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Gold)과 피(Blood)-2

by 윤금현

2 장.



“선경아! 학교 가자!”

“그래, 오빠! 우리 뛰어 갈까?”

좁은 골목길. 아래로 약간 경사지고 시멘트로 발라져 있는 골목길. 좌우로 빨갛고 파란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진 조그마한 나무 대문들이 하나 둘씩 보이는 골목길.

초등학생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그 골목길을 손잡고 뛰어간다. 골목길을 다다다 하고 달려 내려간다. 둘 다 까르르 웃는다. 갑자기 여자 아이가 비틀거린다.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의 허리를 얼른 잡는다. 쓰러지는 여자 아이를 남자 아이가 품에 안는다.


“선경아…….”

최준영은 눈을 떴다. 눈 앞이 부옇게 보이자, 준영은 눈을 마구 깜박거렸다. 비록 눈의 초점은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준영은 희미하게나마 자신의 얼굴 앞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 오빠. 나야. 선경이.”

따스한 손길이 준영의 얼굴을 만졌다.

‘선경아…….’

생각은 말로 되어 나오지 않았으나, 준영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금 눈에 힘을 주었다. 이제야 그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은 준영이었다.

“나 좀 일으켜 줘.”

간신히 입을 떼어 말을 하는 준영을 선경이 부축해서 일으켜 앉혔다.

준영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뭔가 기억이 날듯말듯 하다.

회색 페인트로 칠해진 자그마한 방. 한쪽 벽면에는 쇠창살이 쳐진 자그마한 창문이 있었다.

준영은 자신을 돌아보았다. 옷은 위 아래 가릴 것 없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특히 가슴 부분에는 빨간 피가 말라붙어 시커멓게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온 몸이 쿡쿡 쑤시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준영이었다.

‘제기랄……. 이런……. 젠장…….’

시멘트 바닥에 매트리스. 그 위에 준영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 선경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연한 회색 정장 차림의 선경이 그를 보고 있었다.

준영은 그 눈에서 따스함을 보았다. 방금 전에 꾸었던 꿈에서는 선경이가 어린애였는데, 지금은 완전한 처녀였다.

“오빠, 이게 대체 어떻게…….”

준영은 인상을 쓰며 눈을 꽉 감았다.

“그게 말이지, 어제 싸움을 좀 했거든.”

선경은 피식 웃어버렸다.

“어디 싸움이 한 두 번이야? 그리고 오빠는 싸움을 좀 하는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꼴이야?”

준영은 딴전을 피웠다. 얻어 맞은 게 좀 창피하기도 했으니까.

“담배 있냐?”

준영은 담배를 찾았으나, 선경은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쯧쯧 찼다.

“어이구, 이 오빠야, 그렇게 얻어 맞고도 담배를 찾냐?”

준영은 아무 말이 없다.

“이거 갈아입을 옷이야. 윗도리하고 바지라도 갈아 입어.”

선경은 자그마한 종이 봉지를 내밀었고, 준영을 그걸 받아 안을 들여다 보았다.

검정 바지와 회색 티셔츠가 가지런히 개어져 들어 있었다. 이것을 본 준영의 마음이 아련해졌다. 역시 선경이는 다르다. 준영은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선경도 일어나더니 뒤로 돌았다. 준영은 그런 선경의 뒷모습을 보면서 바지를 벗었다.


“최준영 씨. 나오세요.”

준영이 고개를 들어 보니 경찰관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선경이 바닥에서 일어나 준영을 부축하였고, 준영은 선경에게 의지하여, 유치장에서 나왔다.


책상 너머에 있는 경찰관, 경장 계급을 달고 있는 경찰관이 준영을 보면서 혀를 찼다.

“이제 그만 가보시오. 그리고 하나 묻겠는데, 어제 폭행 사건으로 고소를 하겠소?”

경장은 지겹다는 얼굴 표정이었다.

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요. 고소 같은 건 안 합니다. 그냥 조용히 하고 싶어요.”

옆에 서 있던 선경이 말했다.

그러자 경장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역시 아가씨가 현명하네. 그래야지. 어이, 최준영 씨. 이거 당신 지갑하고 명함이오. 요건 아가씨 명함. 요거 보고 우리가 연락한 겁니다, 최선경 씨. 아, 그리고 최준영 씨, 이것은 다 박살나버렸네.”

경찰관은 두툼한 검은색 지갑과 종이로 된 명함들 그리고 엉망으로 깨져버린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준영을 그 모두를 받았다. 의자에서 일어난 준영은 경찰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들 하세요.”

선경이 준영의 오른팔을 잡더니, 자신의 왼 가슴에 준영의 팔꿈치를 딱 붙였다.

이걸 본 경찰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요, 콩나물 해장국 두 개 주세요.”

선경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주문을 했다.

“예이.” 하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콩 둘!”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대체 무슨 일이야? 뭐라 말 좀 해봐.”

“선경아, 집에는 별 일 없지?”

“그래.”

“엄마, 아빠는 다들 잘 계셔?”

“그래, 그렇다니까.”

선경은 투덜댔다.

준영은 그런 선경을 바라보았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예뻐서.”

“피이…….”

선경은 준영의 손을 잡았다. 준영의 손을 잡는 선경의 눈에 그윽함이 깃들어 있었다.

“식사 나왔습니다.”

인심 좋게 생긴 아줌마가 콩나물 해장국 두 그릇을 들고 와서 두 사람 앞에 놓았다.

“맛있게들 드세요.”

선경은 “고맙습니다.” 하더니 숟가락을 챙겨서 준영의 손에 쥐어 주었다.

“내 거랑 다 먹어. 일부러 두 개 시켰으니까.”

준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밥을 입에 쑤셔 넣었다.


“사람들이 참 많지. 안 그래, 오빠?”

준영은 밝은 햇살이 내려쬐는 거리에서, 눈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고개를 돌려 선경을 보는 준영의 눈에 미소가 떠올랐다. 사랑을 담뿍 담은 눈빛.

“선경아.”

“왜?”

준영은 선경의 손을 잡았다.

“나, 회사 때려 치웠다.”

선경의 눈이 커지면서 얼굴에 놀라움이 번져갔다. 그녀는 준영에게 잡힌 손을 빼더니 그 자리에서 박수를 쳐댔다. 마구마구. 선경의 눈에서 기쁨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오빠, 잘 됐어. 오빠, 아주 잘 됐어.”

“…….”

“내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만세!”

선경은 하늘로 향해 두 팔을 뻗으며 만세를 불렀다.

옆을 걸어가던 중년의 남자가 그녀를 쳐다봤지만, 선경은 그 남자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준영은 아까 편의점에서 사온 담배의 비닐을 찢었다. 한 개비를 꺼내 피워 물면서 선경을 쳐다보았다.

“이제 뭐 하지?”

준영이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경은 그런 준영의 어깨를 탁 쳤다.

“아무 걱정 하지 마. 오빠. 내가 준비해 둔 게 있거든.”

준영은 동그래진 눈으로 선경을 쳐다보았다.

그런 준영을 보면서 선경은 웃었다.

“자, 명함이야. 여기 전화해서 내 이름 대고 찾아가 봐.”

준영은 명함을 살폈다.

[안던 택배]

“뭐야? 택배 회사? 야, 너, 중학교 과학 선생이 이런 데를 어떻게 아냐?”

선경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준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기 신생 회산데 말이야. 음……. 아는 선배가 창업했어. 가 봐.”

“야, 가긴 가보겠는데……. 어째 이름이 좀…….”

선경은 빙그레 웃었다.

“아, 그거……. 별 거 아니야. 안 던진다고 하던데.”

준영의 눈에 의심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야, 이 바보야! 물건을 안 던진다고! 몰라? 안 던져서 안던 택배라니까!”

선경은 빽 소리를 질렀다.

뻘쭘해진 준영은 뭐라 할 말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선경의 얼굴을 보면서 소리를 쳤다.

“야, 너, 출근 안 하냐? 학교 선생이…….”

“오빠야! 출근했다가, 수업이 비어서 잠깐 나온 거야.”

선경은 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화들짝 놀랐다.

“오빠, 나 간다. 나중에 전화해.”

지하철 역으로 뛰어가는 선경의 뒷모습을 보며, 준영은 선경이 준 명함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안던 택배?”


* * *


“엄마, 나야. ……. 아, 별 일 아니야. ……. 아침에 오빠 얘기가 나와서. ……. 엄마, 나 지금 학교 가는 길이니까, 이따 저녁에 다시 얘기해.”

선경은 집에 전화를 해서 순화에게 준영에 대해서 다시 안심을 시켰다. 경찰서에서 나온 이야기는 안 했다. 저녁에 집에 가서 택배 기사로 취직했다고 하면, 아마 부모님이 좋아하실 것이었다. 선경은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병승아, 그림 그리냐?”

강정화는 손에 과일 접시를 받쳐든 채, 집 안에 마련된 자그마한 아뜰리에로 들어갔다.

이젤에 하얀 종이를 걸쳐놓고, 한참 그림에 몰두하고 있던 손병승이 고개를 돌려 정화를 바라보았다.

“이거 좀 먹고 할래?”

그러나 병승은 정화가 들고 온 접시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야, 과일은 먹으라고 있는 거지, 그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화의 뒤에 따라온 손진태가 병승에게 타박을 했다.

“아이, 이이는……. 그럼 돈은 뭐에요? 돈은 쓰라고 있는 거, 아니에요?”

“허허, 이 사람이. 돈은 벌라고 있는 거라네. 요 여자야.”

진태는 정화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러자 정화 역시 살짝 웃으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엄마, 아빠, 그런 애정행각은 나가서 해주세요.”

병승의 퉁명스런 목소리가 날아오자, 진태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정화는 진태의 팔을 잡고 문으로 이끌었다.

“여보, 나가요. 그리고 당신 출근 안 해요?”

“출근? 그건 먹으라고 있는 건가, 하라고 있는 건가?”

진태는 껄껄 웃으며, 정화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방을 나갔다.


* * *


이윤영은 성북동 단독 주택 주방에서, 식탁 의자에 앉아, 턱을 괸 채, 멍하니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얘, 뭔 생각을 그리 하냐?”

박미현은 딸을 쳐다보았다.

윤영은 엄마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택배가 왜 안 오는 거냐고? 대체 왜 안 오냐고요?”

“그거야, 기사가 바쁜 모양이지.”

미현은 소파에서 리모컨 스위치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볼만한 방송을 찾고 있었다.

“엄마! 지난 번에, 그 그릇 있잖아. 그거 깨먹었잖아. 내가 그것도 참았는데, 이번에는 삼 일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네.”

“윤영아, 너는 맨날 택배냐?”

“엄마, 내가 시간이 어디 있어? 바쁘니까 택배 시키지.”

미현은 이제 좋아하는 드라마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엄마, 확, 이번에 택배 바꿔버릴까?”

윤영의 말에 미현은 아무 말도 안 했다.

“드디어 퐁 빠지셨군. 내가 말을 말아야지.”

윤영은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