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Gold)과 피(Blood)-11

by 윤금현

11 장.



“병승아, 너 어떻게 됐냐?”

혜정이 이제 막 집에 들어온 병승의 앞에, 호기심 가득한 눈을 하며 앉았다.

그러나 병승은 보고 있던 폰에서 눈도 떼지 않았다.

“야, 손병승!”

그제야 병승은 고개를 들어, 누나를 바라보았다. 눈에 힘이 없어 보인다.

“왜 그래?”

“너, 소희, 맘에 들었어?”

혜정이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병승의 입을 보았다.

“어휴, 누나, 말도 마. 어떻게 그런 여자를…….”

병승은 온갖 인상을 썼고, 이걸 본 혜정은 팔짱을 꼈다.

“너, 뭔가 실수했구나. 소희가 얼마나 대단한 앤데…….”

혜정은 속으로, 너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누나, 대단하다는 것은 말이야, 렘브란트나 그런 사람들한테 쓰는 말이거든.”

혜정은 주먹을 쥔 손을 병승에게 들어 보였다.

“왜 그래?”

병승은 움츠리면서 혜정의 손을 피했다. 그리고 소희와의 만남을 혜정에게 얘기했다.


“어이구, 이 화상아! 네가 그렇게 구니까, 소희 걔가 일부러 그런 거야.”

“하하. 우리 아들이 완전 바보되었네.”

진태는 소파에서 듣고만 있다가 드디어 웃어버렸다.

“여보, 내가 당신 만날 때 어땠지?”

진태가 정화를 돌아보자, 정화는 진태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사과 한 쪽을 포크로 쿡 찍어, 진태에게 내밀었다.

“당신이야, 멋졌지. 그냥 위 아래로 온갖 부티는 다 내고 나왔으니까. 그 뭐냐, 차도 그랜저 타고 나왔잖아.”

“내가 그랬나?”

진태는 쑥스러워했지만, 정화를 보는 눈길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었다.

“너, 다시 연락해봐라. 알겠지?”

“누나, 그런데 레프트가 뭐하는 데야?”

“뭐? 소희가 거기서 일한데?”

병승은 소희의 명함을 꺼내 혜정에게 주었다.

“음…….”

혜정의 얼굴이 약간 심각해졌다.

“누나 왜 그래?”

병승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굴었다.

“병승아, 레프트는 말이야……. 좋게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재들이 모인 곳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게……. 아주 최고급 변태, 또라이들이 모인 곳이라고도 하더라.”

병승의 눈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의 예술가적 기질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래?”

소파에 앉아 있던 진태와 정화도 혜정과 병승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혜정이 보니 둘 다 호기심이 잔뜩 동한 표정들이다.

“그런데 내가 듣기론, 진보라고도 하고, 있잖아. 이름에 리버럴이 들어 있으니, 진보라도 해도 되겠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좌파라고도 하더라.”

말을 마친 혜정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그런데, 나도 몰랐는데, 소희가 거기 있을 줄이야…….”

“그래?”

병승의 말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근데, 누나 학교 후배라면서?”

혜정은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여고 후배이자 대학 후배도 되지. 나는 경제학과지만, 걔는 물리학과 나왔거든. 과가 달라서 학부 때는 별로 못 봤는데…….”

“음…….”

“병승아, 그래도 그 정도면 이쁘지?”

“누나가 더 예뻐.”

병승은 딱 잘라 말했고, 혜정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너, 용돈 좀 줄까? 요새 물감 살 돈 없지?”

“하! 하! 하!”

진태의 호탕한 웃음 소리가 거실에 메아리쳤고, 옆에서 정화의 호호거리는 웃음 소리도 들렸다.


* * *


고등학교 1 학년 때부터 싸움질만 하다가, 버림받았다는 것을 극복하지 못했을까, 끝내 2 학년 때 가출을 해 버린 최준영. 그길로 학교에서는 퇴학 처분이 내려지고, 2 년 정도 후, 갑자기 집에 와서, 군대 간다고 한 최준영. 최종환과 송순화는 2 년만에 본 아들을 그렇게 군대에 보냈고, 한 달에 한 번씩 꼭꼭 면회를 강원도 산골까지 갔다. 최선경도 물론 함께였다. 제대를 하고 나서, 이제는 집에 붙어 있으려나 했더니, 취직을 했다고 다시 집을 나갔다. 사채업자 밑에서 주먹질 하고 다닌다는 것을 선경에게 들어서, 종환과 순화는 알고 있었지만, 절대 내색은 하지 않았다.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힘든 생활을 보낸 준영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러면서 종환은 내가 너만은 꼭 책임지겠다고 마음 속으로 굳은 결심을 했었다. 그러기를 한 3 년, 한 달 전 쯤 택배를 한다고 선경이가 알려줘서, 그나마 마음을 놓았었는데, 이제 친동생을 만났다고 한다. 종환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참, 너의 인생이 기구하구나.’


어제 집에 와서 친동생과 함께 살기로 했다는 준영의 말에 종환은 마음이 놓였다. 그래, 그것도 좋겠지. 종환은 준영을 떠올렸다. 그 얼굴과 모습을 떠올렸다. 어린애의 티를 완전히 벗고, 이제 어른이 되려 하고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얼굴이며 몸이며 좋아 보였다. 뭔가 안정감을 찾아간다는 느낌도 풍겼다.


‘그래. 그렇게 하려무나. 이제 너도 행복하게 살아야지.’

‘아빠, 감사합니다. 자주 올께요. 못 해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올께요.’

종환은 준영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이고, 내 새끼.’

순화가 준영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던 장면도 눈 앞에 스쳐 지나갔다.


비록 입양은 했지만, 갓난애기 때부터 밤마다 옆에 꼭 끼고 잤으며, 날마다 기저귀를 갈아주었고, 좀 크자 이유식도 정성껏 준비해서 먹인 종환과 순화였다. 친구 만들어 준다고 어린이집도 꼬박꼬박 보냈고, 유치원도 3 년이나 보냈다. 선경이가 크면서 둘은 함께 나란히 초등학교에 갔고, 학교가 끝나면 또 같이 오곤 했었다. 종환과 순화는 그 시절을 절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꼭 와야…….’

순화는 준영에게, 준영의 눈을 보면서 말했었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보며, 준영은 희미하게 웃어보였었다. 종환은 이 모든 것들과, 지나버린 시간이 왠지 꿈만 같았다.

‘인생은 꿈이라던데……. 오늘은 그 책이나 다시 볼까?’

종환은 거실 책꽂이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라는 책을 꺼냈다. 손으로 책을 잡고 적당한 곳을 펼치자, 다음의 문구가 보였다.


[……. 나의 죽음 이후에 나의 삶은 없다. 그리고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영혼과 육신은 자식에게 전달되며, 자식은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인생을 살 것이다. 내가 나의 부모의 모습으로 산 것처럼.…….]


* * *


준영은 오늘따라 아무 말도 없었다. 그냥 앉아서 텔레비젼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어제 양부모를 보고 온 후유증이라도 있는 걸까? 준영은 온 몸에 힘이 안 들어갔다. 그런 준영을 한참 동안 보고 있던 진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형, 집에 가 봤어?”

진영은 다 알면서 은근히 준영을 떠 보았다. 그 자신도 집에서 나와 있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그래. 가 봤다.”

“다들 잘 계셔?’

“그래. 잘 계시더라.”

진영은 소파 앞 탁자에 놓여 있던 양주 잔을 들더니 한 모금 마셨다. 그런 진영을 준영은 흘긋 보더니, 담배를 빼어 물었다.

“더 할 말 없어?”

진영의 집요한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이 가는 준영은 태연히 진영의 질문을 무시했다.

진영은 다시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역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준영이 라이터를 집어들어 불을 붙여주자, 진영은 고개를 숙여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 하고 연기를 내뿜으면서 준영을 똑바로 보았다.

“형, 엄마 아빠 보러 가야지.”

입으로 담배를 가져가던 준영의 손이 멈칫했다.

“왜? 양부모는 봤잖아. 그럼 이제 엄마 아빠도 보러 가야지, 안 그래?”

준영은 담배를 다시 입에 물면서 쭉 빨아들였다. 입에서 담배를 빼더니 담배 연기를 푸욱 뿜어냈다. 그러나 준영에게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형, 왜 아무 말이 없지? 지금 내 말이 우스워?”

준영은 진영을 보았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동갑내기 형제. 그런데도 이렇게 다르다.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이렇게 달랐다. 준영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을 진영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분명한 점은, 진영도 준영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해서는 안 되었다.

“진영아, 나는 엄마 아빠 만나고 왔어. 대체 어디에 내 엄마 아빠가 또 있다는 거냐?”

준영의 말에 진영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인상을 썼다.

“형은 용서 못 하는구나. 그렇지? 엄마 아빠를 용서 못 하는 거지?”

준영은 여기서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만난 동생인데, 서로 싸우고 또 헤어지고 그러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진영아, 어떻게 내가 낳아주신 부모님을 용서하고 말고 하겠냐? 안 그래?”

진영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진영 역시 이 세상에 딱 한 명 있는 형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부모님을 봐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진영은 알고 있었다. 이현석과 박미현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얼마나 가난하게 살아왔으며, 그 가난 때문에 학교도 끝마치지 못했으며, 비록 지금은 부자가 되었지만, 그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형, 그럼 부모님 보러 가는 거다? 응?”

진영은 준영에게 다짐을 주었다.

“그래. 언제 때가 되겠지.”

준영은 최종환과 송순화를 떠올렸다.


밖에서 번갯불이 번쩍였다. 그리고 잠시 후 천둥 소리가 울렸다.

“날씨가 갑자기 왜 이러지?”

진영은 일어나더니, 창문을 닫고 커텐을 열어젖혔다. 밖에서 드디어 후두둑 소리와 함께 여름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영아, 양주 말고 소주 있냐?”

“그럼, 당근이지.”

진영은 신이 난 듯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와, 준영의 앞에 턱 하니 놓았다.

“오늘 한 번 마셔 봐?”

“진영아, 꼭 부모님 보러 갈거다. 믿어.”

진영은 소주 두 잔을 따르더니, 그 중 하나를 준영에게 내밀었다.

“자, 한 잔 마시고…….”

둘은 쨍 하고, 잔을 부딪힌 다음, 벌컥 소주를 마셔 버렸다.

“형, 날씨가 참 좋다, 그지?”

준영은 아무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