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에서 벗어나는 두려움
2017년 8월 31일 목요일, 서울을 떠났다
서울은 역시 막혔다. 서울의 출근길다웠다. 커다란 출근길 행렬에서 소외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서울을 떠나는 나였다.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나는 따듯한 남쪽 도시 여수로 향했다. 커다란 캐리어 2개를 뒷자리에 싣고 외곽 순환 도로에 올랐다. 서울을 떠나기 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했다. 간단히 입을 옷과 생활용품, 이불을 캐리어 2대에 넣었다. 동기와 카풀을 하기로 한 분당까지 들고 갈 수 없어 아버지가 차를 태워줬다.
차가 참 많았다. 여수에도 저렇게 많은 차와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꽉 막힌 출근길 풍경이 그날따라 아련했다. 무려 지옥이라 불리는 서울의 출근길이었다. 서울 생활 27년 동안 강한 자극에 길들진 걸까. 처음엔 힘들었던 출퇴근도 습관이 됐다. 여수에서는 출퇴근이 상대적으로 편하다. 좋은 일인데 섭섭했다. 나를 강하게 담금질하던 서울의 치열함이 하루의 시작인 출근부터 사라지게 됐다. 차는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아버지는 먼 길 떠나는 아들한테 평상시처럼 별 말이 없었다. 나도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창밖을 보며 흘러가는 서울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여수 MBC입니다. PD 직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서울역 부근 LG전자 본사 화장실, LG전자 신입사원 면접을 마치고 난 뒤 PD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허공에 대고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조아려 인사를 했다. 그토록 꿈꿔왔던 직업인 PD였다. 게다가 안정적인 직장에서의 시작이었다. PD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기업 면접을 보는 와중이라 더 기뻤다. 사실 LG전자 면접에서 삼성 제품을 말하고 나와서 낙담한 상황이라 더 다행이었다.
LG전자 건물을 나와 지하철로 걸어갔다. LG전자로 향해있는 서울역 14번 출구에서 부모님에게 소식을 전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와중에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빌딩들이 참 많다. 서울역의 많은 직장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느끼고 있는 기쁨은 순도 100퍼센트의 기쁨이 아니었다. 51의 기쁨 뒤에 49의 걱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서울을 떠나서 사는 건가?'
답답하면 포장마차에서 이런저런 고민 털어놓으면서 소주를 따라주던 친구가 서울에 있고 당구장을 운영하는 부모님이 서울에 있고 주말이면 자주 가던 광화문 교보문고도 서울에 있다. 나와 관련된 모든 게 다 서울에 있다. 이런 모든 걸 두고 떠난다는 게 너무나도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것도 서울에서 400KM 떨어진 여수라니. 차라리 외국이라면 아예 단념하고 살 테지만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는 자꾸만 서울을 떠올리게 할 위치였다.
이런 고민을 2달간 이어진 공채 과정에서는 하지 않았다. 고민을 하다가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해 뒤로 제처 뒀다. 일단 PD가 되는 게 목표였으니까. "지역 MBC는 지역의 공영방송으로서 지역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기관입니다."라고 필기와 면접 때 외쳤다. 다만 이 문장에는 내가 없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참 공허한 외침이었다. 서울을 떠나 사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합격의 기쁨 뒤로 솟구치는 걱정에 마냥 즐거울 리가 없었다. 가족들과 친구들, 같이 공부했던 동료들의 축하의 인사가 쌓여갔다. 걱정은 묻어두기로 했다.
차는 남쪽으로 향했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묘한 감정이 들었다.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서울이라는 블랙홀에서 떨어질수록 서울이 흡수하는 힘이 느껴졌다. 서울은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일할 곳이 있고 꽤 괜찮은 문화 행사들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이 많을수록 기회는 생긴다. 태풍의 중심은 고요하다. 서울과 수도권, 한국의 중심에서 27년을 살았다. 이제야 서울이 흡수하는 힘에 놀랐다.
긴장한 탓일까. 몸이 좋지 않았다. 치즈가 유명한 임실 휴게소에서 치즈가 올라간 돌솥밥을 먹고 다시 여수로 향했다. 감기약을 먹고 뒷자리에서 잠을 잤다. 서울을 떠나는 복잡한 감정을 몸이 알아차렸나.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순천을 지나 슬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5시간 만에 여수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살게 될 원룸에 짐을 풀어놓고 동기들을 만나기로 했다. 서울에서 가져온 짐을 풀었다. 옷장에 옷을 넣고 화장실에 세면도구를 편한 위치에 뒀다. 집을 정리하고 숨을 돌렸다. 내 집인데 아직 어색했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은 생경할 따름이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설렘보다는 아직 걱정이 컸다. 여수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내 생각 범위에서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서울을 떠나 여수에서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