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시대, 지방으로 떠난 사람들

힘 있는 권력 속 힘 없는 개인

by 서성우

지방분권의 시대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한 지방분권을 문재인 정부가 이어받아 발전시키고 있다. 지방 정부에 권한을 넘기고 지방세 비율을 늘려서 지역 자체로 생활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국가 예산도 증가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 지역발전 뉴딜 같은 정책 사업에는 수 십조가 투입될 예정이다. 서울에 있는 기관도 지방으로 이동한다. 혁신도시로 서울에 있던 153개의 공공기관이 이전했고 정부와 국회를 세종시로 옮길 계획하고 있다. 정부는 자치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면서 지방분권을 시대적 과제로 삼았다. 이처럼 지방발전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필수적이다. 예전부터 한국은 서울공화국이었다. 수도권 거주 인구가 2020년 들어 처음으로 50%를 넘기며 서울로 대변되는 중심의 힘은 더 강력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서울만 남고 지방은 사라지는 수순일 것이다. 서울에 과도하게 집중돼있는 것을 지방으로 나눠야 한다. 하지만 지방분권이라는 흐름과 함께 서울에서 지방으로 삶을 옮기는 개인은 또 다른 문제다. 서울 공공기관 본사에서 근무하다 지방 이전으로 지방에 살게 된 직장인이나 세종시로 이주하는 공무원 합격자, 혹은 지방에 있는 공장에 근무를 하는 공대 출신 엔지니어 같이 서울에서 지방으로 향하는 이들은 힘이 없다. 기관은 힘이 있을지라도 지방에서 개인은 연고 없는 이방인에 불과하다. 지방으로 이주한 개인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지방의 인프라에서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버텨내야 한다. 지방분권이 시대적 과제일지라도 개인이 국가의 숙명을 짊어지기에는 그 무게가 너무 버겁다.


피디라는 꿈을 찾아 서울에서 여수로 왔다. 자발적으로 지역으로 온 것이다. 하지만 꿈만 좇았지 지역에서의 삶을 희망하진 않았다. 꿈만 보고 뒷걸음치다 보니 어쩌다 여수에 사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서울에서 여수로 오면서 인터넷 검색을 자주 했다. 여수 살만한가요. 울산은 어떤가요. 이번에 지방 발령받는데 너무 걱정돼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글을 읽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누구나 터전을 벗어나 특히 서울에서 지방으로 오는 건 힘든 삶이구나. 그들의 고단함이 이상하게 반가웠다. 혼자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다들 잘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는 지역에서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으면 싶었다.



지방은 지방의 논리가 있다. 그곳에 오래도록 살아온 사람들이 정해놓은 방식이다. 그들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규칙이 지방 사회를 지탱한다. 그게 타지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보인다. 타지 사람에게는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지방 사람들에게는 합리적이다.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 그들은 그들 나름의 질서를 지키고 있다. 텃세라는 건 지방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 것의 일부일 것이다. 모두 아무렇지 않게 살지만 타지 사람은 혼란을 느끼는 상황이 벌어진다. 타지 사람은 지방의 낯선 규칙에서 홀로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외로움을 느낀다. 무리 속의 고독이다. 지방에서 살면 모두 잘 사는 것 같다. 그렇지만 타지 사람 혼자서 힘들어한다. 그런 타지 사람을 보며 유난을 떤다고들 한다. 타지 사람은 그래서 더 혼자가 된다.


차라리 외국이면 다를지도 모른다. 언어도 인종도 문화도 다른 외국에서 우리는 완전한 이방인이다. 외국인도 스스로도 이방인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애초에 기대가 낮기 때문에 외국에서 적응하는 것은 이방인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낯선 문화에 적응을 해보겠다며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단체에 소속돼 보기도 한다. 이렇게 이방인은 외국의 문화를 학습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같은 언어, 인종, 문화를 가진 같은 나라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타지에 간 사람은 모든 것이 같지만 미세하게 모든 것이 다른 지역의 정서를 느낄 것이다. 언어도 문화도 지역은 그 나름의 것을 지니고 있다. 타지 사람은 설명할 수 없지만 미세한 불편함을 느끼는 그 차이가 타지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적응하기 어려운 대상이 된다. 외국처럼 학습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도 모호한 그저 살면서 배워야 하는 삶의 흔적들은 처음 낯선 지역에 발을 디딘 사람에겐 큰 진입 장벽인 것이다. 같은 줄 알았는데 묘하게 다른 그 상황이 타지에서 온 사람을 외롭게 한다.




3년

나는 나에게 3년이라는 시간을 줬다. 아무리 고달파도 3년을 채우기 전에는 서울로 갈 생각을 하지 말자. 물론 그전에 이직을 한다면 가지만 자의로 퇴사를 하고 가지는 말자. 그 기준은 3년이었다. 보통 경력으로 이직하는 데 요구되는 기간이 3년이었기 때문이다. 경력 피디로 이직하려면 어차피 3년은 여기서 경력을 만들어야 했다. 죽으나 사나 3년이라는 시간은 단군 신화의 곰처럼 우직하게 버텨내야 했다. 그리고 막 3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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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오면 서울과 다른 것에 적응해야 할 것이 많다. 지역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물론이고 서울에 비하면 부족한 것들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문화 인프라가 부족하고 사람이 많지 않고 일자리는 한정적이고 지역정치는 폐쇄적이다. 서울에서라면 관심 갖지 않아도 알아서 돌아갔던 것들에 직접 관심을 가지고 하나씩 채워나가야 한다. 자괴감이 들고 다시 서울로 가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가 생각보다 큰 존재라는 것을, 작은 도시에서 살면서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지역에서 나의 1년은 괴로웠던 적응의 시간이었고 2년은 지역을 다시 보는 시간이었고 3년은 발견의 시간이었다. 서울과 비교하며 괴로웠던 1년을 버티고 나니 지역에서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됐다. 세상이 움직이는 과정을 볼 수 있었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만약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계속 살았다면 지금처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거대해서 내가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은 그저 누군가에 의해 움직일 뿐이고 나는 그곳에서 철저히 노동자 혹은 소비자로 존재한다. 하지만 작은 도시를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지켜봤고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너무 작아서 허술할지 몰라도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이 훤히 보였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생산자로서 나의 역할을 고민하게 됐다. 작은 도시에서 살지 않았다면 남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로, 월급으로 생활하는 평범한 중산층의 소비자로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작은 도시에서 20대의 후반을 보낸 것은 돌이켜보면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아마 지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생을 생산하며 살아갈 것이다.


지방은 분명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것처럼 앞으로 더 많은 권한이 지방으로 넘어올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도 지방으로 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이란 말은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언제 가는 목표지점에 닿게 될 지방에서 나와 같은 지방근무자들은 아마 엄청난 번뇌에 시달릴 것이다. 가능성은 알겠는데 그걸 왜 내가 맡아서 해야 되냐고. 지방이 힘을 얻는 순간이 오게 될 것처럼 지방근무를 하는 개인도 언젠가는 지방에서의 가능성을 발견할 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서울과는 다른 논리로 세상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쉽게 하지 못할 지방근무자의 특권이다. 하지만 그 적응의 기간이 고통스럽기에 지방근무자들의 고민을 같이 나누고 싶다. 내가 인터넷에 남긴 어떤 지방근무자의 글을 읽고 위로를 받았듯이 막 지방근무자를 시작한 누군가에게 내가 또 다른 지방근무자가 되고 싶다.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산 3년의 시간을 통해 누군가 지방으로 삶을 옮기는 사람이 조금은 참고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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