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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현 Jun 07. 2024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사람-2장

2.



사무실에 도착한 길버트 씨는 다시 시계를 보았고, 자신이 평소보다 빠르게 걸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빙그레 웃었다. 보통은 스테파니 양이 사무실에 가장 먼저 출근하여 문을 여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사무실 한쪽에 있는 작은 주방에서 아침 커피를 준비하곤 했다. 오늘은 길버트 씨가 일착으로 사무실에 도착하는 바람에, 아직도 사무실 문은 잠겨 있었다. 다시 시계를 본 길버트 씨는 스테파니 양이 사무실에 오려면 삼십 분 정도 후에나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제 어디서 기다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어떤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사무실이 있는 빌딩 옥상에 올라가서 그녀를 기다릴 수 있고, 더구나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도시의 전경을 볼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발걸음을 돌려, 옥상으로 가는 계단으로 향한 길버트 씨는 계산을 해보았다.

‘사무실이 3 층이고, 이 건물은 6 층이니까, 한 번 올라가는 계단은 17 계단이고, 두 번 올라가야 한 층이니까, 34 계단이고, 이걸 세 번 하면…….’

길버트 씨는 계산의 마지막을 그냥 머릿속에 남겨둔 채, 한 발씩 차례로 계단을 밟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거의 올라가지 않는 계단이었기 때문에, 낯선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올라가다, 길버트 씨는 이번에는 두 개씩 올라갈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한 번에 두 계단을 올라가기 위하여 발의 보폭을 넓게 벌렸고,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두 계단씩 단숨에 올라갈 수 있었다. 어느새 5 층을 지난 길버트 씨는 마지막 한 층의 계단을 세 개씩 올라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더 크게 보폭을 벌려 세 계단을 올라갔다. 마치 자신의 몸이 살짝 살짝 허공에 떠서 세 계단을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밀고 넓은 공간으로 나간 길버트 씨는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은 길버트 씨는 양 팔을 옆으로 벌렸고, 뒤꿈치를 들어 온 몸을 공중으로 쭉 폈다. 그리고 그 순간 길버트 씨는 자신의 구두가 옥상의 콘크리트 바닥에 닿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슬쩍 실눈을 뜬 길버트 씨는 자신의 구두를 내려다보았고, 그 구두 밑에 아주 살짝 떨어져서 콘크리트 바닥이 보인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직도 양 팔을 옆으로 벌린 채인 길버트 씨는 이번에야말로 하면서 양 팔을 위아래로 마치 새의 날개처럼 움직였고, 그 날개의 움직임에 따라 자신의 몸도 공중으로 조금씩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공중으로 약 1 미터 정도 떠오른 길버트 씨는 그 자리에서 팔을 좌우로 돌려보았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몸도 팔을 따라서 왼쪽 오른쪽으로 돌아간다는 사실까지 알아내었다.

‘내가 지금 공중에 떠 있나?’

길버트 씨는 양 팔을 내렸고, 그러자 그의 몸도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너무나 신기한 경험에 길버트 씨는 한동안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만, 혹시 이것은 내가 꿈을 꾸고 있거나, 아니면 환상의 세계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길버트 씨는 다시 한 번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길버트 씨는 양 팔을 아까처럼 벌리고, 위아래로 날갯짓을 했다. 꿈도 아니었고, 더구나 환상도 아니었다. 아주 생생한 현실이었다. 길버트 씨의 몸은 이번에도 허공에 둥실 떠올랐고, 이제 자신감이 붙은 길버트 씨는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인 다음, 양 팔을 벌린 채, 두 발로 번갈아 공기를 밀어 보았다. 그러자 길버트 씨의 몸이 천천히 앞으로 이동했다.

길버트 씨는 이십여 분 정도 동안 옥상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자신의 이 신기한 능력을 즐겼다. 이윽고 손목시계의 시간이 8 시 55 분을 가리키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옥상을 나섰다.

천천히 계단을 걸어서 내려간 길버트 씨는 4 층에 도착했다. 17 계단 아래 층계참이 보였다. 눈앞에는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버트 씨는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다음, 한 번에 17 계단을 훌쩍 날아 내려갔다. 너무나 부드럽고 조용히 내려갔기 때문에, 층계참에 착지할 때, 구두가 부딪히는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길버트 씨는 방향을 돌려 마지막 17 계단을 보았다. 그는 잠시 깊고 느린 호흡을 하면 마음을 진정시켰다. 길버트 씨는 평소처럼 천천히 한 계단씩 내려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허공에 붕 떠서 계단을 내려가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 꽉 차 있어서, 길버트 씨는 마지막 네 계단을 앞에 두고는, 그만 날아서 내려가고 말았다. 마침 그때 아래층에서 올라오던 스테파니 양이 길버트 씨를 보았고, 그녀는 길버트 씨가 계단을 날아 내려오는 것을 보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녕하세요? 길버트 씨. 호호호. 아직도 그런 장난을 하세요?”

길버트 씨의 얼굴은 그만 빨개졌고, 뭐라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요.”

스테파니 양은 그 귀여운 얼굴에 한껏 미소를 지으며 길버트 씨를 보았고, 길버트 씨도 어색하게나마 스테파니 양에게 간신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휴, 하마터면 들킬 뻔했어.’

사무실로 들어간 스테파니 양은 그녀의 책상에 핸드백을 올려놓더니, 의자에 걸려있던 앞치마를 둘렀다.

“아침 커피 드려요?”

뒤따라 사무실로 들어간 길버트 씨는 “예, 부탁합니다.” 하고 스테파니 양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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