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홋카이도는 일본 입장에선 내버려둔 땅이었다. 이에 대해서 러시아도 별 이의제기를 안 하는 것으로 보아 아이누족이 살되, 국가는 세우지 않은 땅으로 보면 된다. 이 땅을 메이지 정부가 본격적으로 개발한 것이 오늘날의 홋카이도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생각해보면 네이티브 아메리칸이 살던 미국에
영국이주민이 몰려간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붉은 벽돌 청사에 있는 내용은 공식적으로는 홋카이도 개척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당시엔 어떤 문물이 있었는가에 있다. 하지만 전시물을 잘 둘러보면 볼수록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불리한 것을 감추고 유리한 것만 전시했다.
일본은 소련이 약속을 지킬 것을 강하게 요청하지만 소련은 이 반환요청을 묵살한다. 물론 끝까지 버틴 것은 아니다. 푸틴 등이 돌려주려고 한적도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정치상황이 이를 원하지 않았다.
<현지 거주민>과 극우세력이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결국 돌려주면 정치에 악영향을 줄 것이 보이자 소련은 남 쿠릴 열도(하보마이와 시코탄)를 일본과의 경제원조 및 현지 개발 협상에 쓰는 미끼로 활용했다.
아마 이용만 당하는 일본 입장에선 상당히 약이 오르는 상황일 것이다.
러시아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거,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지배하고 있으며 2개 섬을 돌려주기를 원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본의 입장은 1875년에 맺은 조약을 지켜서 쿠릴열도는 돌려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이 주장에서 본인들이 스스로 조약을 깨고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지배했다는 점, 국제조약은 마지막에 맺은 것이 실효성을 가진다는 점은 일본에겐 안중에도 없다.
자, 그렇다면 현지 주민들은 어떤 반응일까? 문제는 바로 여기 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일본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 한국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아이누족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러시아의 사할린, 쿠릴 열도, 캄차카 반도 등지에 걸쳐서 분포하는 민족을 말한다. '아이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들은 일본의 고대문명, 조몬시대를 연 조몬(縄文) 사람들의 후예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과거는 순탄치 않다. 한반도에서 몰려온 세력에 의해 쫓겨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발달된 문명을 바탕으로 한 무력을 갖춘 그들에게 원주민들은 점점 동쪽으로 밀려났다. 이를 거듭하여 아이누족이 다다른 곳이 바로 척박한 겨울의 땅 홋카이도였다. 아마 이 이상 밀려나지 않은 이유는 홋카이도의 극한을 넘보는 추위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홋카이도는 메이지 정부에게 버려졌다.
시련은 1869년 이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메이지정부가 홋카이도를 개척하기 시작, 보신전쟁에서 에조 공화국이 멸망당하고 일본제국의 치하에 들어간 것이다.
이때부터 아이누족의 진짜 시련이 시작되었다.
어느 점령자든 약자에겐 가혹하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아니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본 우리 입장에선 유난히 일본이 제일 지독할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일본의 통치전략에는 배려라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에조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홋카이도를 제압한 일본은 1899년 <홋카이도 구 토인 보호법(北海道旧土人保護法)>을 제정한다. 말은 우리가 이전에 살던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뜻이었지만, 실상은 조선에서 일어났던 토지조사사업에 다름아니었다.
아이누의 토지를 몰수하고 수렵도 금지시키며
강제로 일본어를 쓰게 만드는 조치였던 것이다.
이렇게 토지를 몰수한 일본은 일본인에게는 알짜배기 빵을 나눠주고, 아이누 족에게는 아무것도 키울 수 없는 황무지나 산만을 나눠줬다. 당연히 농사를 지어도 제대로 된 수확을 할 수 없었고 이렇게 아이누족은 굶어 죽거나 빈민으로 전락했다. 일본인의 소작인이 되었고 여성들의 경우는 첩이나 성 노리개가 되었다.
아이누족에게 일본인은 침략자이자 수탈자에 다름아니었다.
일본인은 아이누족을 차별했으며 이 차별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사실 일본인은 꽤 다양한 인종과 혈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일본의 권력자들은 ‘단일민족’론을 외치면서 다른 혈통을 배척했다. 아이누도 예외가 아니었다. 패전 후 만들어진 ‘민주국가형식의 일본정부’가 세워졌지만 그들은 계속 차별당했다. 후손들은 개라고 불리며 모욕당했고 결혼, 취업에서 각종 불이익이 따라왔다. 기업의 채용강령에 명시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이런 차별은 무려 2008년까지 이어졌다. 2008년이 되어서야 일본은 아이누족이 일본의 소수민족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2008년일까?
쿠릴열도를 돌려받기 위한 근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가 일본령이 된 이유는 전국시대때의 기록문서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시대의 다케다 가문이 현재의 하코다테를 지배했었고, 일본의 최고 권력자가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 땅을 마쓰마에가의 땅으로 인정하는 주인장을 발부한 기록이 있다. 이렇게 홋카이도는 일본땅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쿠릴열도는 아예 국가가 세워진 기록자체가 없다. 그래서 일본은 이 땅이 일본의 영토임을 인정받기 위한 근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제서야 아이누족을 일본인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자존심이 있었는지 ‘소수민족’으로 겨우 받아준 수준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긴다.
러일전쟁이후 일본은 사할린, 쿠릴열도를 지배했었다.
그렇다면 일본인이 살았어야 정상이 아닐까?
2차 세계대전이후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자국민을 전부 철수시켰다.
제2조
(a)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c) 일본은 쿠릴 열도에 대한 그리고 일본이 1905년 9월 5일의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 주권을 획득한 사할린의 일부와 그것에 인접한 도서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여기서 일본은 통한의 실수를 저지른다. 2차 대전 후 일본은 책임을 자국민에 한정해서 졌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자신들이 노동력으로 쓰고 버리기 위해 데리고 온 한국인, 중국인에 대한 인도적인 책임을 포기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도쿄, 오사카에 있던 한국인, 중국인은 일본이 받아주지 않아 불법체류자가 되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 한국인은 일본으로부터 배상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일본국민이 아니니 한국인이 책임지라는 것이 일본의 논리다.
이런 쪼잔한 속내가 쿠릴열도와 사할린에도 적용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노동력으로 쓰기 위해 데리고 온 한국인은 놔두고 일본인만 데리고 간 것이다. 만약 한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의 부부가 있다면? 아이가 일본인의 피가 흐른다고 엄마와 아이만 데려갔다. 가족을 생이별시킨 것이다.
이렇게 일본은 이익만을 챙기고 도의적인 책임은 철저히 포기했다.
일본이 한때 전 세계를 호령했음에도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이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일본에게 고스란히 부메랑으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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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