 저축한다고 했을 때 70년이 조금 넘게 걸린다. 지금부터 모으기 시작해도 나는 100살이 넘어버린다. 200만 원씩 저축한다면 35년이 걸리겠고, 400만 원씩 저축하면 그 절반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 계산일 뿐이고 내가 돈을 모으는 동안에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지 하락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노동의 대가로 집을 사기란 요원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혹자는 ‘그러니까 모은 돈으로 투자를 해야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자란 30대가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로 돈을 불리기란 영 미덥지 못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부동산 사이트를 봤다. 조건 설정에서 금액대를 설정했다. 심리적인 선에서 이 정도 가격이면 비벼볼 수 있다고 생각한 금액은 4억이었다. 금액을 4억으로 설정하자 그 많던 보라색 표지판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그나마 간간히 솟아 있는 것은 이름만 아파트인 경우였다. 그러고 보니 설정된 지역구가 강남이었다. 강남에서 왼쪽으로 지도를 옮길 때마다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들듯이 보라색 표지판들이 띄엄띄엄 나타났다. 완전히 지도를 왼쪽으로 틀었을 때 처음에 보았던 것처럼 빽빽하게 꽂힌 표지판들이 나를 심란하게 했다. 강남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표지판들이 외곽으로 빠질수록 선명해지는 것이 마치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와 은행은 대출을 막았다.
이제는 4억 원 대의 아파트도 내가 비벼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부동산 사이트에 나온 서울을 중심으로 지도를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내가 알고 있던 수도권인 인천과 경기도가 이렇게 큰 지역인 줄 새삼 깨달았다. 서울과 이 정도 거리면 그래도 살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격을 보면 두 자릿수를 우습게 넘긴다. 곧 죽어도 서울을 살고 싶은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데 마우스를 쥔 손은 지도를 자꾸만 자꾸만 옮긴다.
어렸을 때는 자본주의가 좋은 줄만 알고 자랐는데 커서 보니 자본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본주의란 한없이 냉정하고 잔인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다른 어떤 주의로 넘어가자는 입장은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내게 '돈이 전부가 아니야'라고 가르치시던 엄마의 말씀이 오늘따라 머릿속을 자꾸만 맴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지금 가진 돈이 없고 집 값은 터무니없이 높아도 그런 환경이 나의 생각 자체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곧 죽어도 서울에서 살 것이다!'라는 나의 희망찬 포부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이번 생에 가능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