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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현 Nov 03. 2024

닉을 찾아서(Finding Nik)-28

51.


줄리어스가 다가가자, 모닥불 주위에서 불을 쬐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이런, 새 손님이 오셨네. 누구, 자리 좀 만들어 줘.”

누군가 말을 하자 줄리어스의 가장 근처에 있던 세 사람이 일어나더니 서로서로 옆으로 옮기면서 줄리어스가 끼어들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밤 날씨는 추웠다. 일단 모닥불 옆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니 몸이 따뜻해졌다.

“보아하니 젊은 사람인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소?”

자신에게 대뜸 질문을 하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줄리어스는 빙그레 웃었다.

“그냥 갈 데가 없어서 여기로 왔습니다. 좋은데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 그럼 얘기나 나누다가 자면 되겠군.”

또 다른 누군가가 말을 했다. 줄리어스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낡은 옷차림에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어디서 왔소?”

“아주 멀리에서 왔습니다. 말을 해도 모르실 거예요. 내일 아침에는 떠날 겁니다.”

“그렇지. 우리 모두 내일 아침이면 여기를 떠날 거야. 그리고 밤이 되면 다시 여기로 모이지.”

좌중이 왁자지껄 웃어댔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하였소?”

“군인입니다.”

주위에 있던 노숙자들이 다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전쟁에서 돌아왔을까? 보아하니 어디 다친 것 같지도 않은데. 혹시 탈영병이오?”

줄리어스는 화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지금 임무 수행 중입니다.”

사람들은 진지하게 말을 하는 줄리어스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와’ 하고 웃어 버렸다. 모닥불 건너편에 있던, 그래도 그리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중년의 신사가,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는 꽤 괜찮게 옷을 입은 그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찮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 임무 수행 중이니까요. 인생이란 전쟁에서 다들 고군분투하고 있지요. 지금은 휴식 시간이라고나 할까요? 아니면 잠시 야전 병원에 후송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줄리어스는 가만히 있었다. 옆 사람이 툭 쳤다. 고개를 돌려 보니 손에 컵이 들려 있었다.

“이게 뭡니까?”

“그냥 쭉 마시게. 추위를 이기는데 도움이 될 거야.”

컵 속을 들여다보자 노르스름한 액체가 담겨져 있고, 요상한 냄새가 났다. 줄리어스는 그것을 한 번에 마셔 버렸다. 목에서 뱃속으로 뜨거운 것이 흘러 내려갔다. 줄리어스는 ‘우욱’ 소리를 냈다. 그러나 줄리어스는 꾹 참고 입 안에 고인 나머지를 삼켰다. 그의 입에서 ‘끅’ 하는 소리가 났다.

“잘 마시는걸. 하하하.”

사람들이 그를 보고 웃었다. 그러나 줄리어스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는 얼른 오른쪽 사람에게 자신의 발 앞까지 온 술병과 함께 빈 컵을 넘겨주었다.



52.


뉴요커 호텔 3327 호의 방문을 두 명의 남자가 점잖게 두드렸다. 그러자 방 안에서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이 열리더니 노인 한 명이 파자마를 입은 채 그들을 마중하였다.

“이 밤에 무슨 일이신지?”

“프런트 데스크에서 밝혔듯이 뉴욕시경과 연방수사국입니다. 여기 신분증이 있습니다.”

“들어오시오.”

그리 넓지 않은 방은 기본적인 호텔 방 구조를 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침실, 거실 그리고 욕실. 거실에는 테이블과 작은 소파 하나 그리고 세 명은 앉을 수 있는 큰 소파가 있었다. 창문 반대편 벽 쪽으로 기타 간단한 가구 몇 개가 있을 뿐이다. 두 명의 남자는 큰 소파 옆에 섰다. 노인은 반대편에 있는 일인용 소파에 앉더니, 둘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하였다.

“미스터 테슬라,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세 명이 앉아 있으니 좋군요.”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1856~1943)는 웃으며 말했다. 로이드와 윌리엄스는 용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에게서 무엇을 바라는 겁니까?”

“그자가 찾아오면, 여기에 잡아두라는 겁니다. 그리고 기회를 보아 프런트에 룸서비스를 주문해 주세요. 그럼 우리가 올라오겠습니다. 그럼 됩니다.”

찰리 요원이 말을 했다.

“간단하군. 그런데 그 스파이가 나에게 뭘 원하는 것일까? 이제 나는 나이도 들고 해서 별 가치가 없을 텐데. 게다가 독일이나 일본은 전기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대단한 기술적 성과를 이루었는걸. 하지만 오랜만에 손님이 온다니 기쁘기는 해.”

“미스터 테슬라, 그자는 대단히 위험한 자입니다. 살인도 서슴지 않고 저지를 뿐만 아니라, 여자를 밝히기까지 합니다.”

“오오, 그래요? 원래 스파이들은 다들 그러지 않던가요?”

니콜라 테슬라는 푹신한 소파 등받이에 기대서, 뉴욕시경의 경관과 연방수사국의 요원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럼 이 방에 경호원을 배치하는 것이 어떨까?”

테슬라가 느릿느릿 말했다.

“우리의 예측으로는 그자가 당신을 납치하려고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자가 우리 측 경관에게 말하기를, 자신은 멕시코 근처에서 왔는데, 친척 할아버지를 데리러 왔다고 했답니다.”

로이드 경위가 힘을 주어 말을 했다. 옆에 있던 윌리엄스가 거들었다.

“그러니까 우리 생각으로는, 아마도 미스터 테슬라를 독일이나 일본으로 데려 가려고 하지 않나 추측을 해 봅니다. 분명 독일일 겁니다. 데리고 갈 생각이라면 절대 해를 끼치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경호원은 필요 없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그자가 경호원이 있는 것을 눈치 챈다면 이 작전은 실패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테슬라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가 이제 85 세란 말이오. 여기에서 그 먼 나라까지 어떻게 여행을 할 수가 있겠소? 더구나 여기 뉴욕에서 나를 어떻게 빼내간단 말이오? 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게 가능할 것 같지가 않은데.......”

로이드와 윌리엄스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로이드 경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한 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뉴욕은 대서양에 접해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척의 배가 드나드는 항구입니다. 어떤 배가 어디에 있건 그건 별로 특별해 보이지가 않지요. 여기 뉴요커 호텔에서 화이트홀 터미널까지는 대략 4 마일(6.4 킬로미터) 정도이고요. 거기에서 페리를 타고 스태튼 아일랜드로 건너갑니다. 물론 맨해튼에서 배를 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스태튼 아일랜드가 더 안전하지 않을까 합니다. 거기에서 로우어 만을 빠져 나가면 북대서양입니다. 북대서양에서 유보트로 갈아탄다면 유럽까지는 일사천리이지요. 가능하지 않을까요?”

갑자기 테슬라는 웃기 시작했다.

“로이드 경위, 정말 대단한 상상력이오.”

그러면서 그는 윌리엄스 쪽을 보았다. 테슬라의 눈길을 받은 윌리엄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을 꺼냈다.

“이 친구가 하는 말은 연방수사국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전시입니다. 우리는 모든 중요한 시설물들과 특히 항구나 공항은 철저히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안 경비대도 있습니다.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이건 농담입니다만, 만약에 미스터 테슬라가 그에게 동조하여 그를 도운다면 또 모를까요?”

말을 끝내면서 FBI 요원은 겸연쩍게 웃었다.

“좋아요. 만약 그자가 나를 찾아온다면, 내가 룸서비스를 주문하지요. 그러면 되겠지요?”

“협조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로이드와 윌리엄스는 테슬라와 악수를 나누고 호텔 방을 나왔다.




[참고]




로비에 도착한 로이드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려다 멈칫했다. 윌리엄스가 오른쪽 팔꿈치로 친구를 툭 쳤다.

“자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

이 말을 들은 월터는 조지를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한 거야? 그냥 덮치면 될 것을....... 괜히 시간 낭비하는 건 아닌지 몰라.”

“아, 그거. 아직까지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내가 설명을 해 주지. 자, 들어봐.”

로이드는 윌리엄스가 내미는 라이터에 담배를 갔다 댔다. 그리고 ‘후’ 하고 연기를 뿜어냈다.

“나는 그 호텔 방에 뭔가를 두고 왔지.”

윌리엄스가 ‘껄껄껄’ 하고 웃었다. 그러자 로이드는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로이드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뭐라고? 음....... 자네 도청 장치를 하고 왔군.”

“그래 맞아. 자고로 스파이란 것들은 말이야, 쉽게 불지를 않거든. 거기서 테슬라에게 그 녀석, 이름이 줄리어스랬지. 그 녀석이 자기가 온 목적을 이야기할 거란 말씀이야. 그럼 확실한 증거를 얻을 수 있지 않겠나? 우리가 아까 앉았던 소파 아래에 녹음기를 살짝 밀어 넣었지. 지금부터 24 시간 동안 동작할거야. 그러니 그자가 호텔에 오면 우리는 그냥 놔두면 된다네. 자, 힘을 내. 이 스파이들을 잡기만 하면 자네의 오늘 사고는 넘어갈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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