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붉은 벽돌 청사: 개척 상징의 내로남불 (4)

by 지식공장장

내로남불, 자업자득

일본은 일단 쿠릴열도의 남쪽 두 개의 섬을 달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붉은 벽돌 청사에 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일본은 쿠릴열도의 네 섬 모두를 원하고 있다.


그러니 <네 섬의 반환이 우리의 소망>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만든 것이다. 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비로 도청 앞에 있는 현판에 네 섬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모든 책임에서 도망쳤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배한 아이누를 일본인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거부했고, 자신들이 조약을 깼다는 것도 무시했다. 그들이 우기는 1855, 1875년의 영토협정은 이미 국제법상 무효다. 1945년에 자신들이 직접 서명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효력을 발휘한다. 그들은 미국의 강요로 인해 서명한 조약이라지만 국제법은 그런 경우에도 새로운 조약을 체결할 것을 권하지 강제로 체결했으니 무효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이 일본에게 불리하다. 그래서 남은 카드로 아이누를 2019년이 되어서야 일본인으로 인정한 것이다.


땅을 돌려받기 위해 일본인을 <창조>해 낸 것이다.
그런데 아이누족이 이를 좋아할 리 있을까?


아이누인이 바보인가? 현재 일본 본토에 사는 아이누족이 일본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살 수가 없어서 살고 있을 뿐 사할린과 쿠릴열도의 아이누족은 일본을 원하지 않는다. 약 160여년간 약탈하고 수탈하던 침략자가 이제 와서야 땅이 탐난다며 일본인으로 받아준다고 한다.


한 대 안 맞으면 다행이다.


사실 현지에 사는 아이누족의 대우는 러시아인에 비해 나쁘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처럼 악랄하게 수탈한적은 없으며, 그들은 러시아라는 국가의 일원으로 정체성이 잡힌 사람들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한참전에 아이누를 러시아의 소수민족이라고 인정했다.


자신들을 영토분쟁을 위한 도구로 쓰는 일본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러시아조차 소수민족으로 인정한판에 그 동안 나 몰라라 하다가 땅이 탐난다고 일본인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을 아이누가 좋아할 수 있을까? 쿠릴열도 주민의 90%는 일본반환을 반대하고 있으며, 반환대상으로 거론되는 남 쿠릴 열도의 주민들은 무려 98%가 일본반환을 반대하고 있다. 이유는 굳이 설명 안 해도 알 것이다. 이쯤 되면 정말 환상적인 자업자득이다. 일제강점기때 그렇게 일본인이 되고 싶어한 조선인들이 어리석게 느껴 지기도 하고.


상황이 이렇게 되면 남은 길은 러시아 정부가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쿠릴열도를 일본에 돌려주게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아니다. 1956년 러시아가 반환의사를 밝힌 이유는 당시 소련지도부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평화조약을 맺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바와 같이 이 땅은 러시아 정권 지지의 뇌관이 되었다. 게다가 만약 돌려준다면 여기 사는 러시아인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켜야 하는 부담을 져야 한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전혀 도움이 되는 선택이 아니다. 그래서 러시아는 이 협상을 일본에게서 단 물을 빨아먹는 카드로 활용하면서 문제를 회피해온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쟁이 일본이 만들어 준 빌미로 인해 끝나버렸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자신의 정책에 따라 일본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 다오위다오, 쿠릴열도를 일본영토로 표기한 교과서를 검정에 통과시킨 것이다. 이에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이 정중히 항의하자, 일본 유신회의 마루야마 호타카 중의원 의원은


‘(쿠릴열도는)러시아와 전쟁을 하지 않으면 되돌려 받을 수 없다’


고 받아 치는 최악의 악수를 둔다. 이에 러시아는 이 발언을 빌미삼아 2019년 6월 20일, 쿠릴열도의 일본반환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는다. 바로 이 날이 어머니와 내가 이곳에 방문한 그 날이다(어째 여러가지로 시끄럽다 싶었다).



일본은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다

홋카이도 개척 과정에서 있었던 다양한 이야기와 유물, 사진, 문서에 폭 빠졌던 희열은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차갑게 식어갔다. 그 결정타를 안겨준 것은 바로 서명운동이었다.


자유여행을 하시는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삿포로에 패키지 여행을 오면 반드시 이곳에 오게 되어 있다. 이유는 <무료>이기 때문이다. 여행상품을 짤 때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무료 코스를 많이 집어넣는다. 여행사 입장에선 마진을 높일 수 있고 고객에게 낮은 가격의 상품을 푸짐한 상품처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장소의 성격이다. 이 장소는 딱 잘라 말해서


쿠릴열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공간이다.


침략자로써 일본이 자신들이 유리한 주장만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공간에 침략의 피해자인 한국인 관광객을 데리고 오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가? 침략의 피해자들에게 자신만의 일방적인 아집을 주장하는 오만함이 이 박물관에는 배어 있다.


더 황당한 것은 서명운동이었다. 이 박물관은 ‘북방영토’ 반환을 위한 서명을 받는 별실이 따로 존재한다. 내가 방문한 시점에서 90,894,663명이 서명을 했다. 그리고 앞에 온 한국인 단체 관광객은 이미 서명을 마친 상황이었다(아마, 서명 전이었다면 조용히 설득해서 말렸을 것이다). 혹시나 싶어 이게 무슨 서명인지 아시냐고 했더니 러시아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는 서명이라 독도 생각나서 해 주셨다고 한다.


침략에 희생당한 국가의 사람에게 사정도 설명안하고 서명만 받는 셈이다.


어째 아이누족과 마찬가지로 취급을 받으며 이용당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 그런 불쾌감을 안고 주위를 둘러보니 희한한 표지판이 있다.


이 박물관은 플래시만 사용하지 않으면 모든 시설물이 촬영 가능하다. 그런데 유독 촬영이 불가능한 곳이 있다. 바로 <서명 코너>이다.

아마 이걸 알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이 생각을 하고 나눠준 유인물을 보니 북방영토 회복, 서명운동에 관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20190618_삿포로 가족 여행 (132-1)_resize.JPG


처음에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에 반했고, 그 다음에는 정말 다양한 문화재, 유물이 무료로 전시된다는 데 반했으며, 다양한 문물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내막을 알고 보니 씁쓸하다. 어째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느낌이 든다. 저렇게 포장해 놓고 필요한 것만 한국어, 중국어로 번역한 후 서명해달라고 하면 사정 모르는 사람은 아까 그 단체 관광객들처럼 멋 모르고 서명하는 것 아닌가.


이 전시관에는 본인들의 주장만이 담겨있다.
피해자의 입장, 배려는 전혀 없는 내로남불의 공간이다.


본인들의 실수로 빌미를 만들어준 바람에 아베 총리 주도로 진행되던 남 쿠릴열도 반환은 파국을 맞았다. 하지만 일본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1990년대까지 독도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천연자원 매장의 가능성이 보이자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울릉도는 표기가 되어 있으나 독도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사할린에서 천연자원이 나오자 일본의 극우 정치세력은 이 기회에 남 사할린도 돌려받아, 전쟁전의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


앞으로 쿠릴 열도가 일본에 반환될까?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마 메이지 정부, 혹은 전후 정부가 아이누와 함께 할 도량이 있었다면, 전후에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책임질 수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복잡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단일민족론>을 외치면서 그들을 탄압했고 오랜 기간동안 외면했다. 철저히 정치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만 계산했다.

자신들은 다른 나라의 영토를 탐하면서, 정작 의무는 회피하며 살아온 그들이
자신들의 만행을 치장하는 이 공간은 한국인인 내겐 내로남불의 상징이다.
특히 독도문제로 시비가 걸린 우리 입장에선 더더욱.


그리고 이 문제는 아직 진행형이다. 2019년 도쿄 올림픽 조직 위원회는 자신의 사이트 일본영토를 그린 홍보자료에 독도와 쿠릴열도를 포함시켰다. 이 문제는 2020년을 기점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역사에서 테마를 발굴하는 과정은 재미있다. 지식을 모으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가면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희열은 여행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과실이다. 하지만 붉은 벽돌 청사는 달랐다. 이 위선과 가식의 공간은 여행의 테마가 씁쓸할 수 있음을 나에게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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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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