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집에 살게 되다
'턱턱 드르륵드르륵'
캐리어를 들고 원룸 계단을 올라갔다. 내가 계약한 곳은 1층이었다. 하지만 나는 계단을 한참 올라갔다. 매끈한 대리석 계단을 올라 4층에 도착했다. 원룸이 아닌 제대로 된 집 문이 있는 4층 독채였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방 3개에 화장실 2개의 전형적인 34평 구조의 집이었다. 서울에서 가져 온 캐리어와 이불가지를 방에 풀었다. 거실로 나오니 동네 모습이 훤하게 펼쳐졌다. 4층에서 보이는 시원한 전경이었다. 앞으로 여수에서 지낼 곳이었다. 단 열흘.
본의 아니게 주인집에서 하숙을 시작했다. 기존 세입자가 나가는 날과 내가 들어가야하는 날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세입자는 원룸을 벗어나 아파트를 얻어 나가기로 했다. 아파트 이사날짜는 아직 열흘 정도 남았고 나는 당장 이틀 뒤에 출근을 해야했다. 모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려고 했다. 그런데 주인 아주머니가 자신의 집에서 같이 지내도 된다고 제안을 해줬다. 빈 방이 있으니 본인 집에서 지내도 좋다는 말이었다. 원룸 건물의 4층은 주로 주인댁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방 3개 거실, 부엌이 있는 전형적인 30평대의 거주공간이었다. 그 중 빈 방은 주인댁의 자녀가 살던 방인데 지금은 독립을 해 거의 창고로 쓰고있던 방이 있었다. 다행히 그 방에는 자녀가 쓰던 침대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창고방에 있던 짐들을 빼고나니 그럭저럭 혼자서 쓸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서울에서는 이 정도 크기의 원룸에도 사는 걸 알기에 그저 감사하게 생각했다.
2017년 8월 31일 첫 출근 전 날 동기의 차를 타고 여수에 왔다. 캐리어 한 개와 솜이 적당히 있는 가을 이불, 양복이 전부인 짐을 주인댁 방에 풀었다. 양복이 구겨지지 않게 적당한 곳에 걸어두고 엄마가 새로 사준 이불을 침대에 깔았다. 짐을 정리하고 나니 할 게 없었다. 처음 온 낯선 여수라는 땅에서 원룸 주인집 방에 있으니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경기도 구리시에서 5시간만에 전라남도 여수시의 주인집의 방으로 주거공간이 바꼈다. 무인도에 혼자 떨어진 기분이 이런 걸까. 지구 상에 나 혼자만 살아남게 됐을 때 기분이 이런 걸까. 우주 탐험을 하다 동료를 잃고 홀로 우주를 떠도는 기분이 이런 걸까. 창밖으로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렸다.
다음 날이 됐다. 드디어 첫 출근이었다. 출근은 9시까지지만 첫출근이라면 으레 30분은 일찍가는 게 마음이 편했다. 7시에 일어나 눈치를 보며 방문을 슬쩍 열었다. 역시 출근을 준비하는 주인 아저씨가 있었고 아주머니는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르신들에게 아침 인사를 드렸다. 생각해보니 아주 어렸을 때는 부모님한테도 일어나서 문안 인사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유교 문화가 많이 희미해졌구나 생각했다.
"잘 잤어요? 빨리와서 밥먹어요."
주인 아저씨 아침을 준비하면서 내 아침까지도 차려주셨다. 잘 수 있는 방을 제공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아침밥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러운 호의에 당황했다.
아침 메뉴는 서대회무침과 꼬막이었다. 아침부터 생선회무침이라니! 내가 여수에 왔다는 사실을 아침밥에서 확실히 느끼게 됐다. 여수 대표음식인 서대회무침을 밥에 넣고 김과 참기름을 넣고 슥슥 비벼 먹었다. 서대라는 생선 자체가 고소한 편인데 참기름과 김까지 넣으니 서대회비빔밥은 바다의 고소함과 육지의 고소함이 한 데 모이는 음식이었다.
"어때요? 먹을만해요?"
주인 아주머니는 서울에서 온 내가 여수 음식이 입에 맞을까 싶어 걱정어린 질문을 던졌다.
"진짜 맛있어요. 아침부터 생선회무침을 먹으니까 좋아요."
여수 그리고 주인집, 이 낯선 공간을 서대회무침이라는 단 한 끼의 아침 식사로 성큼 다가섰다.
신입사원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일과시간에는 여러 부서들을 돌아다니며 부서장들과 시간을 보냈다. 기술 부서에 가서는 방송국의 장비와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경영 부서에서는 방송 제작비와 예산 등에 관한 이야기를, 보도부에서는 취재와 기사 작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고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또 이야기를 듣다보면 하루가 끝나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적당히 듣고만 있어도 되니 편한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입사원이라 엄청 긴장을 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잘못보이면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줄줄이 꼬이기 때문이었다. 불편한 양복을 입고 부서장의 이야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머리에 받아들였다. 중요한 말은 노트에 적고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 질문도 했다. 피곤하지만 흔한 신입사원의 회사 생활이었다.
신입사원의 일과는 6시에 다시 시작됐다. 신입사원 환영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회식은 단연 사장님과 부서장이 모두 참석한 회식이었다. 사장과 임원진 회식이 잡혔다는 이야기를 듣고나서부터 동기들과 회의를 시작했다.
"아마 술 테스트를 할 거다. 어떻게든 살아남자."
한 동기는 숙취해소에 도움이 되는 약을 가져왔다. 도원결의를 하는 유비관우장비처럼 방송국 안테나 아래서 숙취해소에 좋다는 약을 숙취해소 음료와 함께 먹고 우리는 사장 주제 회식에 임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일명 황주라는 강력한 폭탄주가 등장했다.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웠다. 거기에 맥주를 살짝 첨가하면 생각이 구릿빛을 띄었다. 그 영롱한 색깔을 보며 '황주'라는 근엄한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모두 황주를 손에 쥐고 사장님 옆부터 파도를 탔다. 생각보다 독하지는 않았다. 맥주가 소주 맛을 희석한 건지 긴장한 몸과 마음이 소주 맛을 무디게 한 건지 모르겠다.
"이번 신입사원들은 다들 술을 잘 마시네~"
황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우리를 보면서 사장님과 임원들은 흡족하게 웃었다.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해서 회사의 미래를 이끌겠습니다!"
우리는 비장하고 장엄한 말들을 건배사로 제안하며 황주 파도를 계속 탔다. 5바퀴쯤 돌았을 때였을까. 화장실에 갔던 동기 한 명이 장렬히 전사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회식은 신입사원들의 패배로 끝났다.
문제는 나도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긴장한 상태에서 술을 마시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게다가 시간은 이미 새벽 2시가 넘은 상황. 나는 모두가 자고 있는 주인집에 들어가야했다. 너무 취해 집까지 어떻게 이동했는지는 기억이 안나고 주인집 문에서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카톡에 적어놨는데 술에 취해 이상한 번호를 눌렀다. 그 소리에 아주머니가 잠에서 깨서 문을 열어주셨다.
"술 많이 마셨네~"
잠에서 깬 아주머니는 어서 들어오라며 걱정어린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그 순간은 술 기운을 던지고 정신을 차렸다. 죄송한 마음을 전달하고 최대한 빨리 방으로 들어가 내 존재를 그 집에서 감췄다. 남의 자식 키우는 것도 아니고 원룸 세입자가 주인집에 술 먹고 늦게 들어가는 게 정말 눈치 보였다. 그 날 아침밥에는 해장국이 올라와있었다. 또 한 번 죄송함을 느끼며 호의를 받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주말이 됐다. 주말이 되면 서울에 가려고 했다. 여자친구도 보고 부모님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예약했던 기차를 취소했다. 뭔가 찜찜했다. 이대로 서울에 들락날락 하기가 싫었다. 여수에 일을 하러 왔으면 여기에 적응하고 더 깊이 여수를 알고 싶었다. 평생 서울에 안가겠다는 게 아니라 초반에 느끼는 외로움이나 낯섦때문에 서울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여수를 알아보려는 노력을 해보고 싶었다. 처음 맞는 주말은 여수에서 온전히 보내기로 결심했다.
동기들과 시간을 보냈다. 모두 서울에 가지 않았다.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이지 않았을까 싶다. 기왕 온 거 잘 적응해보기로 한 것이다. 동기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니 할 게 없었다. 주인집 방에만 있자니 답답하고 눈치도 보였다. 주인집 옥상에 있는 별채로 갔다. 주인집에서 옥상에 한 칸짜리 공간을 만들어놓고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었다. 노트북으로 밀렸던 예능을 봤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옥상을 거닐며 여수를 천천히 살펴봤다.
갑자기 옥상으로 올라오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당황했지만 숨는 것도 이상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노트북을 봤다. 남녀 8명의 무리였다. 술과 안주를 잔뜩 들고왔다. 옥상에서 술 자리를 할 생각이었나보다. 옥상 공간은 원래 그런 용도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방해되지 않기 위해 자리를 비켜주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기 세입자이데 잠깐 주인집 방에서 살고 있어요."
"아 엄마한테 들었어요. 저는 주인집 딸인데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왔어요."
"그러시구나. 재밌게 노세요~"
주인집 딸에게 인사를 건네고 옥상으로 가져왔던 노트북이나 책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누군가 제안을 해왔다.
"괜찮으시면 같이 술 드실래요?"
찰나의 순간이지만 엄청나게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있으면 어색하지 않을까', '나는 다른 지역에서 왔는데 할 말이 있을까' 주로 걱정과 내가 자리를 비켜줘야할 이유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여수에 적응하기 위해 주말에 서울로 가는 걸 포기하기로 한 사람이었다. 여수를 알아가겠다는 태도가 결국에는 걱정들을 잊게 만들었다. 여수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빠르게 지역 사회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럴까요?"
어색하더라도 일단 부딪혀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주인집 딸은 지금은 순천에서 혼자 살며 일하고 있었다. 같이 온 사람들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었다. 여수에 있는 본인 집 옥상에 야외 테라스가 있어서 데려왔다고 했다. 나도 내 이야기를 했다. 경기도 구리에서 왔고 여수mbc에서 pd로 일한지 1주일 됐다고.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어렸고 서울에서 온 pd라고 하니 신기하게 바라봤다.
"pd되려면 공부 잘해야되죠?"
"연봉은 얼마에요?"
"서울 살다가 여수 오면 안답답해요?"
다시 한 번 면접을 보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답했다. 왠지 pd는 청렴결백, 저널리즘의 전사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바람직한 말들을 했다. '지역 공영방송사로서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러 왔다.' 이런 재미없는 말들을 하다가 그 친구들의 관계들을 물어봤다. 직장 동료이면서 연인 사이도 있었다. 그들의 관계들을 따라가며 이야기하다보니 어색한 것도 조금은 사라지고 가끔 빵 터져 웃기도 하며 술을 마셨다.
"잘가고 나중에 연락해. 밥먹자!"
술자리가 끝내며 이들과 이 다음의 연을 맺고 싶었다. 지역에서 살아가려면 어떻게든 지역 사람들을 알아가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을 가지 않은 선택, 합석하기로 한 선택들이 모여서 최선의 결과가 만들어졌다.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이 지나갔다. 4층 주인집 작은 방에서 원래 계약했던 1층 원룸으로 이사했다. 드디어 내 공간이 생겼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됐다. 화장실 갈 때도 괜히 신경쓰이던 게 이제 문을 열고 화장실을 써도 됐다. 그런데 자유로운 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타지에 홀로 사는 외로움이 자주 느껴졌다. 넓어진 공간과 자유로운 일상만큼 아무도 나에게 신경쓰는 사람이 없었다. 여수에 와서 처음 느꼈던 우주에 홀로 있는 기분을 느꼈다.
처음 여수에 와서 주인집에 살았던 것은 행운이었다. 낯선 지역에서 살며 긴장되는 신입사원 생활을 하는 청년을 주인집에서 지탱해줬기 때문이다. 여수에 사는 사람들이 먹는 아침밥도 먹었고 그들의 자녀들과도 우연히 술을 마시기도 했다. 초반의 이런 경험들이 여수에서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땐 남의 집 자식을 키우는 것 같아 주인집에 미안하고 눈치보이는 마음이 컸다. 내가 호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됐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정말 감사하고 귀중한 분이었다. 주인집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느낀다.