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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현 Jun 05. 2024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사람-1장

[아마 국민학교 3 학년이나 4 학년이었을 때로 기억을 한다. 그 당시 시중에는 매달 나오는 여러 어린이 잡지들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나는 ‘소년중앙’이라는 잡지를 매달 구독하고 있었다. 나는 잡지의 거의 모든 내용들을 잊어버렸으나, 약 45 년 정도 지난 지금까지도 딱 한 가지 이야기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물론 작가의 이름, 등장인물들의 이름, 장소 그리고 이야기의 세부사항을 되새길 수는 없다. 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떠오르는 그 이야기를 다시 살려보고 싶다. 아마 이 이야기의 저자를 만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그녀가 누구였는지는 알고 싶다.]





1.



길버트 씨는 이 날 아주 묘한 기분을 느꼈다.


평소보다 빠르게 출근길에 나선 길버트 씨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들떴고,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한결 발걸음이 가벼움을 느꼈다. 시간은 오전 8 시 정도였다. 길버트 씨는 아파트 공동현관문을 나섰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다들 나오고 있었다. 지금부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댈 것이다.

길버트 씨는 고개를 숙여 구두를 슬쩍 보았다. 밤색의 가죽 구두는 이날따라 유난히도 돋보였고, 길버트 씨는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이 신발을 자랑하고 싶어졌다. 마침 문을 열고 있는 우유 가게가 눈에 들어오자, 길버트 씨는 그쪽으로 걸어가며, 맥그로우 씨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맥그로우 씨.”

“예. 안녕하세요? 길버트 씨.”

“날씨가 참 좋습니다.”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공기도 상쾌하고……. 몸이 날아갈 것만 같군요.”

가게 안에 있던 유제품들을 진열장에 전시하고 있던 맥그로우 씨는 그 통통한 몸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늘로 떠오를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들썩 움직여 보였다. 이 모습을 본 길버트 씨의 마음에도 자신의 몸이 둥둥 하늘로 떠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햐, 정말 몸이 가볍네?’

길버트 씨는 밤색 구두의 앞꿈치로 스텝을 밟으며, 우유 가게 앞을 지나갔고, 몇 가게를 더 지나자, 아침 식사로 빵을 사가지고 사무실에 가는 사람들을 위한 빵집이 문을 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역시 길버트 씨는 다시 해럴드 씨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해럴드 씨.”

“오우, 길버트 씨. 좋은 아침입니다.”

사람 좋은 해럴드 씨는 갓 구운 빵 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길버트 씨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손가락에서조차 구수한 빵 냄새가 공기 중에 흩어져, 길버트 씨의 콧속으로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길버트 씨는 콧구멍을 살짝 벌름거리며, 그 빵의 향기를 쫓았고, 그의 발걸음은 저절로 빵집 앞으로 흘러갔다.

“길버트 씨,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가 봅니다. 둥둥 떠오는 것처럼 보이네요.”

길버트 씨는 해럴드 씨의 말에 깜짝 놀라면서, 자신의 신발을 보았고,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약간 의아하게 생각한 길버트 씨는 그 자리에 서서, 구두의 뒤꿈치를 두어 번 탁탁 부딪쳐 보았으나, 구두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해럴드 씨.”

길버트 씨는 빵집 주인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저 앞에 사거리가 보였고, 길버트 씨는 거기서 오른쪽 길로 향하면 되었다. 주변을 슬쩍 둘러본 길버트 씨는 양 손을 옆으로 날개처럼 펼쳐서 살랑살랑 흔들어 보았다. 정말로 자신의 몸이 공기 중에 둥실 떠오를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 길버트 씨는 다시 몇 번 더 팔을 위아래로 흔들어 보았으나, 아무런 일도 생기지는 않았다.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선 길버트 씨는 이제 높다란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는 번화가로 접어들었다. 어느새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길버트 씨는 손목시계를 보았고, 시간이 이십여 분 정도 흘렀음을 알자, 이제는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사무실까지는 백 여 미터 정도 남아 있었고, 길버트 씨는 항상 이 길을 가면서 시간을 재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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