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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현 Jun 14. 2024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사람-5장

5.



토요일 아침 일찍 눈을 뜬 길버트 씨는 어제의 일이 정말로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인가 하는 의심이 버럭 들었다. 혹시나 내가 꿈이라도 꾸었다면, 아니 어제 일은 진짜이지만, 오늘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길버트 씨는 왠지 모르게 오늘 아침에는 조심스러웠다.

아침으로 버터 바른 자그마한 토스트에 우유 한 잔을 곁들여 먹은 길버트 씨는 식탁에 멍하니 앉아 오늘은 뭐를 할까 곰곰이 생각했다. 잠시 후 마음을 정한 길버트 씨는 잠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가 어제의 땀과 먼지를 말끔히 씻어냈다. 그 후 수건으로 몸의 물을 닦은 다음, 길버트 씨는 욕조에서 양 팔을 퍼덕거려 보았고, 바로 욕실 천장에 머리를 찧고 말았다. 아픔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온통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길버트 씨는 오전 열 시 경 집을 나서서 맥그로우 씨의 우유 가게에 가서 우유 한 병과 치즈 한 덩이를 샀고, 다시 해럴드 씨의 빵집에 가서 샐러드가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샀다. 가게 주인들은 다들 길버트 씨에게 어디 가냐고 물었고, 길버트 씨는 소풍 간다고 답해 주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길버트 씨는 오늘 아주 멀리 소풍을 갈 생각이었다.

차가 없는 길버트 씨는, 실제로 자동차를 가지고 있어도, 운전을 못 하는 길버트 씨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었지만, 그동안 마음속에서만 가보고 싶어 했던, 여기서 못해도 백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을 바닷가에 가보고 싶었다. 아주 어렸을 때, 엄마 아빠와 함께 갔던 추억의 바닷가. 이제 두 분은 세상에 없고, 길버트 씨는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바닷가에 가보지 못했었다.


점심 도시락을 허리춤에 질끈 동여맨 길버트 씨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을이어서 그런지 햇빛조차 은은히 내려쬐고 있었고, 주위는 온통 초록색이었다. 발걸음도 가볍게 길버트 씨는 아파트 건물 뒤의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서서, 그 중 아주 작으면서 끝이 막혀 있어서, 아무도 오지 않을 그런 막다른 골목을 찾았다.

드디어 그런 골목을 찾은 길버트 씨는 조심스럽게 날갯짓을 하며 두 발로 땅을 찼다. 그의 몸은 금방 공중으로 떠올랐고, 길버트 씨는 하늘의 해를 향해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구름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길버트 씨는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을 찾아 그쪽으로 비행했다.

이제 바로 머리 위에 구름층이 있는 것을 확인한 길버트 씨는 그 구름 속으로 들어가, 차디찬 물방울의 느낌을 만져보았다. 길버트 씨가 입고 있던 옷이 젖어들기 시작하자, 그는 얼른 다시 구름 밖으로 나왔고, 하늘의 해를 향해서 다시 날아갔다.

햇살을 쬐면서 날아가자 옷을 적셨던 물방울들이 다시 증발하면서, 길버트 씨는 다시 뽀송뽀송한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늘 높이 더욱 더 올라가자, 정말로 저 멀리 바다가 보였고, 길버트 씨는 너무나 신이 났다. 슬슬 배가 고파지는 것을 느낀 길버트 씨는 바다를 향해서 날아갔고, 삼십 여 분이 흐르자, 바닷가 마을 뒤편의 자그마한 언덕 위에 내릴 수 있었다.

한적한 마을이었다. 십 여 가구 정도 되는 어촌 마을은 다들 점심을 먹는지 조용했다. 길버트 씨는 터벅터벅 걸어서 바닷가에 최대한 가까이 간 다음, 몇 그루 서 있는 해송 밑 그늘로 들어갔다. 회색빛 모래가 깔린 바닷가. 아이들이 오전에 놀았는지 여기저기 자그마한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길버트 씨는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서 모래 위에 깔았다. 그리고 거기에 털썩 주저앉아, 도시락을 끌렀다. 초록색 샐러드에는 연분홍색 드레싱이 뿌려져 있었고, 연해 보이는 잎사귀 사이에는 빨간색 토마토도 몇 조각 보였다. 이 모든 것을 밤색으로 된 곡물 식빵이 싸고 있었고, 이것들은 길버트 씨의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들었다. 조심스럽게 샌드위치를 재킷의 한쪽 귀퉁이에 내려놓은 다음, 길버트 씨는 우유와 치즈를 꺼냈다. 먼저 우유 한 모금을 마신 다음,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샌드위치를 다 먹은 다음, 남은 우유를 마시고, 후식으로 치즈를 먹을 생각이었다.

식사를 마친 길버트 씨는 졸음이 온다는 것을 느꼈으나, 이런 모래 바닥에서 낮잠을 잘 마음은 들지 않았다. 바다 저 편을 바라본 길버트 씨의 눈에 조그마하기는 하지만, 나무가 있는 섬이 하나 보였고, 길버트 씨는 낮잠을 잘 장소로 그 섬을 택했다. 점심의 흔적들을 다시 싸서 허리춤에 맨 길버트 씨는 바다를 향해 달려가다가 그대로 하늘로 날아올라, 두 손과 두 발로 공기 속에서 헤엄을 치면서, 멀리 보이는 섬으로 다가갔다.

십 여 분 정도 날아간 길버트 씨는 이제 발 아래로 나무들과 그 사이에 보이는 풀들과 그리고 흙과 돌로 된 섬을 보았다. 섬 바로 위에서 활갯짓을 치며, 길버트 씨는 그대로 섬으로 내려가 나무들 사이로 들어갔다. 갈색과 초록색이 섞인 풀밭 위에 드러누운 길버트 씨는 곧바로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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