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시내의 중심지, 삿포로 역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 중, 뭔가 수지맞을 것 같다 싶은 곳이라면 바로 붉은 벽돌 청사(赤れんが庁舎)일 것이다. 이유는 별거 없다. 오래된 건물이며 소장품이 제법 많은 박물관인데 무료다. 게다가 삿포로 역 <출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벌써부터 득템의 냄새가 나지 않는가?
그런데 붉은 벽돌 청사라고 하면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유인 즉, 가이드북마다 표기가 약간씩 다르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일본이 홋카이도를 개척하던 시절에 지은 도청건물이다. 지금은 박물관이다. 그래서 이름이 두 개다. 하나는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홋카이도청 구본청사(北海道庁旧本庁舎) 또 하나는 붉은 벽돌 청사(赤れんが庁舎)이다. 후자의 경우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가이드북에 저렇게 표기한 책은 없었다. 구글 님의 힘을 빌어봐도 붉은 벽돌 청사라고 적힌 한국어 기록이 없으니 다들 ‘홋카이도청 구본청사’로 알고 계실 것 같다.
나는 구본청사 같은 행정용어보다는 ‘붉은 벽돌 청사’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 조금 더 스토리가 담겨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붉은 벽돌 청사’라고 부르겠다.
우리 가족이 붉은 벽돌 청사에 간 이유는 앞에서 말한 수지 때문이다.
역에서 가깝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비교적 근대에 개발된 도시의 행정을 담당하는 중추인데 접근성이 나쁘면 곤란하다. 그래서인지 삿포로역에서도, 노면전차(트램)에서도 가깝다. 접근성면에선 삿포로의 어느 관광지보다 최고다.
이렇게 도착한 붉은 벽돌 청사는 딱 잘라 말해
서울역 같았다.
붉은 벽돌 청사는 1888년(메이지 21년)에 지어진 건물로 건축가 ‘히라이 세이지로(平井晴二郎)’가 설계하였다. 1909년 (메이지 42년) 화재로 내부가 소실되었지만 건물은 붉은 벽돌인 탓인지 멀쩡했고, 내부사진자료, 기록자료 등이 철저했기에 2년 뒤에 원형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이후 1968년, 홋카이도 개척 100주년을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보전된 형태이다. 이후 1969년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외형은 당시 메이지 시대의 트렌드상, 일본식 건물이 아닌 미국에서 유행하던 네오 바로크 양식의 빨간 벽돌집이 되었다. 서울역이 1925년에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으니 모양이 비슷한 것도 이해가 간다. 좀 더 파보면 서울역은 도쿄역을 모방해서 지어졌으며 도쿄역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베낀 건물이다. 이 암스테르담 중앙역이 1889년, 네오 바로크,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런 배경을 알고 보니 세 건물이 전부 비슷해 보인다.
네오 바로크, 네오 르네상스 양식은 당시의 트렌드였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트렌드에 따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특히 결재권자가 유행 좋아하는 높으신 분이라면 더더욱.
홋카이도 개척의 상징이자 메이지 정부의 홋카이도 개척거점인만큼 붉은 벽돌 청사의 규모는 굉장히 크다. 2층에 첨탑이 올라간 규모지만 층간 높이가 굉장히 높아서 웅장하다. 그래서 위 층으로 올라가는데 한참을 걸어야 한다. 건물 높이가 33m이니 첨탑까지 포함한 높이임을 감안해도 한 층의 높이가 범상치 않다. 물론 가이드 북에 적혀 있는 10층 건물 상당이라는 표현은 명백한 과장이다. 하지만 큰 건물이다.
그런데 이 건물이 내 기억속에 강렬히 자리잡은 이유는 따로 있다. 그 규모가 아니라 규모에 맞지 않는 서비스였다. 안에 전시물은 그렇게 많은데 전시물에 외국어(영어, 한국어, 중국어)설명이 부실하다. 한글 안내문은 두 장의 갱지 유인물이 전부다. 오디오 가이드는 현재 기기 준비중이라고 되어 있으며 그나마 일부 전시실에만 놓여있다.
이렇게 콘텐츠가 부실한데 한국인은 가이드 투어로 많이 온다. 문제는
이렇게 한국인을 데리고 온 이 곳이 다루는 테마에 있었다.
이곳은 절대 한국인을 데리고 와서는 안되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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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