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역에서 가장 가까운 역사 테마 장소임을 알고 간 우리 가족을 반겨준 것은 뜬금없는 팻말이었다.
<네 섬>의 미래, 마음을 통한 귀환
붉은 벽돌 청사 옆에 현 홋카이도청이 있으니 도청에서 내 건 캐치프레이즈일 것이다. 아마 쿠릴열도 분쟁에 관련된 내용일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밑에 영어로 적어 놓은 세부내용을 보니 무슨 말을 하고싶은 지 이해가 된다.
‘이것은 북방영토에 대한 일본인들의 소망입니다. 하루 빨리 반환되기를 기도합니다.’
(It is Common desire of the Japanese people for the Northern Territories to be reverted to Japan ASAP)
북방영토라는 말은 외국인에게 생소한 표현이다. 하지만 영어 설명을 보니 그제서야 상황이 보인다. 그런데 이 ‘북방영토’라는게 뭘까?
북방영토는 쿠릴열도 분쟁에 대한 일본의 입장이다
우리는 쿠릴열도로 알고 있으니 북방영토라고 해도 어딘지 알 리 만무하다. 쿠릴열도와 북방영토, 하나의 사안에 두 가지 단어가 있다는 것은 두 가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무언가 복잡한 사정이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이런 호기심과 탐구욕이 근사한 여행테마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호기심을 바탕으로 끌어낸 ‘붉은 벽돌 청사’의 테마들이 한국인인 내게는 결코 반가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이 북방영토라고 부르는 쿠릴열도는 러시아령의 영토이다. 하지만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줄기차게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쿠릴열도는 4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각각 쿠나시르(Кунашир, 일본명 구나시리 国後), 이투루프(Итуруп, 일본명 에토로후 択捉), 시코탄(Шикотан, 일본명 시코탄 色丹), 하보마이(Хабомай, 일본명 하보마이 歯舞)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게 뻔뻔함의 절정이라는 데 있다.
물론 러시아의 잘못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이 땅은 3국의 입장에서 보면, 국제법상으로 보면 러시아 영토가 맞다. 아마 러시아 입장에선 속이 터질 듯도 하다. 일본정부와 시마네 현에서 독도를 자기네 땅인 다케시마라고 우길때의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쿠릴 열도는 아이누족이 살던 땅이다. 그렇다면 일본인이 살던 땅이니 일본령이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일본인과 아이누족을 같다고 해도 괜찮을까?
<현재의 일본인의 입장>은 아이누족이 일본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현재>에 주목해보자. 이 일본인이 아이누족을 일본인으로 인정한 건
무려 100년도 뒤인 2019년 3월이다.
쿠릴열도, 아니 현재 하코다테 이외의 홋카이도 지역이 역사에 등장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일본과 러시아가 영토분쟁을 하던 시기다. 쿠릴열도가 역사에 드러난 시기는 1855년 <러일 화친조약(시모다 조약)>이 체결되던 시기였다.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던 러시아와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던 일본이 서로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이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서 강조된 것은 두 가지다.
하나: 국경을 이투루프 - 우루프 섬사이로 정할 것
둘: 사할린(일본명 가라후토)은 양국의 공동 거주지로 결정한다.
이후 1875년, 일본은 사할린에서 손을 떼는 대가로 쿠릴 열도(일본명 치시마 제도)전체를 달라고 러시아에 제안했고 이것이 성사되어 <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약(사할린 - 치시마 교환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렇게 일본은 사할린을, 러시아는 쿠릴 열도를 포기했다.
이 조약이 일본이 쿠릴열도가 일본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문제는 이 조약을 파기한 것이 일본이란 점이다.
이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쿠릴열도는 물론 사할린도 손에 넣는다. 이때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때 소련은 남하를 개시,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점령한다. 원래 목적은 사할린, 쿠릴열도만이 아니라 홋카이도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제지한다.
이후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던 일본과 소련은 1956년 소일 공동전선에서 평화조약을 체결한다. 이에 고무된 소련은 일본에 <하보마이와 시코탄은 반환한다>는 통 큰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이 결정은 후에 번복된다. 1960년 일본이 미국과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하자 소련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반환 약속을 취소한 것이다.
문제는 일본이라는 나라다. 옆나리인 우리가 잘 알 듯, 일본은 한번 틈을 내어주면 집요하게 파고든다.
포기하지 않는 것은 좋다. 문제는 도전 방식에 있었다.
정상적인 외교가 진행되었다면 소련과의 우호를 구축하고, 예전의 약속을 지키도록 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역사적으로 자신에게 패배하거나 지배된 국가에게 강하게 나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전범기업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금 문제도 중국에선 일본정부의 개입없이 깔끔하게 보상과 사과가 이뤄졌지만 한국은 무역규제로 보복이 이뤄졌다. 그 배경은 ‘한일청구권 배상협정’같은 것이 중국에선 체결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불행히도 일본이 소련과의 갈등을 푸는 방식도 이와 같았다. 힘으로 하보마이, 시코탄을 탈환하자는 의견이 주류가 된 것이다. 한국전쟁특수로 급성장함과 동시에 우경화가 진행된 탓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홋카이도청 앞에 걸린 팻말을 다시 떠 올려보자.
<네 섬(四島)>의 미래, 마음을 통한 귀환
일본은 1956년 협정에서 이야기된 두 섬만이 아닌 쿠릴열도 전체를 원하는 것이다.
이 붉은 벽돌 청사는 일본이 홋카이도를 개척하던 시절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던 나에겐 은근히 불편한 주장이 느껴진다. 게다가 이 박물관은 한 가지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사할린과 쿠릴열도는 일본을 원하고 있을까?
설마, 그랬다면 이 여행기는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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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