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삿포로: 개성과 몰개성의 사이 (1)

by 지식공장장

일본, 홋카이도에 발을 딛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250년 에도 막부는 1867년, 조슈, 사츠마 연합의 <대정봉환>으로 막을 내린다. 이에 반발한 도쿠가와 막부의 해군 부총재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는 구 막부의 신하들을 보호하고 북방을 방어한다는 이유를 들며 1868년 8월 9일, 8척의 배를 이끌고 에도를 탈출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바로 홋카이도의 마쓰마에 번(松前藩)으로 오늘날 하코다테(函館)라 불리는 곳이었다. 에노모토는 구 에도 막부의 세력을 규합한 후 마쓰마에 번을 정복, 에조공화국을 설립한다. 하지만 일본정부가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당연히 진압군이 파견되었고 에조 공화국은 결국 5개월만에 무너지고 만다.


이후 제국주의를 추구한 일본은 이 마쓰마에 번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홋카이도 개발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 개발의 중심은 마쓰마에 번이 아닌 내륙의 땅이었다. 오늘날의 삿포로이다. 마쓰마에 번, 하코다테가 주위에 산이 둘러싸인 땅이라 확장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을 끼고 있어서 방어가 어렵다는 점도 한 몫 했다.


이렇게 삿포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삿포로 하면 작은 지방도시라고 생각하는 한국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 지방도시, 범상치 않다. 홋카이도의 규모는 대한민국의 3/4, 삿포로시의 실제 규모는 서울의 2배이며, 일본에서 5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직접 가보니 의아한 점이 있다.



발전과 가능성의 사이

삿포로 여행을 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은 인프라 부족에 있다. 도쿄도, 요코하마, 오사카, 나고야에 이은 5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인데 앞의 네 도시에 비해 인프라가 너무 부족한 것이다. 우선 신칸센이 없다. 2019년 기준으로 이제서야 들어온다는 말이 있을 뿐이다. 나머지 네 도시는 최소한 한 역은 갖고 있다. 박물관, 역사/문화유적의 수도 턱없이 적다. 그래서 다른 홋카이도의 여행지를 생각해봐야 하는데, 이쪽도 교통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값이 너무 비싸서 고민이 많이 된다.


나는 이 <차이>가 신경 쓰인다.
홋카이도에서 일어난 차별의 역사를 알고 있으니까.

홋카이도는 한 국가에서 차별을 받는 지역의 특색을 모두 갖고 있다. 다른 네 도시에서 자민당이 강세라면 삿포로는 입헌 민주당이 강세다. 2019년에 자민당 계열의 도지사가 당선되긴 했지만 그것도 재정이 파탄 난 유바리(夕張)시를 살린 업적 때문이다. 결국 그 차이에서 온 선택일 뿐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것은 전통적으로 입헌 민주당을 뽑던 사람들이 자민당 계열 도지사를 뽑은 배경, 그를 뽑은 이후 일어난 변화이다. 이유인 즉 일본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할 때는 그만큼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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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테마를 잡는 법


어떻게 돌아다녀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


삿포로 여행 일정을 고민하다 보니 왜 오사카, 교토, 나라에 사람들이 몰려가는지 이제 이해가 간다. 이 지역은 일단 간사이 공항에서 내린 후에는 각 지역을 30~40분 단위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즉 일단 가면 다양한 콘텐츠를 맛볼 수 뷔페 같은 곳이다. 하지만 삿포로는 다르다.


선택장애로 인해 입원하기 딱 좋은 곳이다.


삿포로는 희한한 도시다. 보통 어느 나라든 지역의 중심도시는 항구와 가까이 있거나, 수로가 있어서 물자운송에 적합하다. 그리고 중심도시를 바탕으로 사방으로 인프라가 뻗어 나간다. 하지만 삿포로는 다르다. 내륙 한복판에 있다. 교토도 내륙에 있는 곳이 아니냐고? 사정이 살짝 다르다. 교토에는 바로 옆에 비와호(琵琶湖)가 있어서 호수로 일본 각지의 물자를 운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삿포로는 완전히 평원에 세워진 곳이다.


게다가 관광지가 대륙의 끄트머리에 사이 좋게 놓여있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물어보신다면 십중팔구 홋카이도(北海道)의 섬(道)이라는 글자에 속은 것이다. 말이 섬이지 그 섬, 대한민국의 3/4 크기에 달하는 엄청난 땅이다. 이제서야 홋카이도에 보름이나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해는 되어도 실천은 안 한다.


이번 어머니는 어머니를 위한 <테마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나는 여행을 갈 때 이것저것 조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숙소와 공항의 위치, 이곳으로 가기 위한 교통수단 그리고 예약관련 자료만을 들고 현지에 돌진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여행을 하면 어지간한 RPG게임보다 재미있는 모험이 펼쳐진다. 나는 그 모험에서 발생하는 혼돈을 즐긴다. 일상생활에서는 가급적 하고 싶지 않은 체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체력이다. 혼돈에서 탈출하는 것은 엄청난 체력을 소모한다. 나 혼자라면 괜찮다. 혼자가면 괜찮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간다>. 즉 연세가 있으신 분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는 소리다.


여행은 파트너를 배려해야 즐거워진다. 연세가 있는 가족과 함께 가는 여행에선 모험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새로운 경험을 고려하되 동선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이동이 늘어나는 순간, 체력적으로 열세인 가족의 부담은 커지며, 결국 그게 당사자에겐 안 좋은 추억이 된다.


고생은 좋은 추억이다. 하지만 고문은 안 좋은 추억이다.


결과적으로 나 답지 않게 철저히 준비한 덕에 이런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물론 내가 일본 공공도로에서 차를 몰아본 적이 없어서 BMW 여행을 하게 된 지라 많이 힘들어하신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동안의 노하우가 있어서인지 길 찾는 데는 이력이 난 데다 지도준비도 확실했고 무엇보다 공공 와이파이가 잘 되어 있었다. 게다가 삿포로 자체가 단순해서 길 찾기가 쉬웠다



덕분에 이번 여행에선 한 번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단 정신이 길을 잃어서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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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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